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손을 잡아봅니다

등록 2001.02.28 10:23수정 2001.02.2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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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봄방학이라 딸아이 도윤이는 우리 부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며칠 있으면 다시 도윤이는 대구, 저희 부부는 김천 이렇게 떨어져 살아야 합니다.


도윤이가 보고 싶어 한밤중에 울음을 터트리는 집사람을 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당장 같이 살고 싶지만 일단 백일까지라도 대구에서 키우기로 했습니다.

요즘 도윤이는 옹알이도 하고 생후 두 달된 녀석이 거꾸로 눕혀놓으면 기어가려는 흉내까지 내서 저희 부부를 즐겁게 합니다.

선 자세로 안긴 채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취미(?)인 도윤이는 축축한 헌 기저귀에는 절대로 큰 것을 보지 않고 꼭 새 기저귀를 갈아줘야 볼일을 보는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지요.

깔끔하다면 아마도 저희 엄마를 닮았나 봅니다.
제가 예전에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잠을 잘 깨곤 했는데 요즘에는 잠이 들면 도윤이가 울어도 깨지를 않아 집사람 혼자서 일어나 우유도 먹이고 재우곤 했습니다.

여간 미안하지 않더군요.
집사람도 사람인데 졸립기도 하고 도윤이가 보채면 힘도 들겠지요.


그런 아내에게 제가 거실에서 도윤이와 함께 자면서 우유도 주고 재울 테니 혼자 안방에서 푹 자라고 말했지요. 그래서 요 며칠간 전 도윤이와 함께 자고 아내는 안방에서 혼자 자고 있습니다. 요즘 도윤이가 울고 보채면 공갈 젖꼭지라는 것을 물려봅니다.

하지만 진짜 젖꼭지인 줄 알고 열심히 쪽쪽거리며 빠는 도윤이의 모습을 보면 어린 것을 속인다는 죄책감이 들어 팔이 좀 아파도 될 수 있으면 안아줍니다.


사실 도윤이는 12시쯤 우유를 먹고 저랑 같이 잠들면 새벽 4시나 되야 우유를 먹으니까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우유를 맘껏 먹어서 기분 좋게 만세를 부른 채 잠든 도윤이 옆에 누워서 도윤이의 발도 만져보고 통통해서 터질 것 같은 볼도 비벼봅니다.

앙증맞고 부드러운 도윤이의 손에 제 손가락을 하나 넣으면 녀석은 그것을 꼭 잡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손이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도윤이의 손을 꼭 쥐면서 예전의 저의 엄하셨던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제게 아버지는 언제나 무뚝뚝하신 분이고 엄하신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여전히 아버지 옆에서 잠을 잔 저는 어느 날 잠에서 문득 깨었을 때 아버지가 제 손을 꼭 쥐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평소에 무서운 분이 그렇게 하셨으니까 제가 여태껏 기억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어린 나이였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매일 밤 잠든 아들의 손을 꼭 쥐어주셨겠지요?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아버지가 좋아? 내가 좋아?" "너 어디 가면 내 생각 안하지?"하고 직접적으로 제게 애정을 표시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저는 죽자고 따라다녔습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울면서 아버지의 자전거를 동구 밖까지 따라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너 어디 가니?"하며 저를 태워주셨습니다.

제가 엄하시기만 했고 말씀으로는 자식에 대한 애정표현을 전혀 하지 않으신 아버지를 좋아하고 그리워하게 된 것은 그 어린 시절 제 손을 꼭 쥐어주신 아버지의 무언의 사랑덕택일 겁니다.

그 아버지는 지금 세상에 계시지 않고 저는 도윤이의 손을 꼭 쥐어줍니다. 도윤이가 커서도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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