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이만섭 국회의장 위한 변명

문제는 집권당과 한나라당에 있다

등록 2000.11.21 00:26수정 2000.11.2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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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탄핵안 표결무산으로 이만섭 국회의장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 의장이 여당과 짜고 이중플레이를 하는 사기극을 연출했다며 그의 의장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20일에는 한나라당의 의원들이 항의단을 구성하여 의장실을 방문, 이 의장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거칠게 항의하는 상황까지 야기되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이 의장이 속해있는 민주당의 시선도 곱지않다. 그동안 이 의장은 국회법 날치기 사회 거부 등 여야간 공정한 국회운영을 자임함에 따라, 여당 내부로부터 개인의 인기관리에만 매달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급기야 이 의장이 검찰총장 탄핵안의 표결처리 방침을 밝히자, 여당 당적의 국회의장이 같은 여당 의원들로부터 출입을 봉쇄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일부 언론에서도 탄핵안을 상정하지 않은채 정회를 선포한 이 의장의 행동이 석연치 않다며, 그의 모호한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 의장에게 과연 표결처리 의사가 정말로 있었냐는 것이다.

이처럼 여와 야, 그리고 언론 사이에서 이만섭 의장은 말 그대로 '왕따'를 당할지도 모르는 분위기이다. 그는 과연 '왕따'를 당할만한 행동을 한 것일까.

나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이 의장 개인에게 돌리는 여야의 태도가 옳지않다고 생각한다.

본회의에 이미 보고된 탄핵안에 대한 표결처리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 의장의 표결처리 방침에 불만을 갖고, 더 나아가 물리력을 동원하여 의장의 회의장 출입을 막은 집권 민주당의 행위는 걸핏하면 자신들이 비난했던 '반(反)의회주의적' 폭거라 아니할 수 없다.


아울러 이 의장의 이중플레이를 비난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주장 또한 근거가 불분명하다. 혹 탄핵안 표결무산에 따른 책임을 이 의장에게 돌려 철저히 '외부' 책임을 부각시키려는 포석이거나, 일종의 화풀이용 공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표결처리 시도까지의 중립적 운영노력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가, 사태가 한나라당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귀결되자 이 의장에게 비난을 퍼붓는 것은 어쩐지 너무 속이 보인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물론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법이다. 표결처리를 둘러싼 진통의 이틀동안 이 의장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다만 그동안 집권여당 내부의 비판을 무릅쓰면서도 이 의장이 보여온 초당파적 국회운영의 노력을 인정할 수 있다면, 여야의 정치적 공방 속에서 이 의장의 그러한 노력이 섣불리 묻혀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자칫 소신에 따른 새로운 국회운영의 노력이 이번 사태로 인해 매장당하게 될 경우, 앞으로 누가 과연 자신의 상처를 감수하며 소신을 우선하는 국회운영에 나설 것인지 우려되는 것이다.

나는 자민련 일부 의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선 이후 실제로 탄핵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 의장의 표결처리 의지가 약해진 것인지 어쩐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이전까지 이 의장이 보여준 표결처리 방침은 원칙에 충실한,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야 대결의 격화는 그러한 노력을 무위로 돌리고, 결국 한 사람의 희생양을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닐까.

이 의장 아니라 다른 누가 그 자리를 맡고 있었다 해도, 이같은 곤욕으로부터 과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명색이 집권당이 자기 당 소속 국회의장의 회의장 출입을 봉쇄하고, 야당은 표결처리가 무산되었다고 모든 것을 의장탓으로 돌리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멀쩡히 의장직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국회의장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를 가운데에 몰아넣고 생사를 건 대결을 벌인 여야 정당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 여야 정당의 논리에 충실히 적응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결국 '왕따'시키고 마는 우리 정치권의 위력을 다시 한번 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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