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가을 담아왔습니다.

분명 이들도 남한의 어디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순박한 아들 딸이었다.

등록 2000.11.25 09:46수정 2000.11.2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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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명산 금강산.

금강산 길이 열렸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금강산.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어 봄에는 금강, 여름에는 봉래, 가을에는 풍악, 겨울에는 개골이라 부른다 했다.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빼앗긴 굴욕감을 견디지 못해 울분과 회한에 찬 생을 마감했던 바로 그 산. 옛 선인들도 한국의 4대 명산이라 일컫는데 주저함이 없었으니 금강산을 가보지 않고는 한국의 산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 10월 3일부터 3박 4일간 금강산에 다녀왔다. 천하명산 금강이라 여름 신록도 좋고 가을 풍악도 좋다 했다. 그 중 내가 가을을 택한 것은 왠지 가을 풍악을 제일 먼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0월3일 오후 3시 30분. 출국수속을 마치고 금강호에 승선하여 설레는 가슴을 억누르고 상상에 잠기다 새벽녘에야 조금 눈을 붙였다. 장전항 안내멘트가 나왔다. 이곳은 북한의 최남단 군사항이므로 카메라나 비디오로 촬영하지 말란다. 만일 촬영하다 들키면 카메라를 뺏길 뿐더러 벌금을 내야 한단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를 인솔할 조장이 나와 북한에서의 주의사항을 하나하나 알려줬다. 하라는 것 보다는 하지 말라는 것이 더 많았다. 촬영금지구역에서의 촬영은 안되며 침이나 휴지버리는 것, 담배피우는 것, 산에서의 방뇨, 체제관련 발언 등도 해서는 안된다. 만일 걸리는 날엔 벌금을 물어야 하고 심하면 억류까지 당한단다.

나는 카메라 3대에 렌즈 5개를 가지고 갔다. 렌즈는 160mm이상은 안된다는 얘기를 듣고 모두 그 이하의 렌즈만을 준비하였으나 검색대를 통과할 때 그것마저 안될까봐 조마조마하였다.

드디어 온정리 휴게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현대에서 관광사업을 위해 조성한 곳으로 남한의 휴게소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이곳에 들어서자 “천하제일명산 금강산”이란 빨간 간판이 눈에 들어 오고 뒤쪽으로 금강산이 펼쳐져 있다.

금강산 일만이천봉.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일만이천 굽이굽이 뼈아픈 민족사를 안고 있을 금강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했던가.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하나하나 뼈에 새기고 돌아가리라.

첫날 코스는 만물상코스다. 금강산 관광을 위해 현대에서 특별제작한 33인승 버스가 만물산을 향해 힘차게 출발해서 200년이 넘는 미인송길을 지났다. 거기서부터 걸어가야 한다. 10시부터 산행을 시작하여 2시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4시간이었다. 나는 차분히 감상할 여유도 없이 카메라 3대로 정신없이 촬영을 하였다. 귀봉암 망향대와 천선대에서 바라본 만물상을 촬영했다. 천선대를 마지막으로 촬영하고 있는데 여성 조장님이 내가 제일 마지막이란다. 빨리 내려가라고 재촉이다.


내려오는 길에 빨간 단복을 입을 북한 여성 안내원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어 몇가지 물어봤다. 금강산 4계절중에서 어느 계절이 가장 아름답냐고 물었더니 금년 4월에 이곳에 왔기 때문에 겨울은 아직 모르겠고 다 좋은데 그래도 가을 단풍이 최고라고 한다.

이곳의 북한 여성은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얼굴은 달걀형으로 볼이 둥그스름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이곳에서 만난 80% 이상의 여성이 모두 같은 얼굴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반면 남자들은 고생을 많이 했는지 그리 얼굴이 밝지 않았고 뭔가 불만인 것 같았다. 이래서 남남북녀南男北女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행을 마치고 금강산온천에서 온천욕을 한 후 온정천을 지나 숙소로 오는데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이때 느닷없이 관광객 중 한분이 우리팀 조장에게 물었다. “민가에 불빛이 없어요. 어떻게 된거죠?” 조장 왈 “이곳은 신혼부부만 살고 있어요. 일찍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불빛에 없는 거예요.” 하였다. 조장은 더 이상 물어 보지 말라는 눈치다. 아마도 심양에서 온 조선족 운전기사를 의식해서였으리라.

둘째날은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있는 구룡연코스다. 역시 이곳도 미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조장과 다른 안내원들이 나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어제 일행과 같이 움직이느라 사진 찍을 시간을 내지 못해 힘들어하던 내가 안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들의 마음씀에 비로소 우리가 한핏줄임이 느껴졌다.

쉬지않고 올라 옥류동 계곡을 둘러보고 상팔담을 향해 출발했다. 상팔담은 구룡연의 9개 연못중 8개 연못이 보이는 위치에 있으며, 선녀가 목욕하는 사이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훔쳤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탄성이 절로 났다. 그 곳에 서면 모두 선녀요 나무꾼이 되었다. 북한의 여성 안내원이 신비스런 전설의 선녀로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상팔담의 절경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구룡폭포로 향했다. 이곳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폭포근처로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북측 여성 안내원은 폭포의 길이는 86m, 담의 깊이는 13m라고 자세히 설명해줬다. 또한 여름철 비가 많이 올 때에는 물이 근처 절까지 넘친다고 한다. 관광객이 북한 안내원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하자 흔쾌히 응해 줬으며 ‘어머님 이쪽을 보세요’ ‘아버님 어머님과 다정히 서세요’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분명 이들도 남한의 어디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순박한 아들 딸이었다.

오후 4시 평양교예단 공연을 볼 시간이다. 이미 객석은 만원이었다. 역시 평양교예단은 은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1시간30분에 걸친 공연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마지막 피날레는 공중돌기 묘기였다. 남성배우 3명과 여성배우 2명이 손에서 손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한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했다. 공연이 끝나고 모든 출연자가 무대로 나왔을 때 박수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어떤 공연보다 환호했다.

평양교예단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금강산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금강산에서의 이틀. 속세의 이년과 같았다. 앞으로 이십년동안 그 감동을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통일이 오는 날. 한 동포들과 맘껏 사진을 찍으며 술잔을 기울여도 좋을 날. 내 기다림이 너무 오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00년 10월 5일 가을 풍악에서 김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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