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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원숭이의 일생 <곤과 논>이라는 책
<숨어있는 책>에 가서 이 책을 골라잡으니 동환이 형-<숨어있는 책> 젊은 사장님 이름입니다-이 "종규 그 책 알아요?" 하고 물어 옵니다. 저는 물론 모르는 책이고 누군가가 이 책 얘기를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서 집었답니다. 동환이 형에게 이 책이 어떠한지 여쭈니 많이 알려진 책은 아니지만 괜찮다는 얘기를 해 주십니다.
집으로 돌아와 책 뒤에 있는 `옮기고 나서'란 글을 보았습니다. <곤과 논>은 일본사람 니기 히데오 가 썼고 우리 나라 최경순 씨가 옮긴 책입니다. 책이름 아래엔 `원숭이의 일생'이란 말을 달았지만 실제 줄거리는 "성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품고 있는 일본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성 지식을 갖게 하기 위해 내놓은 책"이라고 적는군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이다가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따로 성교육이란 걸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고 그런 책이 있으니 읽어 보라는 말도 들어 보지 못한 일이 떠오릅니다. 참으로 수많은 책이 나오고 그 가운데 성교육을 다룬 책도 많지만 실제로 널리 읽을 만한 책이라는 녀석은 드물더군요. 제가 모르기도 하겠죠. 더불어 비틀린 성 문화가 나날이 커져가는 세상이라 누구누구 포르노테이프가 돌고 몰카가 판치잖습니까. 이참에도 이런 일이 있는데 그런 일을 떠벌리면서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자라는 수많은 젊은이와 아이들에게 성교육 한 번 제대로 해주려는 생각은 왜 못하고, 그런 얘기를 언론 매체에서 담아내지 못하는지 안타깝습니다.
나. <내 무거운 책가방>이라는 책
이 책은 지금 안산에서 교사를 하는 동무가 읽어보라고 알려 주어서 사서 읽었습니다. 읽기도 여러 번 읽었고 책도 여러 권 사서 교사가 되려는 동무나 후배에게 주기도 했죠. 제가 갖고 있던 책도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다가 누구에게 빌려주었는지 잊는 바람에 다시 한 권 삽니다.
제게 <내 무거운 책가방>을 소개해준 동무는 "교사가 되려는 사람이나 교육에 눈길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시모음"이란 말을 덧붙였죠. 그 말이 더욱 이 시모음에 눈길이 가게 하더군요. 더불어 `내가 알고 있는 책 밭'이란 참 좁고, 뭇 사람들이나 언저리 사람들이 먼저 읽고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면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 아주 좋겠단 생각도 들더군요. 저부터도 제가 읽은 책이 100권이든 1000권이든 10000권이든 `책을 가장 많이 읽거나 알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책을 많이 읽었다고 깨달은 사람이라거나 훌륭한 사람이라거나 언제나 바르고 옳은 말만 하는 사람이라거나 길라잡이가 될 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잖습니까. 지금 우리 나라 대통령도 감옥에서 책을 만 권을 읽었다느니 하는 얘기가 있으나 이렇게 책을 많이 읽는다고 대통령 노릇을 가장 잘 한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책을 많이 읽는 만큼 사람을 만나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책을 많이 읽는 만큼 땀흘려 일하는 시간도 줄어들죠.
없는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기도 합니다. 사실 책은 `없는 시간을 쪼개어서 읽어야' 제대로 곰삭일 수 있지요. 한갓질 때만 책을 읽어서는 `시간 때우기'를 넘어 자기 삶을 이끌고 아름답게 가꾸기는 힘들지요. 동무들을 자기에게 시간이 있을 때만 만나나요? 사랑스런 식구들을 자기 시간이 날 때만 사랑해 주나요? 언제나 속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며 자기 시간을 쪼개고 나누며 함께 해야죠. 책도 마찬가지랍니다.
다. <나라사랑>이라는 잡지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는 틈틈이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책 공부를 하는 동무가 있습니다. 그 동무가 제게 <나라사랑> 100집 특별호 한 권을 어디선가 사서 제게 선사했습니다. 만나기 어려워 손수 주진 못하고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 맡겨두었더군요.
헌책방을 자주 찾아가는 단골들은 이렇게 헌책방에서 가끔씩 만나며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지만 서로가 눈길두고 공부하고 일하는 밭쪽 책을 자신이 찾아간 헌책방에서 찾으면 애써 챙겨주거나 눈에 잘 익혀두고 그 소식을 알려주곤 하죠. 헌책방에서 이렇게 책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일도 참 반갑고 즐겁습니다. <나라사랑> 100집 특별호는 "외솔 최현배 선생 30주기 특집호"입니다. 그래서 `딴책(별책)'으로 외솔 스승이 살아서 일할 때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도톰하게 자료모음도 하나 덧붙였더군요.
우리는 해가 갈수록 기리고 떠올리고 되새길 일을 더욱 많이 가지고 그렇게 기리고 떠올리고 되새길 사람도 많이 만나지요. 살아가며 쓰디쓴 일도 겪고 힘겨움도 있지만 이렇게 기리고 떠올리고 되새길 일과 사람이 있음도 살아가는 맛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라. 깨지고 엎어지며 다시 일어서기
제게 늘 좋은 말씀을 해 주시고 제가 하는 일을 더욱 튼실히 하도록 뒷배하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건방을 빼야 한다"고요. 뭣 좀 조금 하거나 이뤘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거나 건방져 버리면 젊은 나이에 꽃도 피우지 못하고 아까운 사람 하나를 망치는 셈이 된다면서요.
<바람찬 날에 꽃이여 꽃이여>를 중학생 때 쓴 박용주 시인은 어렵게 살면서도 애틋하게 시를 참 잘 썼는데, 그 어린 아이를 언론에서 너무 닦달하고 부추키면서 그만 더 크게 자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맴돌고 말았습니다. 박용주 시인뿐이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너무 일찍 피고 일찍 지고 말 꽃'이 되느냐 `조금 늦게 피어도 오래도록 향긋한 꽃내음으로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꽃'이 되느냐 하는 난달에 서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깨지고 엎어지고 코가 비뚤어지고 고개숙이며 자빠지고 나뒹굴면서 하나씩 삶을 배우고 익히면서 더욱 튼튼하게 자라고 더욱 함초롬하고 뼈대 곧게 자라나지 않나 싶습니다.
<숨어있는 책>에서 <김계곤-현대 국어의 조어법 연구,박이정(1996)>와 <장경환 사진-수인선 협궤열차,눈빛(1994)> <박용래 시모음-강아지풀,민음사(1975)> <옥중시인 미발표 시모음-이렇게 시퍼렇게 살아,한마당(1986)>를 더 챙겼습니다.
제게도 있는 책이지만 사진을 좋아하는 이에게 선사하려고 <수인선 협궤열차> 사진책도 더 사둡니다. <수인선 협궤열차>란 사진책과 함께 <전미숙-우리 시대 또 하나의 풍경,눈빛>과 같은 좋은 사진책이 <숨어있는 책>에는 참 많이 있습니다. <한영수-삶,신태양사>이라는 아주 근사한 사진책도 있지요. 절판 되어 새책으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값진 <삶>이란 사진책이지만 좀처럼 임자를 만나지 못하더군요. 값이 만만치 않은 탓일까요? 그러기도 하겠죠. 더불어 사진책은 굳이 사지 않고 책방에서 구경만 해도 금방 다 볼 수 있기도 하고요.
마. 새로 들어온 책 정보
요즘 <숨어있는 책>엔 프랑스말로 된 원서와 독일말로 된 원서가 여러 상자 들어왔습니다. 그 탓에 이 쪽에 눈길두고 있는 교수분과 학생분들이 자주 찾아오는군요. 여러 날 사이 100권이 넘게 나갔다지만 그래도 서너 상자가 남아있네요. 프랑스-독일 말과 문학을 공부하고 눈길두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소식이 참 반가우리라 생각합니다. 영어 원서는 쉽게 사거나 찾아도 프랑스나 독일 원서는 쉽게 찾지 못하는 현실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 <숨어있는 책> 헌책방은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하기도 했고 헌책방 사진 전시회와 문연 지 첫돌을 맞이한 특집으로 책방 주인과 책방 손님이 나누는 이야기 기사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시 <숨어있는 책> 이야기를 올리는 까닭은 한 번 소개하고 그치기 보다 꾸준히 찾아가며 조금씩 달라져가고 찾아갈 때마다 달리 느끼는 이야기와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앞으로도 새로 문연 헌책방을 소개하기도 하겠으나 이렇게 이미 소개한 곳을 다시 다루기로 함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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