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오빠가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두고 파리로 떠났다. 작곡이론과를 공부하다가 파리에 가서는 피아노과로 바꾸어 공부하게 된다. 그 오빠가 파리에 산 지 어느덧 5년. 오빠와 오빠를 감싸안고 있는 파리가 궁금했던 나는 6개월 정도 준비기간을 갖고 마침내 1996년 9월 12일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일주일 동안 오빠와 함께 보낸 파리의 여정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기행문이다. *
96. 9. 12 비행기 안에서
나는 좀 두렵다. 낯익은 것들, 친숙한 것들을 뒤로 하고 전혀 낯선 나라로 가고 있다. 오빠밖에 아는 이 없는 프랑스에는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비행기가 뜨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행기가 멋지게 날아올랐고 그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난다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강했는가. 그 결과 수백 명이 동시에 날 수 있는 커다란 날개를 인간은 창조해낸 것이다. 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현실인지 모르겠다.
날아올랐다 싶었는데 어느덧 육지와는 까마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니 집도, 빌딩도, 산도 하나의 평면이었다. 지도책이 펼쳐진 듯 하나의 땅덩어리로 갈무리되면서 나의 나라는 그렇게 안개 속으로 멀어져 갔다.
구름이 하나 솜사탕처럼 일었다가 스쳐 지나갔다. 어느 정도 고도에 이르자 비행기는 아주 천천히 걷는 느낌이었다. 난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어느덧 창 밖은 검은 안개 같은 구름뿐이고 구름의 가장자리에는 빛의 선이 머물러 있다.
친숙한 것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나, 그들과 꼭 맞붙어 있었던 날들. 지금의 나는 외롭지 않고 두려움을 내포한 모험심에 가득 차 있다.
주위에는 꼭 한국말로 얘기할 것 같은 이들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말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 의사소통 방식이 변화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언어의 상이함처럼 사고도 상이하게 된다는 것 역시 그러하다. 비슷한 언어와 사고는 동질감을 형성하고 그로써 민족과 민족이 구별된다.
멀리서 본 홍콩은 빛들의 고향이었다. 무수한 반짝거림들이 둥지를 튼 그곳에서는 싸움도, 미움도 존재하지 않고 예쁜 정만 머물러 있을 것 같았다. 황금빛, 청록빛, 은빛으로 하늘의 별들을 무색케 하면서 반짝이는 홍콩의 야경.
저 빛들처럼 나도 꿈을 꾼다. 어린 시절 가장 가까웠던, 가장 따랐던 사랑하는 오빠와의 반짝이는 시간을, 언어는 상이해졌으나 아직 여전히 남아 있을 동질감과 사랑의 확인을.
1996년 9월 13일
오빠 집으로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나는 코코아, 오빠는 커피를 마셨다. 거리는 기지개를 켜고 있었고 날씨는 초겨울처럼 찼다.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오빠 팔짱을 끼고 집으로 갔다.
오빠 방은 아담했다. 전체 벽 색은 아이보리빛을 띤 흰 색으로 깨끗했고 피아노, 붙밭이장이 큰 가구였다. 붙박이장 옆에는 아이와 미니 오디오가 있었고 오디오 장식장 위에 티브이, 전화, 액자 2개, 조명등 하나가 보였다.
벽에는 오빠가 그린 수채화, 연필 소묘 액자, 피카소 액자가 앙증맞게 걸려 있었다. 문이 두 개 있고 각각 화장실과 부엌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스파게티로 점심을 먹고 뤽상부르 공원에 갔다. 점점 가을에 물들어 가는 마로니에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뤽상부르 궁전, 메디시스의 샘을 구경했다.
공원을 나와 걸으면서 소르본 대학, 파리 시청, 법원을 구경했다. 몽파르나스 타워를 보았고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해진 퐁네프 다리(9번째 놓인 다리, 또는 새로움의 다리)를 보았다.
퐁네프 다리는 굴곡이 아름다운 데다가 인물 두상이 장식되어 있었다. 퐁 데자르 다리(예술의 다리)는 나무로 만든 다리였는데 세느 강의 다리 중 유일하게 차가 다니지 않는 인도였다. 퐁 데자르 다리에서 이젤을 놓고 한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우리는 계속 세느 강변을 걸었다.
세느 강변에는 고서점이 늘어서 있었다. 서점이래야 궤짝 같은 상자가 하나씩 죽 늘어서 있을 뿐인데 그것이 파리의 명물로 손꼽힌다는 데 의아했다. 주로 고서적, 엽서, 그림 등을 팔고 있었는데 장사를 하는 서점을 몇 개 되지 않았다. 듣자 하니 고서점들이 사라져갈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노틀담으로 발길을 돌렸다. 건물 전체가 부조와 스테인드 글라스로 이루어져 있는 듯이 보이는 사원. 굉장히 웅장한데 완성품이 아니라고 한다. 노틀담을 짓는 과정에 인부가 많이 죽고 돈도 떨어져서 짓다 말게 되었다는데 미완성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입장료는 무료였다. 내부는 천장과 창문에 장식되어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 촛불의 조명뿐이었다. 천장이 굉장히 높아서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듣고 싶어졌다.
퐁피두 문화예술센터에도 들렀는데 그것은 지상 6층, 지하 2층의 초현대식 건물로 1997년 완성된 것이라 한다. 철제와 유리로만 지은 건물로 유명하다. 각종 전시회와 영화가 상영되는 곳이다.
파리 거리를 걸으면 마치 100년 전의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이 일곤 한다. 아름다운 건물들은 100년 동안 파리 사람들과 함께 애환을 나누었다. 그림 같은 집들에는 창문이 많고 창문마다에는 쌀쌀한 날씨에 항거라도 하듯 작은 꽃들이 천진한 미소를 짓고 있다.
파리 거리는 신호등이 참 많은데 파리 보행자들은 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다. 보행자들에 대해서는 교통법이 관대하기 때문이다. 신호 위반한 차들(노란 불에 움직여도 마찬가지)은 위반시 많은 벌금을 물기 때문에 교통 법규를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이에 반해 보행자는 옆에 경찰이 서 있고 빨간 신호등인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간다. 이는 파리가 자동차를 타는 운전수보다 보행자를 편애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재미있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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