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아 선생은 봄을 사랑하는 수필가이다. 봄은 다섯 달이라도 좋겠다 하고, 희망이 있다면 봄을 다시 보는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봄을 통해 젊음을 다시 느껴보는 것이 좋으신 것이다. 그분이 가장 좋아하는 말조차 조춘(早春)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조춘'보다 '이른 봄'이라는 말이 더 산뜻한 것 같다.
금아 선생과의 첫 번째 공통점을 발견하여 기뻤다. 나도 봄을 좋아한다. 봄은 멋진 남성의 눈웃음과도 같은 설레임을 준다. 타인에 대한 경계심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부드러움을 갖고 있다. 봄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느낄 줄 아는 힘이 있듯이 나뭇가지에 돋는 아가손처럼 보드랍고 여린 잎에서 상대적으로 나의 삶을 느끼고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금아 선생은 아직 동심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선생의 책상 서랍 속에는 구슬치기용 마블이 있고,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 가게 주인이 부러웠다고 한다. 그 말 속에서 눈이 맑은 소년을 읽는다. 선생은 훗날 손자들과 구슬치기, 장기를 하게 되길 바라고 있다. 선생은 이웃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다 주는 도산 선생의 자연스러운 인간미를 찬미한다. 금아 선생의 그러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은 인류의 고향이 아닐까 한다.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細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라는 선생의 말을 나는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해 보았다.
뇌의 기능이 쇠퇴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게 아니라 추억의 보물 상자에 부지런히 산호와 진주 같은 추억들을 담아놓지 않은 거라고. 추억의 상자가 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그저 바쁘게만 시간을 보낸 거라고.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젊어서는 꿈을 먹고 살고, 나이 들어서는 추억을 먹고 산다는. 삶이 경제적인 부의 축적이나 정력의 소모가 아니라 추억 만들기의 장이라고 믿고 그렇게 사는 이들이 많은 우리 인생은 얼마나 훈훈할까.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라는 수필에서는 금아 선생이 삶을 끔찍이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욕심 없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위의 인연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분의 모습이 한없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동심이 인류의 고향이듯 금아 선생의 살아가는 모습은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바로 그것이다.
나는 어떤 생활을 사랑하는지 돌이켜 보았다.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남편으로 인해 인생의 가장 큰 숙제로 남아 있던 외로움이 대부분 해결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가장 사랑하는 오빠와 계속 떨어져 살아야만 했던 그 긴 시간 속에서 외로움은 가장 견디기 힘든 삶의 고통이었다. 또 나는 내 딸 다정이를 사랑한다. 작고 맑고 예쁜 그림 같은 다정이를. 글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글을 쓰는 시간들을 사랑한다.
동해 바다의 수평선 위에 오징어배가 셋 앉아 있었는데 그 모양이 초승달이 하늘에서 내려와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 아름다움을, 단풍잎이 그려진 벽지로 도배한 듯 가을이 예쁘게 꾸민 보도블럭을 밟는 기쁨을 사랑한다. 산을 오를 때 이름 모를 새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와 낙엽이 지면서 내는 신비한 소리를 사랑한다.
인생이 마냥 허무하게 느껴지던 20대 초반의 나는 내가 사랑해 왔던 책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했었다. 나의 인생의 가장 큰 의미는 사랑이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의 인생이 궁금해지기 시작해서 이런 저런 모양의 삶을 엿보기 위해 나는 책을 읽는다.
그런데 금아 선생은 "작은 놀라움, 작은 웃음, 작은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는다. 문학은 낯익은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여 나를 풍유(豊裕)하게 하여 준다"라고 하였다. 큰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작은 것에 행복할 줄 아는 그분의 소박한 생활 태도를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창작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시인이 낯익은 사물들을 어떻게 새롭게 창조해내는지 그 안목에 주의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사고의 영역이 넓혀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금아 선생의 글에서 감탄한 부분은 지극한 딸 사랑에 대한 내용이다. 그분의 일생에 두 여성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그분의 엄마, 하나는 딸 서영이라고 한다. 특히 서영이를 그분의 엄마 부탁을 받고 하느님이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라고 묘사한다.
해외에 있던 일년을 빼고 유치원서 국민학교 졸업 때까지 거의 매일 서영이를 유치원으로, 학교로 데려다 주고 또 데려왔다고 한다. 해외에 있을 때 딸에게 선물할 인형을 사려고 여러 날 여러 백화점을 돌아다녔다고 한 고백에서도 금아 선생의 유별난 딸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서영이와 같이 지낸 시간이 참된 시간이었고, 아름다운 시간이었고 생애 가장 행복한 부분이라고 서슴지 않고 단언하는 금아 선생. 그렇게 사랑하는 자식을 왜 하나만 낳았을까 궁금해진다.
금아 선생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아프게, 슬프게 또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다. 엄마가 없는 젊은 시절을 보냈고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공통점이 나타난다. 선생은 엄마 같은 애인과 아내를 갖기 바랐고 서영이가 엄마 같은 여성이 되기를 바라면서 다시 한번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나도 사춘기 시절에 엄마를 잃고 지금은 딸을 가진 엄마가 되었지만 아직도 엄마를 잃어버린 고향처럼 그리워하고 남몰래 우는 때가 있다. 소년 시절, 엄마가 엄마, 아빠의 옷과 소년 천득의 옷을 따로 챙겨넣는 것을 보고 불안했듯이 나 또한 소녀 시절, 엄마 품에서 불안하여 울었었다.
"우리 막내 딸 시집 갈 때까지는 살아야 할텐데…"라는 엄마 말 때문이었다. 엄마가 학이 되어 날아가는 꿈은 아니라도 엄마가 돌아가신 후 몇 달 동안 살아 돌아오는 꿈을 꾸었었다. 꿈에서 엄마는 내 머리맡에 앉아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시며 "난 죽지 않았단다"라는 말을 나로 믿게 했다. 그보다는 내가 믿고 싶어서 선뜻 받아들인 것이리라.
꽃을 사랑하는 금아 선생, 아기를 낳고 젖을 주지는 못하지만 난영(미국에서 딸 서영에게 사다준 눈이 파란 인형의 이름) 엄마라고 자칭하는 금아 선생, 엄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안고 사는 금아 선생을 만나러 나는 비원에 가고 싶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 눈이 온 아침 금아 선생을 만난다면 서점에서 만난 '인연' 못지 않게 반가우리라. 돈화문까지 나오다가 노란 꾀꼬리 소리를 들으러 다시 비원으로 돌아가서 스무 번이나 더 들었다는 그 꾀꼬리 소리를 나도 듣고 싶다. 그날이 파란 토요일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수십 년간 사귀어온 금아 선생의 친구들이 하나하나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데, 선생의 일부분인 친구가 떠남에 따라 그분 자신이 줄어들 듯 느끼신다는 데 잃어가는 인연의 빈자리에 나머지 삶을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인연이 되어 드리고 싶다. 아니, 내가 되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금아 선생이 나의 스승이 되어 주시면 좋겠다. 금아 선생은 나의 스승이라고 행복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는 행운을 늦게나마 누리기 바라는 것이다.
이번 주 수요일에는 모처럼 비다운 비가 온다고 한다. 꾀꼬리 우는 오월이 아니라도 아침부터 비가 오면 비원에 가시겠다 했으니 비가 오는 아침이면 비원에서 서성대는 나같은 독자가 있을 것 같다. 비원에 비가 내리면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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