새로 문연 헌책방 첫돌 잔치 준비하기

신촌 <숨어있는 책> 첫 돌을 앞두고

등록 2000.10.23 12:34수정 2000.10.2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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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은 <숨어있는 책> 첫 돌. 그저께 인천 창영동 <아벨서점>에 가서 아주머니에게 이 얘기를 하고 돌잔치 앞뒤로 헌책방 사진 전시회도 가진다고 하니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하며 반가워하십니다. 그러며 <아벨>은 11월 4일에 열었다며 책방 문연 날이 비슷하다며 웃으시네요.

헌책방을 즐겨 찾으며 좋은 책들을 많이 사서 읽은 책손님들은 이 날을 맞이해서 여러 가지로 축하할 일을 꾀한답니다. "헌책방을 열 생각을 했고 뜻을 품고 문을 연 헌책방이 어려움과 힘겨움을 딛고 첫 해를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축하할 일이 아니냐는 뜻에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해 보자고 했죠.


저는 여기서 한발 나아가 사진전시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숨어있는 책>을 한 해 동안 꾸려오며 겪고 생각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도 좋지만 헌책방을 즐겨 찾아가는 이들로서 다른 사람들도 헌책방이 가진 맛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책방도 장사가 더 잘 되길 바라는 뜻에서요. 아무래도 장사가 잘 되면 가게도 넓힐 수 있고 좋은 책도 더 많이 사올 수 있으니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일이죠.

사진전시는 <숨어있는 책> 밖에서 빨랫줄을 걸고 `빨랫줄 사진전시'를 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방 안에서도 책장 옆 빈 자리에 붙일 수 있고 책방 안에도 빨랫줄을 늘어뜨려 사진을 걸 수 있지요. 어쨌거나 책방 밖에 빨랫줄을 매달고 사진을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저게 뭐꼬?' 하며 눈길을 두도록 만드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천에 있던 책들을 가방 하나 가득 채우고 종이가방에까지 넣어서 <숨어있는 책>에 갖다드렸습니다. 저는 다 본 책들이면서 제가 공부하고 일하는 쪽과는 거리가 멀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리라 보고 내다팔았습니다. 그러면서 책을 여러 권 샀죠. 제가 헌책방과 우리 말 소식지를 내도록 도움주시는 분이 부탁한 <오쿠모토 다이사부로-파브르 곤충기, 고려원미디어(1992)> 1권 쇠똥구리 이야기를 찾았고 사랑이가 읽고 싶어하는 <조병준-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그린비>도 찾았습니다.

국어사전 기획하며 준비하는 자료로 <최신 창가집>이란 책 영인본을 한 권 건졌는데 이 책은 `국가보훈처'에서 펴냈더군요. 조금 어이없기도 했지만 해외 독립운동사자료로 낸 영인본이기에 조금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하지만 아쉽게도 인쇄 상태는 썩 좋지 못합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에서도 이렇게 소중한 자료를 영인해서 냈다는 사실은 반갑습니다.

하나 더 아쉽다면 국립국어연구원이나 문화관광부에서는 뭐하느라 이런 자료를 영인해서 못 내느냐 하는 거죠. 애꿎은 세금으로 <새국어생활>처럼 국한문혼용의 다른 이름인 한자섞어쓰기나 주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 <국어의 시대별 변천 연구 4(1999)>를 건졌는데 이 자료모음에 쓴 사람들 글투가 참 어렵습니다. 자신들만이 볼 자료로 만들어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하지만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나오는 모든 자료모음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듭니다. 곧 이 자료모음에 글을 쓴 사람들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글삯을 받아서 글을 썼단 소리죠. 그렇다면 우리 나라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손쉽게 읽을 만한 글투로 글을 써야 했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으니 참말로 한숨이 나온답니다.

차라리 1991년에 풀빛에서 펴낸 <민족극 대본선> 3권과 4권이 훨씬 낫더군요. 민족극으로 공연한 작품 대본을 모은 책으로 이 녀석들이 훨씬 값진 자료가 되겠다 싶습니다. 이 `민족극 대본'은 요즘 만들어서 공연한 작품이라 아직 별다르게 값진 자료로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본들이 서른 해 지나고 쉰 해 지나고 백 해 지난 뒤를 생각해 봐요. 그때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말투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값지고 소중한 자료가 될 터입니다.


국어사전을 기획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옛말 가운데 되살려서 남북이 함께 쓸 수 있는 말, 지금 우리가 널리 쓰면서 제대로 뜻과 쓰임새를 모르는 말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 뒷세대가 부려쓸 말까지 헤아려야겠더군요.

전국노동자협의회에서 엮은 <진짜 노동자,짜임(1990)>이란 노래책도 하나 집었습니다. 노랫말도 우리 말맛을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문화'거든요.

중서형과 동환형(숨어있는 책 사장)과 함께 헌책방 현실을 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눕니다. 얘기를 나누다 동환이형이 냉장고 위 깊숙한 곳에서 일본 고베 어느 고등학교에서 `우리에겐 식민지 시대였던 때' 나온 졸업앨범을 보여 줍니다.

금호동 <고구마>에서 졸업앨범들을 많이 사모으고 있다면서 졸업앨범 속 사진들은 문화사와 생활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아주 값진 자료가 된다면서, 요즘 것 보다 옛날 것일수록 사진도 훨씬 푸짐하고 갖가지 사진이 많고 꼼꼼하고 정성스레 만들었다고 얘기합니다. 옛날 졸업앨범을 보거나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말합니다. 재주도 살림도 훨씬 좋아진 요즘인데 요즘 만드는 앨범은 그냥 사진 몇 장만 얼추 붙이고 끝어거든요.

하지만 옛날 졸업앨범은 온갖 학교행사와 학교 언저리 모습과 학생들이 한 활동들까지 사진으로 평소에 잘 찍어둔 뒤 그 사진들을 잘 추스려서 졸업앨범으로 만듭니다. 나이드신 분들이 `동문의식'이 센 데에는 이런 까닭도 있는지 모릅니다. 졸업앨범 하나를 만들어도 평생을 두고 기억에 남고 옆에 둘 만한 좋은 추억거리로 만드는데 동문의식이 여릴 수 있을까요?

일본 졸업앨범은 조선에서 유학간 학생이 갖고 있다가 나온 책이었겠죠? 셋이서 책 뒤에 있는 졸업생 이름을 보니 조선유학생이 다섯 즈음 보입니다. 이 졸업앨범은 분명히 그 다섯 가운데 한 사람 것으로 그 사람이 죽은 뒤에 헌책방으로 흘러나왔다고 봅니다. 돌아가신 이에게 고개숙여......

생각해 보면 헌책방 주인과 술 한 잔 걸치고 밥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책방에 가서 책을 고르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거듭나기도 하니까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는 그냥 책방일 뿐입니다. `교보 문화'나 `영풍 문화'란 말은 있을 수 없죠. 하지만 헌책방은 다릅니다. 헌책방은 책방으로도 말할 수 있지만 `헌책방 문화'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잊혀져 가고 사라져 가는 값진 자료를 남기는 도서관 구실로도 말하지만 이렇게 책방임자와 책손님이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맺고 이루어가는 삶과 일이 아기자기하며 오손도손한 `자그마한 문화'로 자리잡거든요.

헌책방 한 곳과 단골로 트려면 적어도 한두 해는 부지런히 찾아가서 책을 사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그만큼 단골이 되어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그렇게 한 번 이야기 물꼬를 트면 참으로 값지고 아름다운 알음알이로 이어가지요. 그리고 이런 알음알이와 이야기들은 `헌책방 문화'로 자리매깁니다.

사진이란 녀석은 잘 쓰면 우리 눈으로 미처 보거나 알아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 주고 되새깁니다. 사진은 이렇게 쓰면 참 좋지요. 또 우리에게 기쁘고 즐겁거나 슬프고 서러운 모습도 남겨 줍니다. 책이 어느 한 시대와 곳을 남기거나 슬기를 담아내듯 사진도 어느 한 역사와 곳을 남기거나 모습을 담아냅니다. 헌책방을 찍은 사진도 헌책방이 거듭나온 모습을 담아내는데 좋은 그릇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그렇게 믿으며 지난 한 해 동안 사진을 찍어오니 무언가 `남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중서형은 <숨어있는 책> 한 해 돌아보기를 하자고 말한 까닭은 다른 헌책방들은 여러 열 해 걸쳐 책방 살림을 꾸려왔어도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모습이나 이야기들을 나누거나 들려주며 함께 하기 어려우나 <숨어있는 책> 같은 곳은 이제 겨우 한 해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가 보았고 그 사람들과 연락하면서 얘기를 할 수 있기에 지금 흔적을 남겨두면서 헌책방이 `자라는 모습'과 `새로 헌책방을 열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어서라고 말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고, 책방임자와 책손님이 함께 꾸려가는 헌책방입니다. 첫 돌 잔치는 크지 않아 작을 수 있으나 서로 오붓하고 조촐하게 꾸리려 합니다. 함께 즐기고 헌책방 <숨어있는 책>이 첫 돌을 맞이하기까지 지나온 나날을 돌이키면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했다고 보며 앞으로 더 애쓰면 좋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자리가 됩니다.

헌책방 한 돌은 책방임자들에게도 소중하지만 책손님들에게도 소중하니까요. <숨어있는 책>뿐만 아니라 모든 헌책방들이 늘 새롭고 늘 따뜻하게 제 모습을 가꾸며 책손님들도 언제나 즐거이 찾아가는 자리로 이어가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 11월 1일 <숨어있는 책> 첫돌을 맞이해서 10월 26일 즈음부터 11월 첫머리까지 헌책방 사진전시회를 <숨어있는 책> 헌책방 앞에서 가질 계획입니다. 계획과 준비가 끝나면 낱낱 소식과 정보를 다시 올리겠습니다 *

연락할 곳 : 02) 333-1041

덧붙이는 글 * 11월 1일 <숨어있는 책> 첫돌을 맞이해서 10월 26일 즈음부터 11월 첫머리까지 헌책방 사진전시회를 <숨어있는 책> 헌책방 앞에서 가질 계획입니다. 계획과 준비가 끝나면 낱낱 소식과 정보를 다시 올리겠습니다 *

연락할 곳 : 02) 333-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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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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