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도 눈길 좀 돌려주오

<홍제동 대양서점>에 찾아간 이야기

등록 2000.10.27 20:41수정 2000.10.2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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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헌책방은 `청계천'처럼 거리를 두고 자리잡기보다 지역에서 터전을 잡는 흐름입니다. 헌책방도 다른 장사치처럼 몇몇 거리에 줄줄이 늘어서 있으면 퍽 괜찮을 성 싶지만 한때 잘 나가던 청계천이 좀 더 발돋움하기보다 제자리에 맴돌기를 하면서 청계천 자체도 죽어가고 있지요. 인사동도 고서점이 좀 많노라 하지만 그 많던 옛책방들도 다 죽어가고 지금은 몇 군데 안 남고 말았습니다.

지난 주에 찾아가고 오늘 다시 찾아간 서울 서대문구 홍제1동 330-48번지에 자리한 <대양서점>도 한때 언저리에 헌책방이 일곱 군데가 있었고 언저리 모래내에 연신내에도 퍽 많던 헌책방들이 많이 문을 닫았다는군요. 홍제동에 있던 일곱 군데 헌책방 가운데 지금은 <대양서점>만 남아 있습니다. <대양서점> 아저씨는 자기 헌책방이 살아남은 게 `책'만 팔던 다른 여섯 군데 헌책방들과는 달리 자기는 민속품도 팔고 레코드판(엘피)도 팔았기 때문에 어렵게 어렵게 살아남은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공씨책방> 공진석 씨는 책을 사오다 버스에서 심장이 멎으면서 돌아가셨죠. 공진석 씨는 바로 이곳 <대양서점> 아저씨를 만나 책을 사고 함께 낮밥을 먹은 다음 버스를 타고 자기 가게로 돌아가다가 그만 쓰러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헌책방 역사에 남는 공진석 씨와 맨 마지막으로 만나고 이야기한 분이 바로 <대양서점> 아저씨이기도 합니다.

열 평도 안 되는 자그마한 헌책방이지만 미아리에도 있었고 지금 보다 좀 위쪽에 있다가 지금 자리에서는 1993년부터 자리잡았다더군요. 가게를 조금 한갓진 곳에서 하면 가게세도 적게 내며 짐스러움이 적지만 헌책방 같은 가게일수록 한길에 나와 있어서 사람들이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이곳에 헌책방이 있구나' 하고 알아보지 못하면 장사를 하기 힘들기에 조그마한 가게라도 길가로 얻었답니다.

저도 버스를 타고 홍제동 <대양서점>을 찾아갔지만 낮에도 이곳은 길이 퍽 막힙니다. 아침이나 저녁이 되면 길막힘이 엄청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산쪽에서 홍제동 고가도로를 지나가서 서울 중심가로 들어가는 차들이 고가도로 위에 줄줄이 늘어선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길이 막혔을 때 사람들은 창밖만 쳐다보며 언제 가나 기다리는데, 그렇게 기다리다가 `어, 저기 헌책방이 하나 있네' 하고 많이 눈여겨 본다는군요. 그리고 길이 너무 막히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대양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는군요. 그러면 아저씨는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서 찾아준 일이 반가워 책값을 안 받겠다고 그러고 버스에서 내린 분은 `나도 반가워서 찾아왔으니 책값을 받으라'는 요즘 세상에 참말로 보기 드문 실갱이를 벌이기도 한답니다.

저도 지난 주에 <대양서점>을 처음 찾아갔을 때, 자기 가게를 어떻게 알음알이로 알아서 찾아와 주니 반갑다며 첫 손님이라 책값을 안 받겠다고 해서, 저는 `그래도 책값은 받아야 한다' `괜찮다, 다음에 또 오면 그때 받겠다' 하는 실갱이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저씨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죠.

<대양서점>은 아저씨 혼자서 가게를 보기에 마음대로 밖으로 돌아다니기 어렵답니다. 가게문은 아침 열 시 즈음 열어서 저녁 열 시 즈음까지 하는데 거의 가게에 붙어 계신답니다. 그리고 이곳은 <대양서점>을 찾는 단골들에게 사랑방처럼 되어 단골손님들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약속장소가 되기도 한다는군요. 그러고 보니 아저씨가 앉아계신 바로 앞에는 넓직한 걸상이 놓여 있어서 이곳에 앉아서 아저씨와 마주보고 이야기하며 약속시간에 맞춰 사람을 기다리기에 안성맞춤이더군요.


<대양서점> 안을 들여다보면 문을 열고 바로 왼편에는 레코드판과 어린이책이 있고 안쪽 세 군데 책장 가운데 오른쪽은 소설과 가벼운 책, 가운데는 교과서와 참고서, 왼쪽은 기독교 책과 인문사회과학과 무거운 책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게가 작기에 뭐 `분류란 게 없다'고 하지만 오른쪽과 왼쪽이 소설과 인문학쪽 책으로 자연스레 나누어집니다.

레코드판은 장사가 조금씩은 된다고 하지만 시대나 가수로 나누어 체계있게 차려놓지 못해 찾아보긴 쉽지 않네요. 저는 레코드판은 모으거나 듣지 않기에 어떤 판들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레코드판 저자는 일본사람들이 괜찮다 싶은 판은 확 쓸어가 버려서 물건도 잘 안 나오고 힘들다는데 얼핏 살펴도 육십년대나 칠십년대 판은 잘 안 보입니다. 그냥저냥 노래를 좋아하는 제 눈에는 변진섭이 잘 나갈 때 노래를 거의 모두 지어준 `지근식'씨가 낸 독집앨범(1989), 김완선 1집(1986), 이문세 1집, 봄여름가을겨울 첫 앨범(1989), 조하문 1,2집, 들국화(1985) 같은 판들이 보입니다. 거의 모두 80년대와 90년대 판들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판도 있는데 이 판은 서태지를 좋아하는 이에게 선물해 주려고 제가 골랐습니다.


명지대 앞에 교수일을 정년퇴임한 분이 헌책방을 하나 냈더란 이야기를 중간상인 하는 분과 이야기하시더군요. <대양서점>에 거의 날마다 들러서 책을 가져가기도 하는데 그 교수님은 `너무 빨리 거두기를 바란다'며 `한두 해는 고생해야 책장사를 비로소 알지, 서두른다'는군요. 책 장사는 `먹는 장사와는 달라서 먹는 장사는 사람들이 금세 골라가지만 책 장사는 책 임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장사이기 때문에 언제 골라갈지 모르고, 그런 책손님을 기다리면서 책을 갖춰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언젠가 그 교수님이 (장사가) 하도 안 되는지 "어떤 책을 갖다 놔야 할까요?" 하고 물어와서 "사람마다 찾고 보는 책이 다 다르니 어떤 책을 갖춰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책 장사를 하려면 교수님이 좋아하는 취향 책만 갖다 두면 망하고, 손님들이 찾는 책을 갖다 두면 됩니다요"하고 얘기했답니다.

언젠가는 단골손님 가운데 일본 헌책방을 다녀온 분이 그 사람들 이야기를 해 주더랍니다. 일본 헌책방 임자(주인)들은 날마다 하는 일이 `책을 닦아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라면서 당신 같은 사람들은 게을러서 그런 일은 못 한답니다. 그러면서 `책을 깨끗하게 닦아 놓지 못하는 모습'은 우리 나라 헌책장수들이 뉘우치고 고쳐가야 할 대목이라면서,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모습인 청계천 헌책방처럼 헌책방 스스로 달라지려 하지 않으면 헌책방은 다 문닫는다고, 스스로 부지런하게-그러면서 신촌 <숨어있는 책> 이야기를 합니다. <숨어있는 책> 젊은 사장처럼 정열을 갖고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하면서 거듭나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양서점>도 지금처럼 작은 가게로는 힘들기에 창고를 하나 얻으려 한다며 봐둔 곳이 있고 앞으로 한 해 쯤 새로 얻은 창고를 정리하고 책을 갖추면 많이 나아질 수 있답니다.

지난 주와 오늘에 걸쳐 <대양서점>에서는 <이주홍-못나도 울엄마,창비(1977)> <박용수-사랑, 그 짓궂은 이야기,소나무(1996)> <원색자연학습도감,삼화출판사(1968)> <끌로드 모르강/문희영 옮김-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형성사(1979)>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풀씨 네 번째 호(1999)>를 골랐습니다. 이주홍 스승 동화는 교과서에도 많이 실렸고 지금 읽어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더불어 이 주홍 스승이 쓴 글을 읽으면 우리 말맛이 아주 감칠맛나게 잘 쓴 모습을 보며 `글쟁이라면 이만큼은 써야 한다'는 일깨움도 얻을 수 있지요. <우리말 갈래사전(1994)>을 펴낸 박용수 씨가 낸 책은 이곳에 와서 처음 봤습니다. 박용수 씨는 분도출판사에서 당신이 찍은 보도사진을 모아서 한번 낸 적 있고 1980년 광주 아픔을 시로 읊은 <바람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일반 책은 이 책이 처음이거든요.

아시는 분이 아직 많진 않지만 박용수 씨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그러면서 그이는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으로 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문인들이지만 한가지 닮은 점은 권위있는 지면에 작품을 발표하려는 욕심들을 갖고 있음이다"면서 나라에 있는 문인 일만을 넘는 사람들이 장애인 기관지에 글을 싣는 적도 없지만 장애인 삶을 다룬 글도 쓰지 않는다면서 `장애인도 사랑 이야기를 한다'는 마음으로 이런 책을 써내게 되었답니다.

<대양서점>에서 눈에 띄는 책들을 살펴보니 이런 책들이 있습니다.

<송효순-서울로 가는 길,형성사(1982)>
<요한나-고려원>
<정말이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입니다,통일샘(1997)>
<한글학회 50돌 기념 논문집(1971)>
<피터 벡셀-책상은 책상이다,문장(1993)>
<위기철-노동자 이야기주머니,녹두(1990)>
<박완서-꿈을 찍는 사진사,열화당(1979)>
<백기완-자주 고름 입에 물고... ,한울(1992증보수정)>
<이상섭 외-사전편찬학 연구 4집,탑출판사(1992)>
<문익환-통일은 어떻게 가능한가,학민사(1984)>
<가나모리 우라코/장윤정 옮김-엄마,그건 사랑이 아니예요,동풍(1992)>
<아름답게 늙는 지혜(戒老錄),정우사(1985)>
<죠반니노 과레스끼/김명곤 옮김-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백제(1979)>
<조병준-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박사거장(1997)>
<전혜린-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민서출판사(1993)>
<한국의 역사인식 (하),창비(1976첫,1990 18쇄)>
<신영복-나무야 나무야,돌베개(1996)>
<다이 호우잉/신영복 옮김-사람아 아,사람아,다섯수레(1991)>
<마르쿠제 포퍼 논쟁-혁명이냐 개혁이냐,사계절(1982)>
<크리스 하먼/이원영 옮김-오늘의 세계경제 위기와 전망,갈무리(1994)>
<한국전래동화집 3,9,11권, 창비>

범우사, 삼중당, 일신서적, 삼성출판사 문고판 책들이 가지런히 있습니다.

<서울로 가는 길>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공장노동자로 일한 사람이 적은 수기입니다. <정말이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입니다>는 탈북난민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요. 박완서씨 소설 <꿈을 찍는 사진사>는 열화당이 미술, 예술쪽 책만 전문으로 내기 앞서 낸 소설입니다. 열화당은 1970년대 끝무렵과 80년대 첫머리에 문학작품도 쏠쏠히 냈지요. <자주 고름 입에 물고...>는 시인사에서 1979년에 처음 나왔는데 빠진 대목도 있었고 못 담은 이야기도 있었지만 한울에서 증보판을 내며 모두 집어넣었답니다. <아름답게 늙는 지혜>는 육십대를 바라보거나 넘긴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삶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담은 책이죠. 그런데 이 책을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선물하면 "그럼, 내가 아름답지 않게 늙어간다는 얘기냐?" 하는 소리도 듣겠더군요. 실제로 우리 어머니도 이 책을 선물해 드리니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기분나쁘다 이거죠. <한국의 역사인식>은 우리 역사 문제에서 신구 학자 사이에 논쟁이 되는 거리를 실으며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깨달아야 하는가를 담은 책으로 오랜동안 꾸준히 읽히는 책입니다. <마르쿠제-포퍼 논쟁>도 우리 현실에서 읽을 값어치가 넉넉한 책이지요.

<대양서점> 책꽂이에 책들이 두 겹으로 꽂혀 있어서 쉽사리 책을 빼내기는 힘들지만 한두 시간 남짓 짬을 내서 찾아와 둘러보면 이와 같은 책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미처 적지 못한 더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나실 수도 있고요.

<대양서점>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있는 헌책방들 문은 언제나 열려 있고 얼마든지 헌책방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은데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못 찾아가기도 합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헌책방도 찾아가 보고 조금 멀리 있는 곳은 나들이간다는 생각으로 찾아가 보세요. 우리가 그 동안 살아오며 느끼지 못한 다른 눈길과 생각을 만나고 느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대양서점> 가는 길 *

지하철 3호선 홍제역4번 나들목으로 나와서 녹번동쪽으로 3-5분 즈음 걸어가면 고가도로 옆에 보입니다. 버스는 74,146,150,152,152-1,153,154,155,156,157,158,159,147,158-2,158-3,205,440,161 이 지나갑니다. `150'번대 버스는 거의 모두 지나가지요. 버스는 `홍제전철역' 정류장에서 내리면 됩니다. 연신내쪽에서 버스를 타고 오면 버스가 내리는 한샘가구점쪽에서 길을 안 건너고 <대양서점>으로 갈 수 있지만 무악재-독립문-광화문-종로쪽에서 버스를 타고 오시면 전철역 구멍이 있는 곳에서 꼭 길을 건너야 합니다. 고가도로 즈음에 책방이 있다는 얘기만 듣고 길 건너편 어디에 있나 찾으면서 가면 고가도로에 
살짝 가린 책방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거든요. 자가용으로 오시는 분은 홍제동고가를 사이에 두고 유진상가 건너편에 <대양서점>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연락할 곳 : 02) 394-2511 / 019-437-8901

덧붙이는 글 * <대양서점> 가는 길 *

지하철 3호선 홍제역4번 나들목으로 나와서 녹번동쪽으로 3-5분 즈음 걸어가면 고가도로 옆에 보입니다. 버스는 74,146,150,152,152-1,153,154,155,156,157,158,159,147,158-2,158-3,205,440,161 이 지나갑니다. `150'번대 버스는 거의 모두 지나가지요. 버스는 `홍제전철역' 정류장에서 내리면 됩니다. 연신내쪽에서 버스를 타고 오면 버스가 내리는 한샘가구점쪽에서 길을 안 건너고 <대양서점>으로 갈 수 있지만 무악재-독립문-광화문-종로쪽에서 버스를 타고 오시면 전철역 구멍이 있는 곳에서 꼭 길을 건너야 합니다. 고가도로 즈음에 책방이 있다는 얘기만 듣고 길 건너편 어디에 있나 찾으면서 가면 고가도로에 
살짝 가린 책방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거든요. 자가용으로 오시는 분은 홍제동고가를 사이에 두고 유진상가 건너편에 <대양서점>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연락할 곳 : 02) 394-2511 / 019-437-8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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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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