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사람을 놀리고 싶다

내 사랑 찡코

등록 2001.02.02 13:33수정 2001.02.0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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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내게로 온 지 삼일이 되어가는 강아지 찡코와 함께 조카에게 편지를 보내고 왔다. 가까이에 우체국이 있어서 바람도 쏘여줄 겸 옷을 입혀 나갔다. 추위에 잔기침을 하는 듯 싶어 모자달린 옷을 입혔는 데 뒤에서 꼬리만 안 본다면 영락없는 아기다.


우표를 부치기 위해 잠시 놔두었는데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두리번두리번하다 이내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

아직은 사람도 추워서 손끝이 아린 겨울 아침. 새벽 내내 찬 바람이 불어 꽁꽁 얼어붙은 미끄러운 길 위로 오랫만에 걸어보라 하고 싶었지만, 토끼처럼 귀를 세우는 녀석을 믿지 못하겠다. 녀석이 그 길로 제 주인이 있던 곳으로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틀째 되던 날, 녀석은 오줌을 가렸다. 똥과 오줌을 함께 가리라고 자리를 정해주었는데 녀석은 그래도 하나는 했다고 말하고픈 표정이다. 그런데 웬일. 녀석의 오줌가리기는 단지 내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었나보다. 잠깐 나갔다 온 사이, 녀석은 냉장고 앞에 보란 듯이 누런 오줌을 누었던 것이다.

나는 할수없이 강경책을 쓰기로 했다. 묵은 잡지를 둘둘 말아 방망이를 만들고 오줌을 묻혀 녀석의 오줌누는 곳에 찍어주고는 맴매라고 큰 소리를 쳤다. 그렇게 해야 훈련이 된다던 사람들의 말을 듣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아침이 되었는데 녀석의 모습이 안 보이면서 어디선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흠흠해 보니 컴퓨터 책상 밑에다 두 덩어리의 똥을 싸둔 것이다. 녀석은 내가 종이방망이를 들 것을 예상했는지 벌써 등 뒤로 가서 제 꼬리잡기를 하며 빙빙 어지럽게 한다. 교란작전을 펴는 것인가 했더니, 이내 나를 확인하려는 듯 옆에 와서 꼬리를 편다.


얼굴의 절반이 눈인 녀석이 안광을 내며 내게로 와 있는 모습. 당연히 종이방망이로 제 똥 눌 곳을 알려줬다. 하지만 삼일 째인 오늘도 그 곳은 오줌의 얼룩만 있을 뿐, 음침한 곳에 몇 덩이의 똥을 싸놓았다.

엊그제 누군가에게 개를 키우게 되었다고 말했더니, 자신은 10년이 넘었다면서 아프다고 버리면 안 된다는 말을 했다.


사실 찡코는 생후 구개월이 되었는데, 어느 날 녀석의 원주인이 도저히 못 키우겠다며 가져가 달라고 했다. 가 보니 개의 모습이 아니라, 어디 쓰레기더미에서 살다온 것 같아 데려와서 목욕을 시키고 했다. 녀석은 당시 한쪽 눈이 실명 위기에 있고 영양도 엉망이어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었다.

더군다나 사람도 홀로일 때는 외로운 법인데 녀석의 외로움타기는 사람보다 더했나보다. 전 주인이 내게 키워달라면서 한 말은 사랑 듬뿍 주기였다. 또한 녀석이 암놈이라 시집 보내기도 해야 한다고.

찡코는 지금 컴퓨터 책상 아래서 내 발을 핥고 있다. 꼬리가 스치며 간지럽힌다. 정말 녀석은 똥오줌을 못 가리는 것일까, 아니면 가리지 않는 것일까. 괜시리 녀석이 낯을 가리며 장난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새벽일을 하는 동안, 옆에서 아기처럼 쌔근쌔근하는 녀석. 조그마한 소리에도 자다 벌떡 일어나 컹컹 짖어보는... 아직은 잘 지내고 있는 데 봄이 오면 어떨지...

그 큰 눈이 충혈이 되어서, 올 때 안약을 가져왔다. 넣어줄 때마다 훵뎅그레한 녀석의 눈이 어찌나 당황스러운지. 낑낑거리는 소리가 꼭 아이들 칭얼대는 소리 같다. 배고프거나 답답할 땐, 그런 소리를 낸다고 한다. 녀석이 얼른 미소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녀석의 코가 찌그러진 것처럼 납작하기때문에 아무리 웃어도 웃는 표정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겠지만.

오늘도 잠자기가 두려워지고 있다. 잠자지 말라고 머리카락을 핥고, 심지어는 잡아당기므로 녀석의 침이 온 머리카락에 흘러내려 아침에 일어나면 온통 쑥대머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킁킁거리며 코를 방바닥에 대고 돌아다니고 있다. 감기 걸리진 말아야할 텐데. 자꾸만 아가 같아서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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