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지킬 예절 다섯 가지

먼저 다섯 가지를 알려드립니다

등록 2000.11.19 09:58수정 2000.11.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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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지킬 예절이라고 특별히 다른 대목은 많지 않습니다. 이 `예절'이라 하는 일들은 헌책방뿐 아니라 새책방에서도 지키면 좋지요. 더불어 책방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이웃을 생각하고 동무를 헤아리는 마음결을 갖추고 있다면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예절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헌책방을 다녀오며 책방 임자분들이 책손님들에게 "이것만은 지켜달라"고 하는 이야기를 여러 해 동안 갈무리해서 이 자리에선 `다섯 가지 지킬 일'을 적어 봅니다. 그러나 지킬 일은 앞으로도 하나둘 더 늘 수 있겠죠. 그리고 책방을 찾아가는 우리들이 스스로 지키자는 얘기를 만들 수도 있고요.)


ㄱ. 하나는 가방을 메고 책을 보지 않는 일.

헌책방 가운데 꽤 큰 곳도 책장과 책장 사이는 좁답니다. 그러나 갓 헌책방을 찾아간 이들은 요새 유행을 따르는지 버릇이 되었는지 가방을 여전히 멘 채로 책을 보지요. 가방을 등에 메고 있을 때는 책장 사이가 좁아집니다. 다른 이가 책장 사이를 지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요. 또한 제 딴엔 조심스레 몸을 움직인다고 해도 책장을 건드리거나 쌓아놓은 책더미를 건드려 무너뜨리기 일쑤죠(저도 조심한다고 했으나 한 해에 한두 번은 책더미를 쓰러뜨립니다).

가방을 들거나 메고 있으면 헌책방에서는 `책을 몰래 가방에 넣지는 않을까'하는 의심을 사기 아주 좋답니다. 헌책방에 들어가면 곧바로 임자분이 앉거나 계신 자리 언저리에 가방을 잘 놔두는 편이 가장 좋아요. 가방을 놓을 때도 다른 손님이 책을 보는 데 불편을 끼치지 않을 구석에 놓아야 가장 좋고요. 아예 헌책방에 갈 때는 가방을 들고가지 않는 편도 좋지요. 책을 산 뒤엔 비닐봉지에 담기보다 종이가방이나 종이봉투에 담는 일이 더 나으며 바인더끈으로 묶어서 가져가는 일도 괜찮습니다.

자잘한 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헌책방에서 책이 한 번 무너지면 종잡을 수 없으며 책은 무너져 바닥에 꽂힐 때마다 다치지요. 자기만이 가는 헌책방이 아니고 자기만 책을 보는 헌책방이 아닌 만큼 이러한 구석은 잘 지켜야 합니다.

ㄴ. 둘은 `책값' 마구 깎지 않기.


헌책방을 한 곳만 알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헌책방을 퍽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여러 곳을 다니곤 합니다. 여러 곳 다니다 보면 책방마다 들어오는 책 갈래가 다름을 느낄 수 있고 책값 다름도 느낄 수 있습니다.

고대 앞이나 서울대 앞 헌책방과 홍대 앞 지하책방은 책값이 높기로 이름을 날립니다. 그 가운데 고대 앞과 홍대 앞은 비싸게 매긴 책값을 나중에 헌책방 손님들에게 고스란히 돌려 줍니다. 무얼로 돌려 주느냐고요? 좋은 책을 더 많이 사오고 책방을 좀 더 넓고 시원하게 꾸미는 일로 돌려 줍니다.


고대 앞 <새한서점>은 처음엔 조그만 책방이었지만 나중에 2층 가게를 사고 1층도 더 넓게 가게를 튼 다음 옆 가게까지 사들이며 아주 전문성을 갖추고 책을 둡니다. 홍대 앞 <온고당>은 길 건너 넓은 가게 가운데 먼저 지하책방을 얻은 다음 나중에는 1층 시원하게 트인 자리로 가게를 넓혔습니다. 헌책방 가운데 1층에 이처럼 시원하게 나 있는 곳은 <온고당> 하나뿐입니다. 비록 책값을 비싸게 받았다 하더라도 그 `비싸게 받은 돈'을 자기 주머니에 꼬불치지 않습니다. 모두 헌책방을 꾸미고 다시 투자하는 데 씁니다.

용산 <뿌리서점>이나 청구역 <헌책백화점>, 홍제동 <대양서점>은 책값이 싸기로 또 이름을 날립니다. 고대 앞 책방과 홍대앞 책방에서 책값을 한 푼도 못 깎는 분들이 이곳에 와서는 그처럼 싸게 매기는 책값마저 깎으려고 아등바등합니다. 옆에서 지켜보기 무안할 만큼 나대죠. 처음 오신 분들은 "와, 싸다" 하고 느끼시나 한 번 오고 두 번 오며 자주 오는 가운데 그 싼 값도 더 싸게 사려고 떼를 쓰기도 하더군요. 도대체 얼마까지 책값을 깎을 셈인지.

서울대 앞 <책상은 책상이다>는 책값을 높게 받으며 어디에 쓰려는지 아직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어처구니 없이 부르는 값이 많아 이젠 아예 가지도 않죠. 그러나 모든 책방이 이렇지는 않습니다. 새책방에 새책 제값(정가)이 있듯 헌책방에도 헌책 제값이 있습니다.

서울 헌책방 책값과 인천 헌책방 책값을 견주면 인천이 조금 더 비쌉니다. 이는 책을 서울에서 떼오기에 그만큼 `징검돌'을 거친 값입니다. 그러나 이런 값도 곰곰히 따지면 인천-서울 오가는 차삯과 수고비를 더한 값과 맞먹습니다. 곧 서울에서 사나 인천에서 사나 마찬가지란 소립니다.

문제는 어떠한 책을 사서 얼마나 곱다시 읽어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입니다. 책값이 아무리 보아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지간해서는, 아니 여느 때는 부르는 대로 셈을 치러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헌책방도 나름대로 살림을 꾸리고 책방도 넓히고 어두운 자리는 밝게 가꿀 수 있겠죠.

그러나 청계천 거리에 있는 헌책방들은 자리세가 워낙 비싸 아무리 제값을 주고 책을 사더라도 발돋움할 구석이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 사정을 헤아리며 헌책방에서 책을 사 읽는다면 더 좋겠습니다.

ㄷ. 셋째는 `책 깔고 앉지 않기'입니다

어떤 이는 책을 깔고 앉지는 않으나 `밟고 올라서' 책장 윗칸에 꽂힌 책을 빼내려 하더군요. 그러나 헌책방 어느 곳이든 사다리가 있습니다. 사다리가 없는 곳은 높은 걸상이 있죠.

책 위에 앉지 말아야 하는 일은 새책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헌책방에 있는 책은 `헐어 낡았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업수이 여기는 이가 참 많더군요. 자기가 바라는 책이 책장 위에 꽂혀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이가 바라는 책이 아래쪽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바라는 책을 빼낸다며 `다른 이가 바라는 책을 밟을' 수 있죠.

더구나 헌책방에서도 `헌책'은 상품이기도 합니다.
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만이 아니라 자기 것이 아닌 남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헌책방에 있는 널려 있는 책들도 낡고 헌 책이라 해도 소중히 여기겠죠.

책 위에 앉지도 밟지도 말아야겠지만 그 위에 물이나 차를 쏟아서도 안 됩니다. 다들 잘 지킬 듯하면서도 안 지키는 사람이 참 많은 일이 바로 헌책을 업수이 여기는 일입니다.

ㄹ. 넷째는 "본 책 제자리에 두기"입니다.

도서관에서도 본 책은 제자리에 꽂아둬야 합니다. 새책방에서도 본 책은 제자리에 둬야 합니다. 헌책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헌책방에서는 새책방보다 좀 더 신경써야 합니다. 새책방이나 도서관은 책에 붙인 딱지로도 알아볼 수 있고 금세 눈에 띄지만 헌책방은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더구나 책방 꾸리시는 임자분들은 자신이 아는 곳에 책을 두기에 보고 제멋대로 아무 데나 책을 두면 정작 그 책을 찾는 분들은 찾지 못하는 수가 잦습니다.

자기는 사지 않더라도 다른 이에게는 아주 쓸모있고 소중한 책일 수 있습니다. 쌓인 책더미에서 아래쪽에 있는 책을 빼냈다면 빼낸 더미 맨 위에 곱게 올려둬야 하고요.

헌책방을 찾는 손님들에겐 책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듯 생각할 수 있지만 헌책방 임자분들에게는 그게 아니거든요. 책 한 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본 책을 제자리에 잘 모셔두는 일을 몸에 익혀야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몸에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본 책이 자기 책이 아님을 알 테고, 그러면 자기 것도 아닌 남 물건을 곱게 제자리에 둘 줄 알겠죠.

헌책방에서 몸가짐을 올곧게 하는 길을 배울 수 있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익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헌책방 와서도 배우지 못하고 익히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에서도 배우지도 익히지도 못할 수 있겠죠. 아무튼, 본 책은 제자리에 둬서 나중에 헌책방 임자분들이 끙끙대며 책을 나르거나 다시 정리하거나 흐트러져 엉망인 책장을 가누며 일손이 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과 몸가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ㅁ. 다섯째는 바로 "책 무너뜨리지 않기"

다른 일도 크지만 이만큼 헌책방 임자분들을 힘겹게 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참 많은 책 손님은 헌책방에서 쌓은 책탑이나 책더미를 쉽게 무너뜨리곤 발뺌합니다.

책더미나 책탑이 기우뚱거리거나 흔들거리게 놔두고 다른 자리에 가서 책을 보는 사람을 보면 "저것도 나중에 우리를 등처먹는 먹물이 될 거야" 하는 생각이 일게 마련입니다. 헌책방에서 흔들거리는 책더미나 책탑이 흔들리지 않도록 손보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주먹을 쥐고 책기둥과 책탑 아래쪽부터 툭툭 쳐서 기둥이 되는 책들이 균형을 잡도록 합니다. 그러나 이때 너무 깊숙히 들어가지 않게 하며 위아래 줄을 잘 맞춥니다. 그렇게 살짝 툭툭 치며 올라가면 웬만한 책더미는 균형을 잡습니다.

그러나 용산 <뿌리서점> 책탑은 책더미와는 사뭇 다릅니다. 지금은 옮겼지만 지난날 <고구마>도 꽤나 아슬아슬했죠. 이때는 책을 들어내야 합니다. 위에서 책들을 들어내서 바닥에 둡니다. 그리고 비틀린 책까지 들어내고 난 다음에 비틀린 책을 바로잡고 책을 크기에 맞게 놓습니다. 작은 책이 사이에 끼어 있으면 빼냅니다. 책크기가 골고루 맞게 책탑을 하나씩 다시 올리고 뒤에 받치는 책들도 마찬가지로 균형을 잡게 놔두면 그야말로 튼튼한 `탑' 하나가 반듯하게 섭니다.

한 번 뒤집어서 생각해 볼까요? 헌책방이 아니라 우리 집이라면? 우리 집에서도 물건을 쌓아둔 더미나 탑이 흔들거리거나 기우뚱거릴 때 그냥 두십니까? 자기 집이라면, 자기 물건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곧장 바로잡을 테죠. 자기 물건이 깨지거나 다치니까요. 헌책방에선 헌 책이나 `낡아서' 떨어지든 밟히든 그다지 눈길을 안 두는 듯합니다.

헌책방 책은 헌책방 임자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도서관처럼 다 함께 보는 `우리 책'입니다. 그 책이 마음에 드는 때부턴 곧바로 `내 것'이 되고 임자분이 책방 문을 열지 않았을 때는 임자분 것이지만 책방 문을 열고 책 손님이 드나들면 `우리 모두가 보는 책'이 됩니다. 우리 모두 임자 생각(주인 의식)을 가져야겠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도 젊은 학생도 책더미를 툭툭 치면서 다시 바로잡지 않아 마침내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쓰러지곤 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냥 살짝 밀쳤다고 하지만 그 `밀치고 밀침'이 쌓이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냥 자기가 볼 책만 찾으면 끝일까요? 그래서 자기가 볼 책만 찾고나서 다른 사람은 책을 보든 말든 신경 안 쓰면 그만일까요? 그러다가 아예 당신도 다음에 헌책방에 왔을 때 책을 못 보고 책탑과 책더미에 깔리거나 머리에 한 대 얻어맞는 수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최 종규가 쓰는 헌책방과 우리 말 이야기는 
  http://pen.nwonuri.net 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덧붙이는 글 * 최 종규가 쓰는 헌책방과 우리 말 이야기는 
  http://pen.nwonuri.net 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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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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