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조선일보

등록 2000.11.24 12:38수정 2000.11.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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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라고 불리워진 뒤로 9시뉴스는 커녕 마감뉴스 시간에도 집에 오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집에 와서 혹시나 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가입한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글을 일다 보면 취침시간은 2시가 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어제(23일)는 야학수업이 없는 날이라 몸도 피곤하고 학교 총학선거가 연장투표를 하게 되어 심란한 마음이라 컴퓨터 쓸 일이 있던 동생에게 방을 양보하고 동생 방에서 일찍 잠을 청했다.

하지만 갑자기 일찍 눕는다고 잠이 오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뒤적뒤적하다가 신문을 집어 들었는데 조선일보였다.(하긴 내가 사오는 스포츠신문이나 한겨레를 빼면 우리 집에서 집어든 신문은 조선일보인 게 당연하다. 나를 뺀 우리 가족들이 보는...)

그래서 참 오랜만에 조선일보를 보게 되었다. 대체 요새는 무슨 코미디를 만들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그리고 황장엽씨 기사의 보도가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신문을 펼치게 되었다.

동생이 보다가 자기 방이 놓았는지 스포츠면이 제일 먼저 보였고 옛 추억을 더듬으며 광수생각을 보고 그 만화가 처음 나왔던 재수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신문의 1면을 펼치는데 역시 조선일보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집단이기 봇물, 앞 다퉈 파업' 이라고 써놓고 밑에 머리로 "정부는 뭐하고 있나'라고 대문짝 만하게 써놓았다. 아마 '정부는 제대로 탄압하지 않고 뭐하고 있나'의 줄임말 같았다.

그리고 밑에 공공부문노조의 집회 사진. 차라리 이 사람들이 집단이기주의의 표본이라고 사진설명을 해놓지....


그리고 한 장 넘겨 3면.
'노, 농, 교 들끓는데...손못쓰는 국정'

농민대회 갔다가 다쳐서 입원을 하고, 노벨상 받은 날 전교조 교사분들 연행한 김대중대통령님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별 해괴한 단체의 이름을 길가다 보고 웃고 전태일 열사 30주기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세상을 느끼게 한 노동자대회에서 얻은 감기를 아직도 달고 있는 나에게는 참 잔인한 표제였다.


들끓는데....왜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느냐는 거 같은데 행사는 벌써 하고 있는데....

그렇게 권력견제(?)라는 본래의 언론의 사명을 오랜만에 지킨 것이 뿌득했던지 구석에는 '동지' 한나라당의 주장을 대안처럼 보이게 싣고 있다.(개인적으로 받은 느낌이라 그러시지 않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그랬다)

'신문 이상의 신문' 학교 갈 때마다 지나게 되는 광화문 조선일보 전광판에서 자주 보는 문구이다.

하지만 난 그 가운데의 '의'자가 '한'자의 오타인 것 같은 생각을 항상 하며 지나간다. 그리고 어제 밤은 그러한 생각이 사실과 더 가까움을 더 확신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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