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맞이를 어머니 곁에서 보냈습니다

봄이 오면 검은 가지 위에 해맑은 어머니의 미소가 움트길

등록 2001.01.03 01:30수정 2001.01.04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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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맞이를 어디서 할까 고민하던 다른 해와는 달리 올핸 어머니 곁에서 하기로 했다. 식구가 많지 않은 탓에 크리스마스엔 결혼한 동생 네가 와서 어머니와 함께 하기로 했고, 해의 끝과 새해맞이는 내가 맡기로 했다. 오후에 출발하면 깊은 밤에 도착하게 된다며 서른의 중반에 있는 큰딸을 걱정하시기에, 아침 버스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나 몇 알의 밥으로 끓인 물을 마시고 눈꼽만 떼고 터미널로 향했다. 두어 시간 남짓 갔을까, 휴게소에 내려 차 한 잔하고 하늘을 보았다. 쌔꼬롬한 날씨에 도로가에 서 있는 가로수는 바람을 이기고 꼿꼿하게 서 있는 반면, 사람들의 등은 오무라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갈 틈도 없이 빽빽히 서 있는 차들 사이로 얼른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만 달리고 있었다.

다시 두어 시간을 더 가자, 낯익은 도시가 보였다. 시장 바닥에서 우글우글 끓던 사람들 소리대신 노곤한 몸을 말없이 받아주는 어머니같은 무등산에 잔설이 보였다.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여기 서울이야. 아마도 못 갈 것 같아서요. 죄송해요."
"어어... 그래? 할 수 없지."
"하하... 엄마 놀랬지? 여기 터미널이야. 한 20분이면 집에 도착할 거야요."
"그래? 어서 와."

간단했다. 엄마는 서운함을 얼른 기쁨으로 바꿀 줄 아시는 분이다. 앞집은 자식만 여섯이라 명절이라고 모이면 떠들썩했다. 반면에 우리 집은 고작 모여봐야 열이 되질 못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훵했던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보았지만 썰렁함만 더했다. 누구의 잘못은 아니지만 웬지 누군가 죄닦음을 하고 있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실골목을 접어들면 이내 구두소리만으로도 어머니는 문을 열어주신다.
"너냐?"
"응, 엄마!"
사실 바라보기가 민망하다. 두어 달 만에 와서, 한 해 사이에 부쩍 홀쭉해지신 어머니의 볼우물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였다.

어머니는 말없이 밥상을 차리고, 혼자 남은 다섯 살 조카가 이모, 이모하며 안긴다. 따끈따끈한 밥상. 혼자 있으면 음식도 안 해 먹을 것이라며 김치찌개를 해놓고 기다리셨단다.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숭늉을 들이키고 나니 어머니의 얼굴이 똑바로 보인다.

차마 엄마 왜 살이 다 빠져버리셨냐고 말할 수 없었다. 지금도 바깥에 나가시면 육십 할머니 같진 않지만 세월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지 한 해 사이 눈두덩이 푸욱 꺼지고 볼우물이 푹 패였다. 더군다나 이야기하실 때마다 손으로 입을 가리신다.

위에 치아가 하나 빠졌고, 아래 치아도 흔들거리신다는 걸 안다. 함께 밥상에 앉으시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먼저 급한 치아부터 치료받으시라고 하시면, 그러마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부모는 대답만 할 줄 알지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어려우신가 보다. 한 번은 함께 치과에 가자고 약속까지 했지만 그 약속은 허탕이었다.

함께 한 이틀동안 어머니는 새해 소망을 기원하면서 당신의 기원보단 자식들 잘되길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다. 마음 속으로 어머니의 행복함을 빌었다.

어머니는 다음 날 올라오는 내게 두 봉지를 싸주셨다. 하나는 동생의 시댁에서 온 햅쌀과 앞집 언니가 주었다는 돈까스 한 뭉치. 무겁다고 사먹으면 된다고 우겼지만 극구 가져가란다. 사실 도시에선 농사 짓지도 않으니 다 사서 먹어야 하는데도 서울 가면 너두 사먹어야 한다면서 가져가면 좀 낫다시며... 부모의 마음이지 싶다.

등에 멘 두 뭉치가 무거웠다. 대문을 나서는 딸을 보며 안스러워하실 어머니의 눈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실골목을 빠져나왔다.

'엄마 난 잘 지내요. 엄마도 식사 거르지 마시고 잘 챙겨드세요'

나목을 본다. 다시 입을 수 없지만 헤어진 내의를 내놓고 만지작거리시는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봄이 오면 검은 가지 위에 해맑은 어머니의 미소가 움트길 바래 본다.

터미널에 도착해 전철을 빠져 나오는데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딸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처럼 소복이 쌓이리라.

덧붙이는 글 | 새해맞이를 위해 동해로 가거나 어디 좋은 곳을 찾아가진 못했습니다. 더욱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그래도 함께 해야할 곳은 가족인 듯 싶었지요. 식구, 찬밥이라도 따순 물이라도 함께 말아 먹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덧붙이는 글 새해맞이를 위해 동해로 가거나 어디 좋은 곳을 찾아가진 못했습니다. 더욱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그래도 함께 해야할 곳은 가족인 듯 싶었지요. 식구, 찬밥이라도 따순 물이라도 함께 말아 먹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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