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신년사에 대한 공개 서한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는 대통령이 되시길 바라며

등록 2001.01.02 23:37수정 2001.01.0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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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께!

부족한 제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신년사는 지난 해에 대한 반성이자, 새 해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문서입니다. 21세기의 첫해 아침에 대통령께서 발표하신 신년사를 읽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취임하신 지 어느 덧 3년의 세월이 흘러갑니다. 그 동안에 대통령께선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시키고, 복지국가의 기반도 마련"했으며,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켜 분단 반세기만에 민족의 역사에 평화와 협력을 향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하셨습니다.

누가 뭐래도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는 통일의 새시대를 연 쾌거였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복지국가의 기반 마련'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 군사독재와 사이비 문민정부 시절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 왔던 정보공작기구인 '안기부'가 이름을 바꾸고 오히려 조직 위상이 격상되어 '국가정보원'이 되었고,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의 칼날에 희생되어 '산업예비군'이 되었으며, 농민들은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농기계를 반납하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들어간 인권단체 일꾼들과 감옥에 갇힌 아들을 애타게 부르는 민가협 어머님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며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함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동학농민군의 후예들이 피울음을 토하며 절규하는 저 소리가 정녕 들리지 않습니까.

대통령께선 도대체 누구의 소리를 듣고 정책을 세우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국민들의 절대 다수인 노동자와 농민들이 못살겠다며, "퇴진"까지 거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금융, 기업, 공공, 노동의 4대 개혁을 보다 철저히 했던들 상황은 지금같이 어려워지지 않았을 것"이라니요. "전반적인 개혁의 방향은 옳았지만 실천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니요. 이 무슨 말입니까.

대통령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애초에 잡았던 개혁의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도대체 그 어느 나라의 개혁이 국민의 절대다수인 노동자와 농민을 삶의 벼랑끝으로 몰아간단 말입니까. IMF의 주범들은 떵떵거리며 잘사는데, 다국적기업의 하수인들은 골프치며, 양주먹고 좋아하는데, 죽어나는 것은 노동자와 농민, 빈민들 아닙니까.

똑바로 보십시오. 현실을. 그리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시작하십시오.

김대중 대통령님!

진정 '국민의 정부'란 이름에 값하는 개혁을 하시겠다면 첫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국가정보원 등 각종 인권억압 장치를 전면적으로 청산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께서 강조하는 "완전한 민주·인권국가의 구현"은 요란한 말잔치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은 7천만 겨레의 염원을 받아들여 대통령께서 이룬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위업에도 누가 되는 반통일, 반민주 악법입니다. 그 해악을 대통령께서도 경험으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둘째, 6.15남북공동선언의 철저한 이행과 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사에 박차를 가하셔야 합니다. 통일의 물꼬가 터지자 햇빛을 무서워하는 박테리아처럼 통일을 두려워하는 반통일세력들이 공공연히 딴지를 걸며 나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수 수구세력의 준동에 동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전 '대북정책'이란 말도 통일의 시대를 준비하는 정부정책에는 어울리지 않는 용어라 생각합니다. 북에서 통일정책을 '대남전략'이라 하면 남쪽 사람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통일정책은 어느 한쪽만이 강조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적 합의'를 넘어 '민족적 합의'까지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셋째, 노동자들에게 희생만 강요하는 구조조정을 당장 중단하십시오. 전투경찰의 무장력으로 노동자의 들끓는 분노를 탄압할 순 있지만, 결코 잠재울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께선 '중산층과 서민의 생활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구조조정은 계속 추진하겠다니 그 약속을 누가 믿겠습니까.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에서 노동자를 쫓아낸 뒤 '고용보험과 직업훈련, 실업자 고용업체에 대한 급여의 지원 등'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시키겠다니요. 누가 그 정책을 지지하겠습니까.

넷째, 농가부채를 전면 탕감하고 농민들의 생존과 민족의 생존을 보장하는 농업정책을 추진하십시오. 지난 해 말 제정된 특별법은 '농가부채 특별법'이 아니라, '농민기만 특별법'이란 원성을 듣고 있으며, 농민시위와 관련하여 구속자가 속출하는 상황은 결코 해결책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공권력의 탄압은 더욱 거센 농민의 항거를 불러올 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대통령 말씀대로 "21세기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올해는 우리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중차대한 해"입니다. 우리 민족이 진정으로 외세의존에서 벗어나 자주와 통일의 세기로 나아갈 수 있느냐의 여부가 "올 한해 우리 하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대통령께서 "참으로 놀라운 저력과 애국심을 가진 국민"의 소리를 소중히 여겨 2001년이 "영광의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올바른 개혁의 실천에 힘써 주시길 간청합니다.

어떠한 개혁 정책을 펴더라도 소수 재벌과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진정한 국정의 주인인 대다수 민중들의 심중을 헤아려 주시길 당부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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