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한국부동산신탁(이하 한부신)이 공기업 최초로 부도 처리된 이후, 아파트 분양자 및 상가 임대차 계약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한부신이 공기업이라는 믿음 하나로 그 동안 모아 왔던 돈과 은행 대출금에 사채까지 얻어 아파트와 상가를 분양 받았으나 지금은 분양금 한 푼도 건질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신장원(58) 씨는 두 손 다 쓸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다. 눈도 보이지 않는다. 부인 길옥순(60) 씨 역시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신씨 부부를 봤을 가능성이 크다. 신씨 부부는 서울 지하철 내에서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신씨 부부가 요즘 매일 같이 나가는 곳은 지하철이 아닌 분당의 테마폴리스 상가다.
"처음에 성남시 시유지에 가건물을 짓고 살았어요. 그런데 성남시가 무슨 사업을 한다고 그 집을 철거하고 보상금을 주더라고요. 그 돈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날 한부신에서 일한다는 이 아무개, 장 아무개란 사람들한테 전화가 왔어요. 어떻게 알고 전화가 왔는지 모르지만. 분당에 큰 상가를 짓는데 거기 상가 분양을 받고 자신들한테 재임대를 하면 한 달에 80만원은 벌 수 있다는 거예요.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해요. 그래서 난 뭣 모르고 귀가 솔깃해서 그렇게 했지. 대출 받는 거나 일 처리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다 내 이름으로 했고. 구걸해서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분납금을 냈어요. 아침은 밀가루로 수제비 끓여 먹고 점심은 노숙자 급식소 가서 먹고 저녁은 굶으면서. 조금이라도 미뤄지든지 돈 안내면 상가 계약이 해지된다고 했어요. 지금 보니까 그 사람들이 나한테 사기를 친 거예요. 장애인이니까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상가 계약을 종용했던 그 사람들은 부도가 난 후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한부신 관계자를 찾아가 그 사람들 좀 찾아달라고 하면 그런 사람 없다며 신씨를 자꾸 밖으로 내몰아 넘어진 게 한두번이 아니다.
신씨 부부는 이제 살 곳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현재 성남시 단대동 누나 집에 얹혀 살고 있으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 사건이 일어난 후 지하철에서 구걸을 해도 사람들이 돈을 주지 않는단다. 몇 몇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간 다음부터는 이들 얼굴이 알려진 까닭에 지하철에서 구걸을 해도 돈을 주는 이들이 드물다고 한다.
"가슴이 답답해서 잠이 안 와요. 난 두 번 죽은 거예요. 사기 당해서 뭣 모르고 계약해 번 돈 다 날리고 지하철에 구걸을 나가도 이 사건 때문에 얼굴이 알려져 사람들이 돈을 안 주니 구걸을 해서 먹고 살 수도 없고. 나라가 한 것이라고 해서 믿었어요. 나라가 망하지도 않았는데 나라에서 하는 기업이 망할 줄은 정말 몰랐지요. 빚이 5천만원에 사채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갚을 길이 없어요. 위에 계시는 분들 제발 나 좀 살려줘요. 제발…."
그는 가슴을 쳤다. "나라에서는 뭐하는 거여. 나라에서 다 알아서 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면 우리 같은 사람 어떻게 살라는 거여."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신씨 부인은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다.
밤 10시, 신씨 부부는 테마폴리스 상가계약자들이 모인 정리 집회 참석을 마치고 어떻게 해서든 먹고 살아야겠기에 다시 지하철을 탔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하는 윤모(39) 씨도 한부신 부도로 삶의 의욕을 상실했다.
"딸아이를 두 번 죽였어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딸아이가 교통사고로 죽고 난 후 나온 보상금 전부를 한부신이 시행한 분당 테마폴리스 상가 계약에 쏟아부었으나 한부신이 부도 처리되자 죽은 아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 좋은 일에 쓰겠다던 희망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처음에 저는 안 하려고 했어요. 자식 죽인 돈으로 뭘 하겠어요. 그런데 남편이 그 돈 헛되이 쓰지 말고 잘 써서 더 좋은 일에 보태자고 저를 자꾸 설득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모르겠다고 했죠.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남편은 나라에서 하는 곳에 쓰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일 열심히 해서 어려운 아이들 많이 돕고 살자고 해서 그래서 계약했어요. 그 애가 저 세상에서 저를 얼마나 원망하겠어요."
95년도 딸아이의 보상금 3천만원으로 상가 계약을 하고 분납금은 이 카드, 저 카드 개설해 대출해 냈는데 워낙 빠듯한 삶이라 그 돈으로도 모자라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고 한다. 상가 개장하면 벌어서 갚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장이 1년, 2년 미뤄지자 뭔가 잘못돼 가고 있는 듯한 초조한 마음에 한부신 관계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정부가 하는 일인데 뭘 그렇게 조바심을 내느냐"고 되려 꾸지람만 들었다고 한다.
한부신이 부도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윤씨는 하루하루 불덩이를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런 그녀는 다른 계약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 분양금 중 일부라도 되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테마폴리스 농성장에 나온 지 5일째다.
"다른 돈도 아니고 딸 죽은 돈으로 이렇게 되니까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예전에 불임수술을 받았었는데 그 아이가 죽고 난 자리를 조금이라도 메워보려고 복원하려고 하니 주위에서 다들 말려요. 혈압이 높고, 간에 종양도 있어 목숨이 위태롭고 임신 가능성도 희박하다고요. 그런데 그 빈자리를 어떻게 해서든 메우고 싶었어요. 안 그러면 미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토록 바라던 애를 낳았는데 그렇게 귀한 애를 두고 나는 여기 테마폴리스에서 이불 갖다놓고 매일 먹고 자고 해요. 내가 딸을 두 번 죽인 것 같아서..."
그녀에게 지금 남은 것은 수천만원의 빚과 정부에 대한 배신감, 죽은 딸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뿐이다. 죽고 싶어도 다시 얻은 딸아이 때문에 죽지도 못하겠다는 그녀는 테마폴리스 상가 안에 앉아, 죽은 딸아이 생각에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이름도 밝히기를 꺼렸다. 애 죽여서 받은 돈 날린 어미가 무슨 이름이 있겠느냐면서.
한부신은 이들의 삶의 희망마저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한부신은 부도 나기 이틀 전까지 계약자들에게 전화를 해 정부가 하는 일이니 안심하고 밀린 분납금을 빨리 내라고 독촉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 동안 정부는 부채가 1000%가 넘고 공기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민을 우롱한 껍데기만 남은 부실 기업 한부신에 관심도 쏟지 않았다. 잘못이라면 정부를 믿고 평생 모은 돈을 한부신에 쏟아 부은 죄 밖에 없는 서민들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들은 정부로부터 듣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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