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 외치는 자의 목소리 있나니

<서평>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등록 2000.10.25 01:12수정 2000.10.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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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편의 뛰어난 문학작품들을 접할 때마다, 내 안에 겨우내 녹지 않는 눈밭처럼 남게 되는 생각은, 언제나 겸손한 설레임으로 주어진 나의 삶을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는 약간의 무거움이 담긴, 나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다짐들과 나의 생각의 범주는 여전히 턱없이 좁다는 생각에 대해 내뱉는 작은 한숨 하나. 그리고 앞서 인간의 삶을 놀랍도록 경이로운 생각들로 채워간 의심 많던 사람들에 대한 감탄이다.

어찌할 수 없는, 그 많은 인간의 언어로도 쉽게 정의 내리지 못하는 인간의 삶... 죽음 그리고 외로움, 사랑... 지난 겨울 틈새로 한동안 얼어붙어 있던 나의 마음을 다시 흐르게 해 주었던 작품은 아주 짧은 단편소설 하나였다.


제목은 '다다를 수 없는 나라(원제: 안남)'. 작가는 당시 21살의 프랑스의 한 젊은이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번역자 김화영은 이 작품의 독특한 어법과, 작품이 독자들의 마음 속에 새겨놓은 흔적들을 더듬어, 이 작품을 50년전 프랑스 문학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젊은 까뮈의 '이방인'과 견주었는데, 이 작품이 나에게 다가왔던 모습은, '이방인'을 접했을 때 보다 삶에 대한 더 총체적이고, 방대한 질문들이었고 고민해오던 사랑, 섹스에 관한 새로운 질문들이었다.

우선 삶과 죽음, 인간의 고독에 관한 물음들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모자란 느낌들과 그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하자면, 인간이 가지는 소유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왜 인간은 스스로의 삶에 그 의미를 부여하려 하는가. 역사 이래 가장 크게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 속에 그 깊은 뿌리를 내렸던 사랑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방대한 물음들이었고 그에 대한 대답은(아직은 나 스스로에게조차 그 대답으로 만족시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드는 생각을 정리하자면) 사랑도 결국은 믿음이라는 생각이었다.

작품 속에서 도미니크 사제와 카트린느 수녀는 신마저 외면해버린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들로 사랑을 하게 되고, 또 머릿 속에 죄악이라고 학습 받아온, 그 생각들을 '시나브로' 잊어 간다. 그리고 그들이 남기는 것은 바로 인간의 '실체'이다. 삶에 대한, 그리고 삶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보여주는 모든 행동들은 대자연 안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다.

사회, 문화, 학습, 가치관, 도덕율... 등을 배제한 상태에서 가능성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의 구원의 모습이었다. 실체, 신마저 사라져 버린, 모든 사상, 진리라 외치는 언어들이 사라져 버린 즉, 구약성서 안에서 여호와가 배제된 에덴의 상황에 그들은 외로이 남겨지게 된다.

인간의 실체... 도미니크와 카트린느가 바로 자연 속으로 스며든,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이 아닌 대자연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비록 그들의 곁에 신은 없지만, 그들은 약한 인간이 신에게서 그 해답을 찾았던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에 대한 또 다른 해답을 서로의 사랑 안에서 찾게 된다.


사랑으로 그들은 인간 특유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근심과 고뇌를 자연스레 잃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삶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일 것이다. 자본과 대중화의 물결로 거대한 '일상'이라는 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그 축복은 기독교에서의 '천국(天國)', 그것과 같은 지위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믿음으로 살아간다. 그 믿음을 찾기 위해, 찾아가며 또는 그 믿음을 바라보며 지금도 숨을 쉬고 있는 존재이다. 작품 안에서의 그들 스스로는 '믿음'이란 언어로 생각하진 않겠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사랑이리라 생각되지만, 사랑으로 두 발가벗은 인간들은 하늘의 힘을 거치지 않은 '삶'의 축복을 받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디엔가 나의 삶, 그 안의 어느 순간에 그런 모습이 가려져 있다고, 그리고 오랜 기다림의 베일을 던져 버리고 곧 나를 찾아줄 거라고 스스로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죽음의 고뇌, 어쩔 수 없는 외로움마저 '시나브로' 잃게 해 줄 그 무언가가 어쩌면 사랑이라고 말해도 좋을 그 무언가가, 나를 잡아 믿음으로 내 가슴 속에 각인을 새기길... 그리고 숨어있는 그것을 찾기 위해 나는 또 다른 현인들의 책을 펴는 방법을 택할 것임을 지금 이 순간 생각한다.

이 작품의 문체와 상황들은 또 다른 많은 상징들을 담고 있는 듯 하다. 동양과 서양, 신과 인간, 왕과 원주민들, 대자연과 그것에 대비된 카톨릭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문명 등 많은 대립적인 성격의 것들을 동시에 함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대립되는 모든 개체들을 가만히 머리 한 켠에 두고 곰곰히 그 대립의 원인들을 생각해 보면, 그 근원은 희한하게도 바로 그 모순적인 '삶'의 모습의 그것과 일치함을 발견할 수 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뫼비우스 띠 안에 갇혀 죽음이 그 한가운데를 가위질 할 때까지 하염없이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 그래서 전혜린은 '삶은 그저 열정적으로 사는 것밖에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하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짧지만, 부분 부분 여러 곳에서 읽는 이의 삶들로 덧칠할 수 있게 그 백지(白紙)속에, 그 뚫려버린 듯한 공간 속에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질문들로 독자들을 이끌어 감화시킨 작가의 생각과 그 재능이 몹시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결국 인간의 사랑에 손을 들어주었다. 나는 그의 생각을 사랑한다. 그의 믿음을 사랑한다. 21세의 한 젊은이의 세상을 향한 (성경의 표현을 빌려) 선지자적인 '광야의 외침'을 사랑한다.

덧붙이는 글 | 위의 기사는 대학생들이 만드는 인문, 문화, 예술 웹진 '미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위의 기사는 대학생들이 만드는 인문, 문화, 예술 웹진 '미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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