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원들은 사학개혁 거부했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민주당 내 진통

등록 2001.02.20 18:28수정 2001.02.20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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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추진해 오던 사립학교법 개정이 당 최고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사실상 무산되었다. 민주당은 지난 15일에 이어 19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설훈·이재정·임종석 의원 등 당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제출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한화갑·정대철·김기재·신낙균 등 여러 최고위원들의 반대 속에 결론을 내리지 못함으로써 2월 임시국회 처리가 어렵게 되었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사립학교장에게 교원 임면권을 주고 4년 임기로 연임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 학교운영에 대한 재단의 권한을 줄이고 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또한 개정안은 비리와 연루된 재단관계자가 교육계로 복귀하는 것을 보다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들은 교육계 일각에서의 공익이사제, 학교운영위원회의 의결기구화, 교장선출 보직제 등의 요구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사학재단의 비리를 막을 수 있는 진일보한 개정안으로 평가받아 왔다. 전교조와 교총 등에서는 개정안의 내용이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사학법인연합회 등 사학재단들은 사학재단의 권한을 제약하는 이같은 개정안에 대해 극력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개정안은 일부 사학의 문제를 전체로 확대하고 있으며, 사유재산권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되는 내용이라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리던 19일 아침에는 여러 사립대학교 총장들이 회의 직전에 김중권 대표를 방문하여 개정반대 의견을 전하는 압박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이 같은 입장 차이는 근본적으로 사립학교를 공익적 성격의 기관으로 보고 학교 현장의 교사·학생들의 입장을 우선 하느냐, 아니면 사립학교를 사유재산으로 보고 사학재단의 입장을 우선 하느냐에 대한 인식 차이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결국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학교를 사적 재산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사학재단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같은 결과의 문제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교육개혁을 위해 사립학교법을 전향적으로 개정하겠다던 자신들의 15대 대통령선거 공약을 사실상 번복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당 소속 교육위원회 의원들 전원이 합의하고 의원총회에서도 통과된 개정안을 정작 의결권이 없는 최고위원회의가 유보시킨 것은 당내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민주당 최고위원들은 사학재단의 입장을 옹호하는 발언들을 많이 쏟아냈다. 사립학교는 학교설립자의 모티베이션을 고려해야 한다, 개정안이 잘못하면 학교에서 재단을 배제한 채 교직원과 학생 위주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지적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사학재단의 대변기구가 아니라면, 만성적인 학원분규에 고통받아온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호소에도 귀를 기울여야 했던 것 아닐까.

그 동안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해 온 의원들은 이같은 당 지도부의 처사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다. 임종석 의원은 “사립학교법 당론 유보는 당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반개혁적 결정이며 교육의 백년대계를 외면한 처사”라며, ‘사유재산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한 최고위원들에 대해 “현장 교원이나 학부모보다 사학재단측 입장을 더 중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교육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의 이번 결정은 사학재단의 편에 섰던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굳이 나서서 반대하지 않아도 되도록 수고를 덜어주었다. 자기 당 소속 교육위원회 의원들 대신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의 손을 들어준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야말로 여야 구분 없는 '상생의 정치'를 몸으로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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