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오빠가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두고 파리로 떠났다. 작곡이론과를 공부하다가 파리에 가서는 피아노과로 바꾸어 공부하게 된다. 그 오빠가 파리에 산 지 어느덧 5년. 오빠와 오빠를 감싸안고 있는 파리가 궁금했던 나는 6개월 정도 준비기간을 갖고 마침내 1996년 9월 12일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일주일 동안 오빠와 함께 보낸 파리의 여정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기행문이다. 2편에서는 주로 에펠 탑과 베르샤이유를 둘러본 감상을 다루었다.)
1996년 9월 14일
오늘은 오빠의 아르바이트가 밀집된 날이다. 오빠는 남자 직장인 한 명, 여자아이 둘(오리안느와 에믈린느)과 그녀들의 아빠, 이웃집 부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다. 남자 직장인은 연습시간이 부족했다며 레슨을 다음으로 미루자고 연락해 왔다. 우리는 1시에 있을 레슨을 위해 오리안느 집으로 전철을 타고 갔다.
오빠가 2년째 피아노를 지도하는 그 집에 들어섰을 때 친절한 웃음을 가득 띠고 부부가 맞아 주었다. 여자와 함께 오는 건 처음이라며 보기 좋다고 웃는다. 여동생이라고 하니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다.
에믈린느는 4살로서 딸 다정이 또래였는데 홍역을 앓는지 얼굴이 불긋불긋하였다. 오리안느와 에믈린느가 내게로 달려와 인사했는데 얼떨결에 "봉쥬∼"하면서 입을 맞추게 되었다. 그런데 서로의 입술이 약간 빗나가서 내 입과 코 사이에 에믈린느의 침이 묻었다.
타일 바닥 위에 놓은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오리안느와 에믈린느가 레슨을 받았고 그 다음에는 그녀들의 아빠가 레슨을 받았는데 아주 열심이었다. 질문에 대한 오빠의 설명과 시범이 많은 것으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2시 30분 정도에 레슨이 끝나고 나오는데 부부의 말이 우리가 서로 닮았다는 것이다. 웃으며 다시 예쁜 아이들과 뽀뽀를 하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빠가 말하기를 뽀뽀는 입에 하는 게 아니고 양쪽 뺨에 가볍게 하는 것이라 한다.
우리는 에펠 탑으로 향했다. 기다리는 줄이 무척 길었다. 케이블카 모양의 운송차가 오르락 내리락했는데 요금은 8400원 정도였다. 까마득히 올라가는데 내가 탄 케이블카만 떨어질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땅이 아득히 멀어지면서 발이 떨리고 가슴은 두근두근하며 어찌나 겁이 나는지 몰랐다.
오빠는 그 높이에서도 밧줄로 몸만 안전히 묶여 있다면 뛰어내릴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나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그런 용기를 낼 수 없을 것 같다.
1889년에 세워진 에펠 탑은 TV 탑까지 321미터이다. 제1전망대(57미터)에서 한번 서고, 제2전망대(115미터)에서 엘리베이터(사면이 유리로 된)로 갈아타고 제3전망대(274미터)로 갔다. 꼭대기에는 망원경이 있고 유리로 막혀 있었으나 한층 더 올라가면 철사로만 막아 공기가 통하게 되어 있었다. 파리 정경도 시원스레 눈에 들어왔다.
꼭대기에 오르니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63빌딩 전망대와 비슷했지만 파리가 더 아름다웠다. 몽마르뜨 언덕, 블로뉴 숲, 개선문 등이 시야에 들어왔다. 센 강을 사이에 둔 팔레 드 샤이요가 정면으로 보였다.
한 노인이 날이면 날마다 에펠 탑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식당 점원이 노인에게 에펠 탑이 그렇게 맘에 드냐고 말을 건네자 그 반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파리 어느 곳이나 이 망할 놈의 에펠 탑이 안 보이는 곳이 없으니 에펠 탑을 안 보기 위해 여기에 매일 오는 것이지."
우스개 소리이지만 어쩌면 에펠 탑은 파리 시민에게보다 외국인에게 더 사랑받는 파리의 명소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에펠 탑은 파리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기에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1996년 9월 15일
김치랑 두부랑 마른 반찬을 넣고 밥을 맛나게 비벼 먹었다. 그리고 베르샤이유로 가기 위해 10시 40분에 출발하는 교외선 전철을 탔다. 30분쯤 걸려 11시 10분에 도착하였다.
건물마다 입장료를 받고 있었고 워낙 넓어 궁전 내부를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베르샤이유 첫관문은 무료였으나 정원으로 들어가려 하자 입장료를 받았다.
정원이 블로뉴 숲과 비슷하다고 오빠가 말해주었다. 정원의 좌우에는 넓은 길이 닦여 있었다. 옛날 귀족들이 말 타고 다닌 길이라 한다. 곳곳에 조각상이 보이고 연못도 굉장히 넓어 배를 탈 수 있는 것, 작고 아담한 것 등 다양한 크기였다. 한가운데 갈색 말들의 조각이 있는 녹색의 샘이 인상 깊었다.
정원을 3시간 30분 동안 걸어다녔지만 다 보지 못했을 정도로 베르샤이유 정원은 넓었다. 똥 냄새가 많이 났다. 베르샤이유는 똥 냄새로 유명하다 한다. 화장실이 따로 없어서 정원 여기 저기에서 볼일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파리 시민들은 유독 개를 사랑해서 산책길에 꼭 개를 데리고 다닌다. 거리 곳곳에는 개들이 눈 똥이 흔하고 새벽마다 개똥을 치우기 위한 차가 다니며 물로 거리를 씻어내곤 한다.
궁전의 본건물은 아니지만 마리 앙뜨와네트가 궁전의 번잡함을 피해 즐겨 찾았던 별궁(프티 트리아농)이 예뻤다. 벽 색깔이 분홍색이었고 꽃밭에 핀 꽃들도 진분홍이라 건물 색과 잘 어울려 가을 햇살에 화사했다.
오래 걸었더니 둘 다 다리가 아파서 오빠는 절뚝거렸고 한번도 앓는 소리를 안 냈던 나도 발바닥이 아프다고 하소연을 했다. 전철을 타자마자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파리 건물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틈이 없이 지어져 있다. 건물과 건물을 구분짓는 것은 각 건물의 모양, 색깔의 차이뿐이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간격은 아니었다. 골목길은 없고 차가 다닐 만한 길뿐이었다.
전통적인 파리 건물의 특징은 덧문에 있다. 덧문들은 대부분 나무로 되어 있고 덧문 밖에는 턱이 있어서 꽃화분이 놓여 있다. 파리 거리를 걷노라면 프랑스 사람들이 꽃들을 참 사랑하고 잘 가꾸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파리 사람들은 햇빛을 좋아하고 화장을 잘 않고 다닌다. 화장하는 이는 나이든 이들과 직업여성뿐이다. 심지어는 티브이에 나온 톱모델조차도 얼굴에 화장기가 별로 없다. 예술의 도시로 유명한 파리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같아 가장 예술다운 예술은 자연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파리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햇빛이 났다가도 비가 오고 또 조금 시간이 지나면 햇빛이 난다. 비도 많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뿌리다가는 금세 그치고 잠시 후에 또 조금씩 내린다고 한다. 일년 내내 그러하다고 하니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띠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내가 파리에서 머무는 동안은 비를 볼 수 없었다. 오빠도 드문 일이라며 신기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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