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는 이야기 33> 2001년엔 강아지를 사랑하라?

똥 치우며 세우는 새해 목표

등록 2001.01.04 10:19수정 2001.01.0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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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애기가 하나 더 생겼어.
다섯 달도 아직 안 된 애기.
이름은 다티(Dottie).
애기 이름치고는 이름이 좀, 이상하지?
응, 강아지 이름이야.


아빠는 진돗개, 딸은 골든 리트리버(Golden Retriever).
나는 강아지고 고양이고 죽어도 싫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너무 거창한가?) 우리 딸 가연이가 삼 년을 조르는 걸 이기지 못해 아빠는 싸고 귀여운 중국산 씻쭈(Citzu)를 두 달 전에 사왔다.
값비싼 한국 진돗개도 미국 애들이 좋아하는 골든 리트리버도 아닌 얼굴 납작한 중국산 씻쭈를 말이지.

아틀란타 저널에 강아지를 싸게 판다는 광고를 보고 어느 시골 할아버지 집까지 두 시간을 운전해서 6주 된 녀석을 사다가 이름을 '다티'(점박이)라고 지었어. 동물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쓰다듬어 주기는커녕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하는 내가 정말 손바닥만한 녀석이 엄마 떨어진 것이 안쓰러워 정을 붙이고 안아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갈수록 말썽인 거야.

새벽이면 제일 먼저 잠깨서 깽깽거리며 온 집안 식구들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고 아직도 똥오줌을 못 가려서 여기 저기 아무 데나 싸고 돌아다니지를 않나. 한국처럼 장판이나 마루도 아닌 카펫 위에다 싸놓고 돌아다니니 나는 쫓아다니며 그걸 치우고 닦아 내면서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정말 신경쇠약에 걸리기 일보직전이다.
미국에서 강아지 한 마리 집안에서 키우는 것이 그야말로 갓난애기 하나 키우는 것과 다름이 없더라고.

시간 맞춰서 밥 챙겨 줘야지, 하루에 몇 번이고 데리고 나가서 똥 오줌 뉘어야지, 같이 산책하며 운동시켜 줘야지, 이삼일에 한번씩 목욕시켜야지, 목욕만 시키나, 드라이로 말려주고 빗질해 줘야지. 조금만 한눈 팔면 신발이고 신문이고 휴지고 다 물어다 놓고 찢어 놓지. 아이들은 노상 안고 뒹구니 옷에 묻는 강아지 털 지워내야지...

이제껏 강아지 한 마리 키워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리고 한국에서 친구들 집에 가도 마당에서 기르는 모습만 봤던 나는 영 이게 내 비위에 안 맞는 거야.


그래서 한동안 우리 집은 아침마다 강아지 깽깽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녁마다 내가 깽깽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두 아이 챙기는 것도 내 힘에 부치니 강아지 훈련시키는 것과 목욕시키는 것 등등 강아지 뒷치닥거리는 아이들과 남편의 몫으로 단단히 약속을 하고 사왔는데 예상대로 이게 잘 안 지켜지니 말야.


남편과 아이들은 엄마가 강아지를 사랑하면 문제의 80%가 해결 될 텐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고 나는 "강아지가 예뻐서 같이 노는 게 좋으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지"라고 맞서고.

우리는 이 강아지 때문에 세 번의 가족회의를 했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학교에서 오기 전까지는 내가 강아지 당번이고 방과 후에는 아이들이, 그리고 밤 당번은 아빠가 하기로. 목욕당번과 밥 당번도 정했다.
그리고 급기야 나는 올해 목표를 '강아지 사랑하기'로 정하고.

생전 처음 강아지를 키우면서 나는 정말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우리 앞집과 옆집, 그리고 윗집과 뒷집, 모두 개를 키우고 있는데 갑자기 그이들이 달리 보이더라구.

부시의 백악관 입성과 함께 그의 애완견 '스팟'(Spot)의 백악관 입성이 뉴스가 되는 나라.(아틀란타 저널-컨스티튜션, 12월 29일)
개가 사람을 구한 게 아니라 사람이 강아지를 구한 게 뉴스가 되는 나라.(아틀란타 저널-컨스티뉴션, 1월 3일)
굶는 사람도 많은데 수퍼마켓마다 한 섹션이 별스런 애완견과 고양이 밥으로 가득 찬 나라.
자식자랑보다 애완견 자랑을 더 많이 늘어놓고 값비싼 애완견이 부의 척도가 되는 나라.
클린턴 대통령의 애완 고양이 웹페이지와 팬클럽도 있다는 나라.
중국바람이 분 미국에 450달러짜리 차이나 스타일 옷을 입은 애완견이 패션쇼에 등장하는 나라.
참 마땅치 않은 것도 많지만 내가 꼭 배우고 싶은 거 한가지는 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애완견을 키우는데 거리에 강아지 똥이 없다는 거.
미국인들의 60%가 애완동물을 키운다더니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정말 한 집 걸러 애완견이 있다. 그래서 아파트 규칙에는 주변 잔디밭에만 애완견들이 볼일을 보도록 정하고 있다. 가끔씩 우리 윗집에 사는 예쁜 아가씨 제니가 '조이'라는 큰 개를 데리고 산책하면서 비닐 봉지를 꼭 들고 다니는 걸 봤는데 그게 무슨 용도인지 이제야 내가 알았다는 거 아니니. 우리 '다티'는 이상하게 오줌은 잔디밭에 가서 누면서도 똥은 꼭 길 한가운데다 눈다. 그럼 나는 그걸 휴지에 싸서 화장실로 가져가거나 아니면 잔디밭으로 옮겨 놓지.

내가 참 미국 와서 별일 다하고 사는구나 싶다가도 이 작은 일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일이고 규칙을 지키는 일이라는 거, 그리고 그게 내가 기르는 강아지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똥을 치우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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