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따뜻함으로 겨울을 녹인다

<대학생들의 겨울나기-4> 장애인권동아리 '손말사랑' 김경철 씨

등록 2001.02.06 11:10수정 2001.02.0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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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다 정치 난국이다 하며 겨울을 나는 우리들의 체감 온도는 더욱 내려갑니다. 지금 이 신문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혹시 하루종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만화책이나 보는 것은 아니겠지요? 여기 이 추운 겨울을 바쁘게 살아가는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있다 앵무새처럼 상대방의 말만 따라하는 원표, ‘피피피∼’, ‘다다다∼’암호같은 의성어만 하루종일 입에 달고 사는 희수, 끊임없이 소리지르고 웃으며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준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장애아들. 경철이는 매주 목요일이면 이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서울대 장애 인권동아리 ‘손말사랑’00학번 김경철. 2001년 대학에서의 첫 겨울 방학을 맞은 경철이는 매주 한번 방배동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 부설 가족 지원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경철이가 하는 일은, 가정 형편상 센터에 잠시 맡겨진 자폐아, 정신지체아 친구들과 놀아주는 것.

방배동 골목 한켠 빌딩 지하문을 빼꼼히 열기가 무섭게 경철이는 금세 아이들 틈에 섞여버렸다. 14살 준우는 벌써부터 경철이 손을 붙잡고 놓을 줄 모른다.
“너, 오늘 그렇게 놀아주다가는 하루 종일 고생할 거야.”
센터 선생님의 말에도 경철이와 준우는 실컷 몸싸움 중이다. 놀이방 아이들과의 대화는 대부분 몸으로 이루어진다. 센터에 맡겨지는 아이들 80% 이상이 자폐아라,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왔을 때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서 있었다는 경철이는 누가 일러주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아이들과 치고 박고 한바탕 즐거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오늘 프로그램은 주사위놀이와 종이봉투 인형 만들기. 쉬지도 않고 아이들은 까르르 웃어대고, 손뼉치며 노래하자고 졸라댄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웬 난장판이냐 싶을 정도로 아이들과의 놀이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 와중에도 경철이는 뇌성마비 명석이를 챙기느라 바쁘다. 명석이가 툭하면 휠체어에서 떨어져나가기 때문이다. 주사위 놀이 시간에 스무 번쯤 명석이를 앉히느라 땀뺐나보다.

만들기 시간에는 준우가 경철이를 차지할 차례다. 색종이 한번 붙이고 가위질 한번 할 때마다 경철이 손을 꼭 한번씩 깨물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내내 준우는 경철이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경철이다. 풀칠 덕지덕지한 인형이 못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남들은 다 정리하는 마당에 새로 인형을 만들겠단다. 잘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에 부산해지는 경철이의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다. 힘든 내색도 없이 참 열심이다.

“요즘 여기저기 복지관은 늘어났지만 자원활동가가 부족한 실정이에요. 그런데 여기 오는 ‘손말사랑’친구들은 참 꾸준히 열심히 해요. 기특하죠.”
상담 선생님의 칭찬이 아니더라도 요즘 주변에서 자원 봉사하는 친구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손말사랑’에서도 자원봉사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고작 열명 남짓에 불과할 정도니.
“자원봉사활동은 지속적으로 할 때만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방학마다 빠지지 않는 경철이는 든든한 친구죠.”
오늘 하루 같이 활동했던 선자(서울대 응용생물화학부 00)의 칭찬이다.

“솔직히 조금 힘들기는 해요. 그래도 애들이랑 있으면 재미있어서 자꾸 오게 되나 봐요”라며 머쓱해 하는 경철이의 올 겨울 한자락은 그렇게 아이들과의 소중한 기억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학생신문(www.e-unipress.com) 126호에 글입니다. 2001년 대학생의 겨울나기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마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대학생신문(www.e-unipress.com) 126호에 글입니다. 2001년 대학생의 겨울나기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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