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갔다가 오는 길에 작은오빠가 '까뮈의 이방인'을 들려주었습니다. 그게 내게로 온 최초의 문학이었습니다.
"오빠, 오늘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어떨 때 행복을 느끼냐고 물으시길래 삶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대답했어."
지금 생각해 보니 기껏 열네살짜리 여자애가 삶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거창한 대답을 했을까 핀잔을 줄 법도 한데 나의 사랑하는 오빠는 인생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니라 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대답했으면 좋을 걸 그랬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후, 고등학생이 되어 영어 수업을 받고 있는데 교과서의 이런 내용이 나를 사로잡아 빨간 줄을 긋게 되었습니다.
좋은 책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첫째, 오랜 시간의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은 책이 좋은 책이다.
둘째, 한번 읽고 던져버리는 게 아니라 자꾸만 읽어보고 싶은 책, 읽을 때마다 새로운 책, 시간이 지나서 읽었을 때는 독자의 정신이 성장함에 따라 함께 성장하는 책이 좋은 책이다.
그 내용을 읽고 소녀는 나름대로 그녀의 좋은 책을 선정하였습니다.
1.어린왕자
2.갈매기의 꿈
3.꽃들에게 희망을
그후 소녀는 첫째 조건에 맞는 고전들을 여러 해를 두고 읽어나갔습니다. 데미안,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적과 흑, 안나 카레니나, 달과 6펜스, 사반의 십자가….
참 신기했던 것은 고전을 읽으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하나 낯설지 않았습니다. 마치 내 마음을 읽고 그대로 그려낸 듯 어쩜 그리 섬세하고 공감을 주는지 몰랐습니다. 고전의 뛰어남은 캐릭터가 보편적인 인간 성향을 표현함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대와 나라와 성별과 민족의 장벽을 넘어 인간 내면의 동질적인 성향을 보여주었습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 휴머니즘에 공감하게 해주었습니다.
19살에서 20살 무렵 그녀는 사람은 왜 사느냐? 삶의 가치가 어디 있느냐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방황했고 그녀가 오랜 세월 사랑해 왔던, 진리의 보고라고 믿었던 책이 더이상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상대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허무의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려 보다가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게 된 성경에서 나름대로 결론을 얻고 그 문제에 관한 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결혼 후엔 소설을 즐겨 읽습니다. 가장 소설적인 삶이 있고 가장 삶다운 소설이 있었습니다. 소설은 어느 것이나 거의 비슷했지만 편식하듯이 소설만 읽었습니다. 언젠가는 소설을 쓰게 되리라 예감하면서….
소설 중에서 김미진의 ≪모짜르트를 좋아하세요≫와 작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실화소설 ≪끼≫ 3권,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신경숙의 ≪외딴 방≫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모짜르트를 좋아하세요≫는 화가들의 창작 과정과 소설적 재미가 어우러져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소설이 허구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하지만 자전적 소설이나 실화 소설이 더 나를 끌어당겼습니다.
일상이 내 목을 조를 때, 권태와 쓸쓸함이 나를 덮칠 때 우물가를 찾아가듯 소설을 펼칩니다. 그리고 내 것이 아닌 경험을 상상 속에서 하면서 꿈을 꿀 수 있는 그 시간이 행복합니다. 그 꿈들이 저장 양식으로 내 안에 비축되었다가 언젠가 어느 계기에 내 글 속에서 멋진 옷을 입고 살아 나오리라 믿으면서 오늘도 도서관을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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