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내각제 개헌론' - 정계 개편의 전주곡

등록 2000.12.23 11:19수정 2000.12.2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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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6·10항쟁 이후 5년 단임제 결정, 임기말만 되면 논란
JP 90년 3당 합당시 내각제 이면 합의서 휴지조각 신세

* 97년, 당시 국민회의와 순수내각제로의 개헌 약속 후보단일화 합의
이한동 총리, 김윤환 대표, 김용갑 의원 등 보수세력 목소리 높아

* JP의 최종목표는 내각제 개헌을 위한 범보수연합으로 지분 획득?
개헌, 재적의원 2/3 이상 필요, 국민투표 거쳐야 - 현실성 희박

* 계보정치로 인한 '후3김 시대의 도래' 우려 목소리도
이회창 총재,이인제 최고위원, 노무현 장관 등 차기 대권주자군 반대

서영훈 전민주당 대표와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의 자민련 합당설 제의가 불거져 나오면서 '정계개편'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제의 당사자인 자민련도 '우리는 우리의 길만을 갈 뿐이다'며 불쾌한 심경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침잠해있던 '내각제 개헌론'이 정계개편의 가장 큰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인 권력구조와 관련, '내각제 개헌론'은 김대중 대통령이 구상하는 국정쇄신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정가의 지배적인 분위기다.

60년대 제2공화국 짧은 기간의 경험 이후 내각제에 대한 논의는 87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두환 전대통령의 군부정권에 대항한 6·10 민주화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산물로 얻어냈지만, 1노 3김은 독재정권을 막는다는 명분에 치중한 나머지 5년 임기의 대통령 단임제 개헌이라는 기형적 형태에 합의했다.


당시 민정당 협상대표로 참여했던 이한동 총리는 훗날 "당시 민정당의 당론은 5년 단임의 새 정권이 끝나는 시점에 내각책임제로 개헌하자는 것이었다. 정국이 안정되면 헌법을 고쳐야 된다는 것, 예를 들어 대통령제로 가려면 미국식 4년 중임제로 가거나 순수내각제로 가는 방향을 염두해 뒀었다"고 회고했을 정도.

이후 90년대 '내각제 개헌론' 중심엔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리가 늘 자리해 있었다. 90년 1월 3당 합당 때도 노태우 전대통령,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와 내각제 이면 각서를 만들었지만, 결국 휴짓조각 신세로 전락했다.


이를 의식한 듯 97년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공동으로 대선에 임할 때는 '합의문'이라는 공식문서를 만들면서까지 후사를 대비한 JP였다. 이 문서엔 ▲국민회의, 내각제 당론 당헌에 명시 ▲99년 12월말까지 내각제 개헌 ▲순수내각제 채택 등이 합의돼 있었지만, 정권 교체 후 민주당측의 소극적 대응으로 유야무야 무산됐다.

이는 자민련측의 강경한 반발을 샀고, 급기야 올 16대 총선을 독자적으로 치루는 등 두당의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다. 그러나 총선결과 한나라당이 제1당을 차지하며 압승한데 반해 자민련은 교섭단체마져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참패하면서 내각제 개헌은 더욱더 멀어지는 듯 했다.

이처럼 한동안 불거질 것 같지 않았던 '내각제 개헌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거국적인 당정개편과 국정쇄신을 내년 연초 단행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터다.

국정운영의 어려움이 '여소야대'정국에도 이유가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공고한 자민련의 협조가 필요한 민주당으로선 내각제가 양측의 관계를 복원시켜주는 탐스런 미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각제의 형태

87년 이후 우리 정치사에서 '내각제'에 관한 논의는 줄곧 이어졌지만, 그 구체적 사실을 언급하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재, 자민련이 주장하고 있는 내각제의 형태는 바로 통일 독일을 모델로 하는 '순수내각제'다.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로만 행사하고, 국정 전반과 의회 운영은 총리가 책임지는 형태다.

두 번째 형태는 '이원집정부제' 형태로 국민의 정부 초기 김대통령과 김종필 총리 시절의 국정 운영이 그 대표적인 예다. 기본적으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지만, 민선대통령에게도 상당한 실권을 부여하여 외교, 안보, 국방 등을 책임지게 하고 총리는 내무와 경제 등 내치를 관장하게 하는 것이다. 97년 야권 단일 후보 결정시 국민회의측이 내심 염두해 두고 있던 제도다.

이외에도 한 사람에게 지나친 권력이 주어지는 대통령제의 폐단은 인정하지만, 굳이 개헌을 거치지 않고 현행 헌법의 내각제적 요소를 잘 살리자는 주장도 있다.

내각제 실현 가능성

그럼, 지난 대선서 자민련과 당시 국민회의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내각제 개헌의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를 보면 그동안의 개헌 주장이 실질적인 개혁 요구라기 보다는 단지 정치적인 속셈에 의해 많이 좌우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현행 헌법에 관한 개헌 제안은 재적의원 과반수 동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가능하도록 돼 있고, 통과 역시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 의원 273명 중에서 182명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민주당과 자민련 전원이 찬성을 한다고 하더라도 한나라당 의원들의 도움이 없으면, 통과는 불가능하다.

새해 예산안 등 산적해 있는 민생 현안마저 정쟁으로 밀려있는 상황에서 최소 50일, 최대 1백10일까지 걸리는 헌법 개정 시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당초 자민련이 내각제 개헌시기의 마지노선을 99년 말로 못박은 것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개헌 전제 조건인 국회 해산 절차를 이제 임기 1년도 안된 16대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이익을 소모하면서까지 용납하겠냐는 것. 결국 87년 개헌이 국민들의 대대적인 열망으로 성사된데 반해 정치권만의 합의와 담합으로 논의되고 있는 '내각제 개헌'은 그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합종연횡의 매개일뿐

구 여권의 한 중진 인사도 내각제 개헌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을 보이고 있다. "전쟁을 치를 때 공격군은 수비군보다 전력이 3배는 앞서야 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는게 상식인데, 내각제도 마찬가지다. 내각제 찬성파가 현상 유지론보다 3배이상 많아야 된다는 말이다. 내각제가 실현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성사된 경우가 없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다른 여권 인사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내각제 개헌의 시기상조를
언급한다. 첫째가,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완료와 함께 정치권의 2선으로 물러서야 할 3김이 내각제가 실현되면 원로가 아닌 계보정치의 보스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국민들의 열망이 멀어진다는 것.

둘째로, 남북정상회담으로 물꼬를 튼 남북화해 무드 속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등한 외교력을 보이려면 내각제는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내각제에 호의적인 한나라당의 초선 의원 관계자도 "현재와 같이 국회 파행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내각제 실현이 가능하겠는가. 무엇보다도 정치개혁이 성사되는 것이 우선이고, 이후에 당 차원에서 내각제를 검토하는 것이 좋다"고 불가의 뜻을 밝혔다.

결국 의원들 내에서도 내각제 성사에 회의적인 분위기가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내각제' 성사 자체보다는 정계개편의 매개로만 정치권이 이용했기 때문이다.

내각제를 주장하는 인물들

최근 들어 개헌론을 언급하는 인물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내각제'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정·부통령제와 대통령 중임제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 김중권 대표 장성민 의원을 비롯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 김덕룡 의원이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럼 내각제로의 개헌을 주장하는 측은 어디일까. 지난 현대사에서 이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87년의 전두환 전대통령, 90년 3당 합당시의 노태우 전대통령을 비롯 97년의 김영삼 전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정권 말기 대통령들은 모두 내각제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김대통령 역시 임기의 전환점을 돈 시점이라는 점에서 내각제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수면 밖으로 부상하고 있다. 내각제를 주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구정권 출신의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 이한동 총리를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 이세기전의원을 비롯 민국당 김윤환 대표 등이 내각제를 선호하는 인물들이다.

내각제 문제로 당내 반발이 노골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99년 말, 김 명예총재가 DJ의 대표적인 조언 그룹 중 한명인 최장집 교수의 사상을 문제삼은 것도 JP의 최종목표는 내각제 개헌을 위한 범보수 연합이 아니냐는 지적을 가능케 해준다.

반면,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나 민주당 이인제 김근태 위원 노무현 장관 등 차세대 주자군은 모두 내각제 개헌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후3김 시대의 부활'

내각제는 대통령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정당에 유리한 제도다. 현 제도하에서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민련의 경우에는 더욱 더 매력있는 제도라는 게 여권 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또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리로서도 내각제로의 개헌은 중앙 정치권에 빨리 편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것이 3김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고려된다면 결코 찬성할 수 없다"

지난 97년, 김영삼 전대통령은 내각제를 주장하는 김종필 명예총재를 사이에 두고 김대중 대통령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김 전대통령이 올해들어 민산을 재건하고 정치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차기 대권구도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기보다는 내각제로의 모색을 통해 PK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일정 정도의 권력 지분을 획득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지적도 여권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99년 15대 국회의원들도 상당수가 내각제를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타났다. 현재의 정치판, 어려운 경제상황, 여전히 존재하는 재벌 등이 반대의 이유로 지적됐다. 현재의 국민들 반응은 더욱 냉랭하다.

"6·10 항쟁의 성과물을 팔아 3김의 영향력을 존속하려는 정치권의 담합"이라는 시민·사회 단체의 반대도 필연적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이에대해 "지난 97년 김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상당수의 사람들은 내각제 이전에 정권교체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 정치권과 달리 '내각제'라는 조건을 중요시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여권의 한 초선 관계자는 내각제 주장이 당분간 계속될 것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념과 정치색이 확연히 다른 김대통령과 김명예총재의 공조는 대선 당시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게 사실이다. 이처럼 이질적인 두 당을 잇는 매개체로 내각제는 더 없이 좋은 매개였으며, 현실에서의 가능성은 별로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정부통령제와 중임제로의 개헌 가능성이 더욱 높다"

결국, 90년 대 이후 자민련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갈수록 위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크로스보팅이라는 결정권을 쥐고 있는 만큼 현재와 같은 정국구도에선 '내각제'를 매개로 또다시 합종연횡이 이뤄질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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