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존엄을 위해 싸운다"

이랜드, 믿기지 않은 이야기들 - 180일 파업투쟁의 짧은 기록

등록 2001.01.03 09:44수정 2000.12.3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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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6000원으로, 그나마도 비정규직으로 언제 짤릴 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시작한 파업이었습니다.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이렇게 버틸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젠 끝까지 가야 합니다.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12월 7일 오후 군포의 변두리. 이랜드 부곡지회에 집결한 이랜드 조합원들의 손짓이 거대한 물류창고 숲을 때리고 있었다. 무전기를 든 채 조합원을 에워싼 검은 제복의 청년들. 그들도 비정규직이었다. 조합원들은 힘든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투쟁을 결의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이랜드와 박성수 회장의 실체는 믿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청렴한 기독교 기업. 젊고 활기찬 가족같은 기업.
IMF 전까지 브렌따노, 스코필드 등 국내 중저가 의류브랜드를 휩쓴 이랜드는 누구나 취업하고픈 선망의 기업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선 군대식 계급질서 - 실제 이랜드는 직제에서 계열사까지 군대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 와 신앙을 빙자한 저임금이 회사를 곪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98년, IMF가 닥치자 이랜드는 절반이 넘는 2000명의 '가족'을 가차없이 거리로 내몰았다.

당시 사무직이 중심이 된 노조는 파업을 벌이며 대항했지만 박성수 회장에게 그들은 "사탄의 무리"에 불과했다. "IMF 극복 후 반납한 상여금을 보전하겠다"는 단협까지 체결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대량해고, 특히 노조에 참여했던 사람 대부분은 강제로 혹은 집단따돌림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경기가 살아나면서 그 빈자리에 야금야금 비정규직 인력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98·99년 2년 동안 대량해고와 비정규직화, 전 직원의 임금 반납·삭감·동결을 기반으로 이랜드는 99년에 300억이라는 막대한 순수익을 냈다.

이미 비정규직은 70%를 넘고 있었다. 기본급 45만원(대졸), 비정규직 수령액 50만6000원. 97년 해고를 감수하며 선배들이 이루어낸 단협을 믿었다. 사측은 4년간의 보너스 보전과 임금 인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다시 직원들에게 돌아온 것은 4년째 이어지는 임금동결과 일방적 단협 해지통보.

그 와중에 정말 믿기 어려운 여직원 집단 성희롱사건이 발생했다.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직접면담을 통한 진술과 법적 자문을 통하여 확보된 자료에 의하면, 이랜드그룹의 (주)이천일 아울렛에서 2000년 5월 중순부터 6월까지 실시한 '직원 서비스 교육'이 여직원들만을 대상으로 교육장소, 교육내용에 대한 사전 공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육군 1사단에서 관리자들의 강요와 강압적 태도로 성적 굴욕감과 수치심을 주는 위안부 교육을 실시했고, 또한 매장 내에서 여러 형태와 경로로 관리자들에 의한 여직원 성희롱과 성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현재 대통령 산하 여성특위에서 진상조사 중이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 6월 16일 파업을 시작했다. 파업이 시작되자 회사 관리자들로 구성된 소위 '구사대'는 집요하게 농성장을 공격했다. 집단폭행으로 여성 조합원들의 몸은 만신창이가 다 되었지만 병원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 사이 회사는 불법대체근로의 천국이 되고 있었다. 교섭에 나서야 할 박성수 회장은 불법대체근로와 부당노동행위, 교섭회피 등 수십 건의 고소·고발로 체포영장까지 떨어졌지만, 당국은 미국으로 도피 중인 그의 소환을 위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반면, 조합 지도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신속했다. 고발이 들어오는 즉시 하나둘 구속과 수배로 떨어져 나갔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전화와 전기가 끊길 정도로 생활고에 허덕이는 것은 각오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반년을 넘긴 기나긴 파업. 생계문제로 부부간 불화가 싹트는 등 조합원 가정의 균열 조짐까지 일고 있었다. 차라리 감옥에 모두 갇히는 한이 있어도 끝을 보고 싶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러 북유럽으로 날던 그날이었다. 새벽, 이랜드의 60여 비정규직 노동자는 서울 중계동 2001아울렛으로 집결했다. 그리고 6층 전산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즉시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통로를 차단했다. 언론사의 카메라가 쇄도했지만 누가 하나 이랜드의, 비정규직의 실상을 전한 곳은 없었다. 그저 "불법 점거"라는 말만이 시중을 나돌았다.

그리고 밤 8시 폭력연행이 시작됐다. 교섭에 임한 지도부는 그 자리에서 연행됐다. 교섭 중 침탈이라는 비열한 사측과 공권력에 분개해 학생 한 명이 투신했다. 조합원은 계단을 개처럼 끌려 내려갔다.

이것이 믿기 어려운 이랜드 180일 투쟁의 짧은 기록이다. 180여 일의 파업투쟁, 50여명의 해고, 10명의 구속, 16명의 수배. 100여명 남짓의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 요구에 대한 이랜드 박성수 회장과 김대중 정부의 답이었다.

"지금 참담한 조합원들의 상황을 보면 그만 싸움을 멈추고도 싶다. 아이들에게도 너무 미안하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임금 문제를 떠나 정규직화, 차별철폐, 노동3권 인정이라는 비정규직 모두의 과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젠 우리만의 외로운 싸움이 아니라 모든 비정규직의 노동자와 연대해 끝을 보고야 말겠다."

뒤를 맡기 위해 점거에서 빠진 이은애(노조 판매지부장) 씨는 끝을 보겠다는 말로 더 물러설 곳이 없는 비정규직의 절규를 대신했다. 이제 파업도 해를 넘기며 200일을 바라보고 있다. 300일 쯤에는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랜드 한 청년 노동자의 편지

....
7월 17일 제헌절. 저희들은 무기한 파업 32일째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6일에 파업에 돌입한 이후 우린 정말 비정규직의 아픔을 몸으로 느껴야 했습니다. 돈 많이 주는 데로 가지 왜 여기 와서 난리 치냐고 되묻는 회사 직원들, '아르바이트가 무슨 노동조합이냐? 야! 너희 사업장으로 가라' 하더군요. 사람답게 인간답게 대접해 달라고 외치는, 정당한 요구에 대해서 회사는 귀와 입을 막아 우릴 거리로 내 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말씀하십니다.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다른 직장 알아 보든가 학교 복학 준비나 하라고 말입니다. 그 때마다 전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학교는 포기해도 지금 하는 일은 포기할 수 없다고, 우리 네 식구가 비정규직인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내가 결혼해서 내 자식까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지금 혀를 깨물고 이 자리에서 쓰러지겠다고 감히 어머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얘기합니다.

아직도 우리 부모님은 이해 못하십니다. 제가 왜 월급도 안 나오는 파업이란 걸 하는지, 왜 텔레비젼에선 데모하는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데 내 아들이 위험하게 그런 일을 하고 다니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비정규직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인간으로서 내 자신의 존엄한 가치를 확인 받을 겁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이쯤에서 줄입니다.

- MBC 라디오 '여성시대' 에 소개된 편지 중에서


비정규직, 탈출구가 없다

비정규직은 임시, 일용, 파견, 용역, 계약, 사내하청, 도급, 촉탁, 위탁계약직 등 요상한 형태의 고용을 모두 포괄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만나는 이마트나 2001 아울렛의 캐셔나 점원들은 거의 100% 비정규직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몇몇 업종으로 업무의 연속성이 있으면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법조항은 비정규직의 문제는 98년 근로자파견법이 시행되면서 예고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은 언제나 해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노조를 설립하거나 가입할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주장은 시어머니께 삿대질하는 것보다 어려운 실정이다.

99년 말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미 전체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그리고 지난해 7월 1일, 근로자파견제가 시행 2년을 맞으면서 외국자본을 비롯한 재계와 한나라당은 파견기간 연장, 파견범위 확대 등 근로자파견법 개악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파견기간 1년 연장'을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재계가 이처럼 근로자파견법을 개악하려한 이유는 간단하다. 현행법상 사용자가 파견근로자를 2년 이상 연속 고용하려면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한 법조항 때문이다.

현재 노동부에 등록된 파견업체에 고용된 노동자 중 지난 해 7월 1일로 계약기간 2년이 만료된 노동자만 8500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 중 대체되지 않고 정규직으로 고용된 노동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노동부의 감독이 허술한 것은 물론이고 설사 적발된다 해도 약간의 뒷돈만 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열악한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은 단지 그들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비정규직이 증가할수록 정리해고의 살엄음판을 걷는 정규직 노동자 역시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위협이 가중됨으로써 사회적 정의와 공정성의 최소한의 조건마저 뒤흔들고 나아가 사회적 불안을 확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과 관련해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차별철폐 △근로자파견법 철폐 △영세사업장 근로기준법 준수 및 부당노동행위 기업주 엄벌 △여성노동자 차별철폐 △노동시장유연화 정책 철회 등을 요구하고 올해 임단협의 우선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아직은 작은 수지만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생겨나고 있다. 99년 재능교사노조, 전국애니메이션노조에 이어 작년엔 용역노동자로 이뤄진 서울대시설관리노조가 파업투쟁을 벌였고, 외국인 이주노동자노조, 한국통신 계약직노조, 사창플라자노조, 명월관노조 등 비정규직 노조가 잇달아 설립됐다. 이랜드 비정규직 분회도 그 중 하나이다. 또 한국후지쯔, 한국내장, 한국우주항공, 제주크라운프라자호텔노조 등이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는 비정규직 노조의 설립과 힘을 모으기 위한 연대가 큰 흐름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기치로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산별노조의 건설도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군포시민신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는 이랜드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실린 라디오 방송 전문 중 일부이며 사진은 이랜드 노동조합 사진자료실에서 다운받은 것임을 밝힙니다.

이랜드 노동조합 홈페이지: www.elandtu.co.kr 
이랜드 파업투쟁 후원금 입금 계좌번호: 조흥은행(예금주 이현숙) 354-04-531033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군포시민신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는 이랜드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실린 라디오 방송 전문 중 일부이며 사진은 이랜드 노동조합 사진자료실에서 다운받은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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