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최선 씨를 두 번 죽였다"

설비 미비 안전사고가 취중 실족 사고로 호도돼

등록 2001.03.06 14:24수정 2001.03.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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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네, 못다핀 저 꿈이 떠나가네
보고 싶어라, 눈물이 돋는 어머님 얼굴
가고 싶어라, 친구곁으로 사랑하는 누이여......

지난 2월 17일(토) 고려대 정경대학 신입생 최선 씨가 새내기 새로배움터(새터) 진행 도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새벽에 화장실에 간다며 나간 최선 씨가 다음날 오전에야 인근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채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결국 숨졌다.

언론이 최선 씨를 두 번 죽였다

‘대학 신입생이 오리엔테이션에서 술을 마시고 발을 헛디뎌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숨졌습니다... 버스마다 맥주와 소주가 10박스가 훨씬 넘게 실립니다. 월 말까지 대부분의 대학교들은 2박 3일 일정으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떠납니다. 그 중 상당수가 인솔 교수나 교직원이 없이 학생회 주도로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19일(월) MBC 뉴스를 보던 많은 이들은 또 술 때문에 애 하나 죽었다며 혀를 찼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들의 증언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에 따르면 최선 씨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우리 조가 15명이었는데, 막걸리 6병, 소주 3병 정도를 받았죠. 다들 술을 마시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최선 씨와 같은 조였던 정경 2.3반 00학번 신혜현 씨는 오히려 그러한 ‘언론의 보도가 선이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며 강하게 불만을 표했다. 언론의 왜곡보도는 죽은 최선 씨의 명예를 훼손하며 사고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눈 속에 파묻힌 지 6시간만에 구조


최선 씨는 17일 새벽 정경 2.3반 8조 친구들, 선배들과 함께 지내다가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은 3시 30분, 최선 씨는 화장실에 간다며 방을 나갔다. 그러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최선 씨가 없어진 것을 알고 찾기 시작한 것은 17일 오전 9시 경.

1시간을 찾은 끝에 B동과 C동 사이에 있는 간이 화장실 옆 낭떠러지 아래에 쓰러져 있는 최선 씨를 발견했다. 그때까지 숨은 붙어 있었지만 체온이 너무나 떨어져 있었다. 11시 30분 119구조대에 의해 구조되어 병원으로 옮겨진 최선 씨의 체온은 25℃였다. 오후 5시 30분 체온은 29℃이상 오르지 못하고 결국 사망했다. 공식 사인은 ‘저체온 심장마비’.


누구의 책임인가

사고가 있은 후 학생들 사이에서는 사고를 둘러싼 책임 논쟁이 벌어졌다. 많은 학생들이 안전 시설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화인 레스피아’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간이 화장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낭떠러지가 있었음에도 안전 펜스와 안내 표지판을 설치하지 않은 점. 가로등이 있었음에도 관리 소홀로 꺼져 있었던 점 등이 가장 크게 지적되었다. 사고가 난 직후 눈가림으로 어설픈 펜스를 설치했을 뿐이다.

현재 ‘화인 레스피아’ 홈페이지는 학생들의 사이버 시위으로 인해 폐쇄된 상태다. ‘화인 레스피아’ 측에서는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으며 그러한 무성의한 태도로 인해 더 큰 반발을 사고 있다.

학생회 측도 많은 항의를 받았다. 폭설이 내렸는데도 일정을 강행한 것, 학생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점 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고려대 중앙운영위원회에서는 이번 사고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이후 해결과 대책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앞으로 모든 행사에 있어 안전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안전 교육을 강화해 나가겠다며 이후 총학생회의 대책을 밝혔다.

저녁에 일어난 강당 붕괴

최선 씨의 사고가 있기 직전에 이미 한 차례 큰 사고가 있었다. 16일(금) 저녁 새터 행사 진행 중 ‘화인 레스피아’측에서 마련한 임시 강당이 무너졌다. 학생들이 긴급히 대피하여 다행히 서너 명 정도만이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폭설에도 불구하고 사전 답사도 하지 못한 장소를 무리하게 섭외했다는 것만으로 많은 학생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이후 학생회에서는 밤이 깊어 바로 서울로 돌아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 다음날 출발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최선 씨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 직후 주변 상황이 위험하다는 사실 판단이 늦었고, 이후 특별한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 또 하나의 과실로 남고 있다. 새터 일정에 무리하게 매달리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간과하게 된 것이다.

선이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고려대 곳곳에는 여전히 고인의 명복을 비는 플래카드와 대자보가 붙어져 있고, 각 단대 건물마다 설치된 분향소에는 아직도 향이 꺼질 줄 모른다. 그러나, 머지않아 최선 씨는 잊혀져 갈 것이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그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최선 씨의 어머님이신 서영순 씨는 남아 있는 다른 아이들도 이제는 자식같아 이런 사고가 앞으로 또 일어날까 걱정이 된다며 한마디 해 주셨다.
“학생들이 하는 행사에 누가 간섭을 할 순 없지요. 하지만, 자신들의 행사이니 만큼 더욱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잊지는 말았으면 해요.”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www.e-unipress.com) 127호에 실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대학생신문(www.e-unipress.com) 12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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