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로저와 나'는 재연되는가?

박성호의 다큐멘터리 이야기1

등록 2000.11.23 16:47수정 2000.11.2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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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박성호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하는 박성호입니다. 사실 제가 다큐멘터리 평론가라든지 아니면 대감독이라든지 해서 이 연재를 하는 것은 아님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다만 다큐멘터리를 무지 좋아하고,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다큐멘터리 제작에 애정이 많기에 제가 아는 이야기 중 일부를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과 공유하려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는 영상분야 중에서 그리 대중적인 분야는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게 될 경우 영화 이야기나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적은 있지만 다큐멘터리 본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본 적은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최근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해 매니아 수준으로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동강’문제를 다룬 방송 다큐멘터리나, 정신대 문제를 다룬 변영주 감독의 독립작품 같은 경우 그 사회적 영향력을 충분히 보여 주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이야기할 ‘꺼리’가 많아졌고 읽으시는 분들에게는 의미 있는 연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는 현재 방송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이며 개인적으로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라는 개인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로 오마이뉴스에 올라오는 제 다큐멘터리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찾기 힘들어지더라도 제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가 있는 곳-http://myhome.shinbiro.com/~fhuco

제 수준이 개론을 이야기할 수준은 아니니까 그런 것은 후일로 미뤄두고 오늘은 그 첫번째 이야기로 자동차 산업 이야기가 들어 있는 다큐멘터리 한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굳이 이 다큐멘터리를 첫번째 연재로 정한 것은 요즘 매일같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대우차 인수문제를 접하면서 ‘제너럴 모터스’ 즉 GM이라는 회사 이름을 자주 들어서입니다. 제가 소개하는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GM의 이름을 계속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큽니다.

그 작품은 바로 ‘로저와 나-Roger and Me’(Michael Moore/1989/87분)입니다.

작품의 감독이자 화자인 무어는 자동차 대기업 General Moters가 공장을 두고 있었던 미시간주 Flints라는 미국의 도시에서 GM이 공장 문을 닫고 근로자들을 해고함으로써 발생한 변화들을 직접 사람과 장소를 찾아 다니며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는 황폐화된 도시와 GM의 사장 로저 스미스를 인과적으로 연결하려 애씁니다. 즉 GM의 사장 스미스가 이 도시의 많은 사람들을 비극으로 몰아 넣었으며 도시를 몰락시켰다는 것이죠.

작품은 전체적으로 무어가 로저 스미스 만나려고 동분서주하는 과정을 따르고 있습니다. 무어는 스미스를 만나려고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하지만 때로는 경비들에게 저지 당하고 때로는 회의장에 앉아 있다가 쫓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 하지 않고 스미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갑니다.

이런 식으로 무어가 찾아 가는 곳에는 골프장이나 , 사냥클럽, 요트클럽 같은 곳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무어는 미국의 부자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줍니다. 무어가 그토록 스미스를 찾아 헤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즉 왜 공장 문을 닫아 플린트를 유령의 도시로 만들었는지를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다큐멘터리 표현방식의 한 부분인 인터뷰 요청이었죠.

GM은 1983년까지 190억불의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GM은 1989년까지 자기들의 출발지였던 플린트의 공장을 11개나 닫고 50퍼센트의 인원을 감축했습니다. 그 인원은 4,5만 명에 이릅니다(정확하게는 3만3천 명 정도로 추산됨). 이 기록은 미국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무어의 주장에 의하면 GM은 자신들의 수익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 하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 회사와 무기 제조사를 사들이는데 사용했고, 아시아와 멕시코에 새로운 공장을 세우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갑작스런 GM의 조치는 플린트를 예전과 다른,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유령의 도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도시는 갑작스럽게 25퍼센트나 실업률이 증가했고, 자살, 배우자 학대, 알코올 중독, 디트로이트와 마이애미를 능가하는 폭력 범죄율 등의 사회문제를 겪게 됩니다. 2만8천명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집을 버리고 남쪽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납니다. 그 바람에 도시는 버려진 빈집들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맙니다. 거의 GM의 조치가 한 도시를 급작스럽게 파괴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무어는 도시의 근로자들과 인터뷰하고, 공장을 떠나 비참하게 생활하는 근로자들의 채무와 주택압류 상황을 통해 간접적으로 스미스의 자본가 비윤리적 속성을 파헤치려 합니다. 결국 GM의 스미스가 크리스마스 축하인사를 하는 행사장에서 무어는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처음에는 인터뷰를 위해 찾아 다니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기습적인 방법을 쓴 것이었죠. 사실 이 인터뷰의 의미는 크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인터뷰를 위해 스미스를 찾아 다니는 동안 작품의 주요내용은 전개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분노의 포도’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다소 코믹하지만 냉소적인 작품으로 평가했습니다. ‘복수 코미디’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벤쿠버 영화제, 토론토 영화제, 시카고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베를린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이 영화는 1989년 전세계 유수 영화제에 소개 되어 많은 상을 무어에게 안겼주었습니다. 하지만 무어는 그리 기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무어는 바로 플린트 GM 노동자의 아들이었습니다. 영화는 자기 가족 혹은 자기 이웃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것을 되새긴다는 것은 여전히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감독 무어가 해낸 것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자본의 속성을 어려운 경제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품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메시지는 ‘자본은 이윤을 쫓아 움직이지 절대 윤리를 쫓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GM이 현재 대우차 부도 이후 대우차 인수에 가장 더욱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부도난 회사와 부도 안 난 회사의 가치 차이를 인식한 듯합니다. 부도 난 김에 인수가격까지 후려칠 모양입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소식에 따르면 피아트와 GM이 공동으로 대우차를 인수하되 전체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과 자산을 인수하고 그 과정에서 부실한 법인에 대해서는 인수에서 제외할 것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또한 기존 경영진이 대우차 노조에 보장해준 5년간 고용을 보장해준 각서 또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GM은 한국에서 출발과 동시에 또 한번 ‘로저와 나’를 재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의 드가가 제공합니다. '드가(박성호)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방문하시면 다큐멘터리에 관한 풍부한 정보들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myhome.shinbiro.com/~fhuco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의 드가가 제공합니다. '드가(박성호)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방문하시면 다큐멘터리에 관한 풍부한 정보들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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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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