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조사는 정치권의 만병통치약인가?

등록 2000.12.29 19:02수정 2000.12.2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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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초 여야는 '청와대 총기사건'과 '차기대권문건'을 놓고 또다시 거세게 맞붙었다. 양측이 모두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맞불을 놓은 것. 이미 한빛은행 부정대출의혹사건과 공적자금운영실태에 대한 국정조사 활동을 실시하기로 합의한 상황에서 또다시 국조권을 요구하자 남발이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경실련 이석연 사무총장도 "총기사건과 대권문건은 한마디로 국정조사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다. 총기사건은 검찰이 재수사를 하면 되고, 대권 문건은 국정조사를 한들 뭐가 밝혀지겠냐"고 지적한 뒤 "당리에 따라 국정조사권을 남발하는 것은 지양돼야 하며, 정치권이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결국 국정조사 '무용론'만 거세게 제기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처럼 최근들어 문제가 불거지기만 하면,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언급되고 있는 국정조사에 대해 살펴본다.

국정조사는 본래 검찰이나 감사원에서 다루기 힘든 국정의 특정사안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 88년 8월부터 시행된 제도다. 당시엔 87년 6·10민주화항쟁으로 인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 만큼 고조된 데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청산작업 목소리가 높아 국정조사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청문회도 상당한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그 권위를 자랑했다.

이같은 국정조사는 현재 국회 재적의원 4분의 1이상의 요구를 필요로 하며 특별위원회를 소집하거나 관련 상임위원회에 의해 시행된다.

처음 국정조사를 계획할 당시인 88년엔 이미 구성돼있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와 '제5공화국 정치 권력형 비리조사특별위원회'가 그 임무를 대신했다. 의정사상 최초로 시행된 13대 국회 양대 청문회는 노무현 이해찬 등 쟁쟁한 청문회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후 13대 국회에선 조선대생 이철규 변사사건 조사특별위원회가 소집되기도 했다.

14대 국회가 들어선 92년 중반 이후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조사특별위원회를 비롯, 율곡사업, 평화의 댐, 12·12 등을 조사하기 위한 '3대의혹' 관련 국정조사가 실시됐지만 증인 출석 문제로 시간을 끌다 별 성과없이 끝을 냈다. 94년에도 상무대 정치자금 의혹을 둘러싼 국정조사가 온나라를 뒤덮었지만, 당시 여권의 치밀한 방어전략에 의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15대 국회에서도 이같은 흐름은 계속됐다. 15대 총선 공정성시비 국정조사특별위원회와 한보사건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국정조사를 시행한데 이어 정권교체가 성사된 98년 이후에도 IMF환란원인 규명과 경제위기진상조사, 언론문건진상규명, 한국조폐공사파업유도진상조사(옷로비사건 포함)를 위한 국정조사등이 연이어 있었다.

올해 임기가 시작된 16대 국회도 내달 안으로 한빛은행 대출의혹과 공적자금에 대해 국정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국조권 요구의 남발

이 두 건 외에도 여야가 2000년 한해에만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안들은 부지기수다. 국조권 요구가 얼마나 남발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

위에서 말한 총기사건과 대권문건 외에도 '16대 총선 부정시비', '린다김 사건', '현대그룹의 부실화' 등 올해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부분의 사건들은 적어도 한번씩은 국정조사 요구 목소리가 제기됐었다.

문제는 이처럼 진상조사를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는 '국정조사'가 정말로 충실하게 진행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가장 민감한 문제인 부정선거시비가 그 대표적인 예.

14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군 부재자투표 부정, 안기부원의 흑색선전물 투입, 한맥회에 관한 실체적 진실 등에 대한 국정조사를 둘러싸고 여야는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15대 국회에 이어 여야가 바뀐 이번 16대 국회 역시 부정선거시비가
국정조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으로 뜨거웠다. 문제의 대목은 국감과 국조의 한계에 대해 설명한 국정감사및국조에관한법률 제8조로 "감사 또는 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재판 또는 수사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이다.

지난해엔 양측의 입장이 바뀌어 야당인 한나라당은 "조항은 '재판 또는 수사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이 있을 때'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으며, 우리는 분명히 그런 목적이 없다"고 공격했고 반면 민주당측은 "한나라당이 법을 무시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맞불을 놓았다.

결국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으로까지 불거진 선거부정시비는 모호한 법규정과 시비를 가릴 기관이 따로 없다는 이유로 정치공방만 무성한채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런 사례는 현재와 같은 정치풍토가 계속되는 한 총선 후 반복되는 선거부정을 둘러싼 국정조사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초기 이후 본질 훼손돼

이처럼 여야의 당리당략에 의해 국정조사의 본질이 훼손되고 왜곡된 경우는 한두 번이 아니다. 14대 국회 '평화의 댐' 국정조사는 발동만 해놓고 가동하지 못했으며, 15대 총선조사특위도 아무 한 일 없이 활동시한을 보낸 채 공중분해됐다. 지난 99년 언론문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역시 계획서조차 작성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다.

국정조사 사안에 따라 정치권이 얼마나 불성실하게 국정조사에 임했는지 보여주는 몇가지 사례들을 보자.

▲ 의도적인 시간끌기
지난 93년 평화의 댐·율곡 비리 국정조사를 위한 준비 모임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 일부 의원들은 당론 불확정을 이유로 구체안을 준비하지 않거나, 지각출석을 하는 등 의도적인 시간지연으로 방해를 했다.

▲ 조사대상자 논란
특히 전 정권의 사업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상황이다. 5·6공 문제를 다루면서는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 출석에 대해 여야 주장이 엇갈려 국정조사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5대 IMF원인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서도 김영삼 전대통령의 출석을 놓고 여야가 맞붙었다.

▲ 국정조사권 발동요건 강화 주장
지난 93년 민자당은 재적의원 3분의1이상 요구만 있으면 자동적으로 발효하게 돼 있는 국정조사권 발동요건을 재적의원 2분의1이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의도적으로 방향을 돌렸다. 현재는 4분의 1이상의 요구로 성립이 되도록 못박음으로써 대립이 일단락됐다.

▲ 법률논쟁 남발
국정조사가 수표와 계좌추적의 벽에 부딪힐 때 곧잘 제기되는 문제. 특히 정치자금에 관련된 민감한 문제라는 점에서 개인의 금융거래 비밀보호 조항과 공익의 우선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의 소지가 많다. (94년 상무대 비리사건이 대표적인 경우)

▲ 자료요구 거부
국정조사에 있어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단체나 기관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94년 상무대 비리사건 당시 국방부·검찰·법원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자료제출을 거부했다)

▲ 증인들의 위증
애당초 99년 '옷로비'를 둘러싼 청문회는 사안 자체보다는 흥미를 자극하는 것일뿐이라는 지적이 많이 제기됐었다. 청문회 결과 역시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진실을 규명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때 캐낸 유일한 진실은 디자이너 앙드레김의 본명이 '김봉남'이라는 사실 하나라는 우스개가 나돌 정도로 국조의 무용론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88년 국정조사 청문회 초기부터 증인들이 즐겨 사용하며, 한때 유행어가 되기도 했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대답에 의원들은 속수무책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의원들의 자질
97년 한보국정조사특위 청문회장. 몇몇 의원들이 전날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동료 의원들의 혐의를 벗어주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99년 '옷로비의혹' 청문회에서도 한 의원은 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가 위원장에게 제지당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외에도 TV 생중계를 결사적으로 반대하여 국민들의 관심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등 다양한 방해공작이 시도되기도 했다.

국정조사는 '정치권수준'의 잣대

여야의 정쟁으로 국정조사를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소극적 대응으로 영원히 미궁으로 빠져든 사례도 많다.

90년 이문옥 감사원을 둘러싼 정치자금 문제, 윤석양이병이 폭로한 보안사의 불법사찰건, 91년 수서택지 특혜분양사건, 92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선거자금건과 영종도신국제공항, 경부고속철도 건설 등 7개 사업을 비롯, 지난 95년 박계동 전의원이 공개한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설에 이르기까지 정작 밝혀야 할 사안은 손도 못댔다는 지적도 나왔던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조사의 증인신문은 검찰의 수사나 감사원의 감사와 달리 일문일답식으로 공개리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큰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와함께 지난 '옷로비' 의혹에 대한 청문회가 중계된 뒤 국정조사가 불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된 점도 고려돼야 한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은 만큼 사안을 냉혹하고 심각하게 파악한 후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국회관계자의 말이다. 과거에 비해 국정조사권 발동 요건이 완화됐다는 점에서 이번 국정조사는 시대 역행을 고려해야 될지도 모르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송곳같은 질문과 합리적 추궁으로 몇몇 결정적 증언을 이끌어내며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희망을 불러 일으켰던 88년의 기억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번 국정조사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냉소와 회의를 불식시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단순사기극과 권력형 비리라는 엄청난 시각차로 국정조사의 도마위에까지 오른 한빛은행불법대출의혹사건과 국민들의 혈세로 사용된 공적자금의 사용처를 비롯 각각의 책임 소재를 명백히 밝혀야만 할 것이다.

과거의 국정조사 사례를 보면 결과는 두가지였다. 의원들의 활동으로 부족하나마 중요한 진실이 밝혀졌던 초기가 그 하나라면, 이후 대부분의 경우는 국정조사가 실패함으로써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공론화될 기회를 영원히 잃었버렸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국정조사는 진실규명을 위한 마지막 무대로 여겨지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도 "이미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높은 만큼 이번 국정조사까지 알맹이 없는 호통으로 일관한다면, 결국 '특검제'에 대한 요구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앞으로 있을 두 국정조사가 그간의 불명예를 씻고 국민들의 의구심을 시원스레 씻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적어도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만병통치약이 돼서는 안된다.

덧붙이는 글 | 올 한해 마지막 기사가 될 것 같군요. 관심있게 읽어주시고, 좋은 충고 많이 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년엔 더 좋은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덧붙이는 글 올 한해 마지막 기사가 될 것 같군요. 관심있게 읽어주시고, 좋은 충고 많이 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년엔 더 좋은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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