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인터넷 지구 끝에 가 있다

등록 2000.12.27 14:14수정 2000.12.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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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동동이네 시골동네에는 전화가 딱 한 대뿐이었습니다. TV드라마에 가끔 소품으로 나오는 그런 전화기였죠.

온통 까만색으로 돼 있는 이 전화기는 전화번호를 돌릴 수 있는 다이얼도 없었죠. 전화를 걸려면 몸통 옆에 기역자로 붙어 있는 막대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이 막대를 여러 바퀴 돌리고 수화기를 들면 전화기 저편에서 "여보세요" 하는 교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교환에게 서울 000-0000번을 부탁한다고 말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습니다.

그러면 한 삼십 분쯤 있다가 전화가 연결됐다는 신호가 옵니다. 통화를 하기 위해선 삼십분이 넘게 기다려야 했지만 그래도 편지나 전보보다는 훨씬 빨랐습니다. 전화기도 없던 시절 사람들간의 통신수단은 주로 편지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안부편지는 물론이고 각종 소식이나 행사등을 알리는데도 편지가 주로 이용되었죠.

편지를 써서 우표를 붙이고 우체국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까지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야 했습니다. 우체국도 없던 옛날에는 인편을 통해 편지가 전달되곤 했지요. 탈 것조차 없었던 시절이라 편지나 서신이 전달되기까지는 수개월이 지나야 했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인편을 통해 전달되는 편지나 서신이 수개월씩 소요되는데 비해 여러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소문은 불과 며칠만에 수백 리까지 번져나가게 마련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도 이를 비유한 것입니다.

시골에서는 이 속담이 정말 잘 들어 맞습니다. 대학에 다니던 동동이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고향동네에 도착하면 이미 어머님은 동동이가 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시골 장을 보러 나왔던 사람들에 의해 이미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죠. 서울에서의 각종 소식도 금방 시골에 전해집니다.

결혼을 하고 십년 가까이 아기를 갖지 못하던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의 아내가 올해 초 임신을 했습니다. 친구는 혹 아기가 잘못될까봐 갖은 정성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얼마전 동동이가 시골에 갔을 때 할머니가 그러더군요.
"00이 애가 잘못됐다면서?"
"누가 그래요?"
"00이 할머니가 그러던데.."
"아니에요. 벌써 7개월이 넘었는데, 무슨 소리야?"
"아녀. 또 유산됐다고 그러두만. 어떡하냐?"

그 친구의 아내가 몇 번 유산이 된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소리를 듣지는 못했거든요. 지난번 모임이 있을 때 물어 봤습니다. 뱃속에서 잘 크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얼토 당토 않은 일들이 소문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번에 유산됐었다'는 말이 '이번에 또 유산됐다'는 말로 변질된 것이지요.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이젠 이런 속담도 바뀌어야 될 모양입니다. "발 없는 인터넷이 지구 끝에 가 있다"는 말로요. 모 가수의 성행위 비디오가 단 며칠새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미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비디오를 봤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에 비디오 풀 버전이 떳나는 소문이 나돈 후 불과 이틀 후의 일입니다. 이젠 미국에서까지 이 문제로 시끄럽다고 하는 군요.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는 시절에도 이렇게 빠르지는 않았지요. 컴퓨터가, 인터넷이 우리 생활을 많이 바꿔 놓고 있습니다. 예전엔 편지를 주고 받던 것이 이제는 메일로 변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나 사진 동영상들은 순식간에 지구 저편 끝까지 도달합니다.

우리의 사생활도 언제 이런 침해를 받을지 모릅니다. 근거없는 모함이 언제 우리를 옥죌지 모릅니다.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잖은 부작용도 많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폭력적인 게임과 영상에 물들어 가고 영상속의 일들이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상과 컴퓨터가 우리 생활의 기본적인 의식조차 바꿔 놓고 있습니다. 도덕과 예의범절마저도 뒤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사회적인 도덕과 규범이 지켜질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합니다. 점점 폭력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인터넷과 영상문화에서 우리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새로운 대안교육이 필요합니다. 미디어 교육이 중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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