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갈 길은 역시 원천기술 개발"

<벤처인물탐험 3> 성진씨앤씨 임병진 사장

등록 2001.01.13 17:40수정 2001.01.1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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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이 스타벤처가 된 것부터가 슬픈 현실입니다. 휴맥스와 같은 제조업 중심기업 대신 실체 없는 닷컴기업이 고평가되면서 너도나도 닷컴에 뛰어든 것이 벤처투자자금을 분산시킨 거죠."

지난달 29일 산은캐피탈에서 15억원 투자를 유치해 간신히 명예회복을 했지만 성진씨앤씨 임병진(36) 사장에게 2000년은 수난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초라한 매출 실적에다 의욕적으로 시도한 전문경영인제 도입 실패, 그리고 투자유치활동에 지나치게 체력소모를 한 탓에 기술개발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최근 사장실을 연구소 바로 옆으로 옮긴 그는 다시 엔지니어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 연구개발에 매진하겠다는 각오다.

2000년 벽두만 해도 임병진 사장과 성진씨앤씨의 미래는 장미빛이었다. 98년 뒤늦게 DVR(디지털 영상저장장치) 업계에 뛰어든 성진씨앤씨는 자사 모델인 Diss의 해외수출로 99년 60억원대 매출을 달성하면서 3R, 코디콤, 아이디스 등과 함께 이 분야 대표기업으로 떠올랐다. 덕분에 코스닥에 등록도 안된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은 장외시장에서 이미 수만 원대에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Diss의 수출을 과신한 나머지 매출목표를 1000억원대로 지나치게 높여 잡은 것이 무리수가 됐다. 일시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당장 많은 자금이 필요했고 연구개발도 뒤로 미룬 채 투자유치활동에 나섰던 것이다.

"지난해 4월경부터 기관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이미 벤처투자시장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뒤였죠. 그 뒤 우리가 요구하는 가치와 기관이 제시하는 투자배수의 괴리는 점점 벌어졌죠"

결국 성진씨앤씨는 투자 유치 지연 후유증과 해외 독점판매권 문제로 인한 수출 부진이 겹치면서 최악의 한해를 맞았고 주가 역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지난 9일 성진씨앤씨 서초동 사옥에서 만난 임병진(36) 사장은 최근 주가가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전반적인 증시 분위기 침체도 원인이지만 일부 사채업자들에 작전으로 입은 피해가 많아요. 실제로 그렇게 저가에 매도하는 주주는 거의 없거든요. 과거 고가에서 거래될 때보다 회사 가치는 더 좋아졌는데 말이죠."


초심 되찾은 엔지니어 출신 사장

성진씨앤씨는 서초동 7층짜리 사옥 전체를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창업 당시 이 건물 7층 쪽방에서 출발, 한층한층 넓혀 결국 건물 전체를 사버린 만큼 이 건물에 대한 임병진 사장의 애착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임 사장은 지난 11월, 2층 관리부서와 함께 있던 사장실을 5층 연구소로 옮겼다. 이는 자신이 직접 연구개발을 챙기겠다는 의지 표현이면서 지난해 초 파이낸싱으로 회사를 키우겠다는 의욕에 앞서 회사 부실화를 자초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앞으로 경영 활동은 안정을 지향하면서 제 자신부터 연구개발에 전념해 새로운 아이템 개발에 도전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기술력에서 세계적으로 앞선 기업을 만들겠다는 것이죠. 올해를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아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이렇듯 벤처 거품의 희비를 동시에 맛본 임 사장은 제조업 벤처의 가능성을 재확인했다고 말한다.
"닷컴이 스타벤처가 된 것부터가 슬픈 현실입니다. 휴맥스와 같은 제조업 중심기업이 스타가 됐어야 했는데 이런 기업은 저평가되고 실체없는 닷컴기업이 고평가되면서 너도나도 닷컴에 뛰어든 것이 벤처투자자금을 분산시킨 거죠. 앞으론 제조업 중심기업이 더 좋은 평가를 받게될 거예요."


값비싼 수업료 치른 전문경영제 실험

임병진 사장에게 2000년은 내우외환이 겹친 수난의 해였다. 내부적으론 외부 전문 경영인을 영입했다 정착시키는 데 실패했고 외부적으론 기술도용문제로 DVR업계 경쟁사인 3R과 신경전을 벌이다 결국 법정공방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특히 두 차례 조직개편을 거치며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전문경영제 도입 실패는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그들 개인의 능력이 부족했다기보다는 대기업 출신들로 벤처기업 분위기가 맞지 않아 생긴 문제였습니다. 그렇다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닙니다. 제 스스로 경영이나 재무에는 능숙하지 않고 연구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에 곧 관리를 담당할 국내파를 영입할 계획입니다."

성진씨앤씨의 직원수는 130여명. 임병진 사장은 불과 1~2% 정도에 불과한 이직률을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여긴다. 직원들이 "우리 회사다"라는 주인의식을 갖게 만들기 위해 일찌감치 우리사주를 도입했는가 하면 친인척 등용을 배제해 벤처기업에 관행화된 낙하산 인사를 없앴다. 특히 아무리 회사 자금사정이 안 좋아도 직원 월급 한번 거른 적 없다.
"CEO는 우선 투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직원들과 주주들에게 모든 걸 떳떳이 밝힐 수 있어야 하고 개발하지도 않은 제품을 미리 발표하거나 회사를 사장 개인의 이익 달성을 위한 매개체로 삼아선 안되죠."


자동차 연소해석장치에서 DVR까지

서울대 기계공학과 84학번인 임병진(36) 사장은 대학원생이던 93년경 'SNUCAS'라는 자동차 연소해석장치를 개발해 이미 화제가 됐던 인물. 뿐만 아니라 관련 연구소를 직접 찾아다니며 이 제품을 3억원 어치나 팔아 뛰어난 영업수완을 과시하기도 했다. 당시 3년 후배로 이 장치를 공동개발한 임인건(33) 연구소장은 이후 성진씨앤씨 창립에서 DVR 개발까지 임 사장의 행보에서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다.

그들이 CCTV를 대체하는 디지털 영상감시장치인 DVR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창립 이듬해인 98년. 당시 DVR을 생산하는 업체는 맥스텍, 코디콤 등 두 회사 정도에 불과했다.
"97년 당시 전자신문 최상국 기자와 제가 신문지상을 통해 DVR붐을 조성한 이후, 국내 벤처기업들이 너도나도 DVR분야에 뛰어들기 시작했죠. 이 때문에 이 분야의 기술적 진입장벽이 낮지 않느냐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기는 더욱 어려워요."


"원천기술 개발회사로 거듭날 것"

자회사 DVR 제품인 'Diss'에 대한 임 사장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S/W적인 압축기술을 사용하는 타업체와 달리 자체 개발한 ASIC(비메모리 반도체칩)을 사용해 속도와 압축률에서 앞서고 핵심 부품인 보드 가격을 타업체의 절반까지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지난해 10월말 영상압축보다 복잡한 음성압축 알고리즘을 사용한 디지털 녹취기(음성저장시스템)를 개발한 데 이어 최근 실시간 인터넷방송 시스템 '메가캐스트'를 잇따라 개발하는 등 응용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성진씨앤씨의 지난해 매출은 결국 130억원대에 머물 전망이다. 하지만 올해는 미국시장 판매망이 확보됐고 지난해 하반기 개발한 신제품이 본격적으로 출시돼 400억원대 매출 달성을 낙관하고 있다. 현재 국내외 투자기관과 1천만 달러 규모의 투자유치를 추진중이며 2월말까지 모든 투자 유치를 완료하고 올 하반기 코스닥 등록을 추진할 계획이다.
"성진은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로 거듭나 음성, 영상 멀티미디어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계속 개발할 것입니다. 이미 완성된 제품은 대기업에 넘기더라도 말이죠. 연구원은 항상 새로운 제품에 도전해야 발전할 수 있어요."


임병진 사장 프로필

1994년 8월 서울대 대학원 공학박사(기계공학 전공)
1994년 9월 서울대 터보동력기계 연구센터 연구원
1995년 1월 일본 자동차 연구소 초청연구원
1996년 11월 MIT 슬론 오토모니브 랩(Sloan Automative Lab) 초청 연구원
1997년 10월 성진씨앤씨 대표이사(현)

성진씨앤씨(www.sjcnc.co.kr)

설립일: 1997년 10월 10일
대표이사: 임병진
자본금: 약 25억원(2000년 3월26일 현재)
직원수: 135명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543-6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코스닥신문 64호(1월15일 발행)에 실린 내용을 보완해 재작성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코스닥신문 64호(1월15일 발행)에 실린 내용을 보완해 재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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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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