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 녀석이 8월에 이민 간답니다"

교육 이민 떠나는 학생들, 교사인 나는...

등록 2001.03.24 23:02수정 2001.03.2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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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저희반 반장 녀석이 8월에 호주로 이민을 갑니다. 선도부장 녀석은 더 빠른 4월에 호주로 유학을 가구요. 둘 다 녀석들의 교육문제 때문이라는군요. 우리나라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호주에 뚜렷한 비전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 아이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고 싶어서 간다고 합니다. 그 부모님의 자식사랑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아침마다 MBC모닝스페셜에는 캐나다 이민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이 매일 소개되곤 합니다. 전 그 프로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 공교육의 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녀석들은 누구처럼 사회성이 부족해서라거나, 예전처럼 공부를 못해 대학가기 힘들 것 같아서 이 나라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좋은 교육환경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랍니다.

녀석들이 간다는 말을 모둠일기에 쏟아놓을 때, 혹은 그런 소리를 아이들로부터 들을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쓰라립니다. 한국의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녀석들의 이민에 대해 뭐라 한 마디 거들지도 못합니다.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주어진 기회니까요.

그래도 적응하려면 많이 힘들다니까 마음 다잡고, 너를 위해 안정적인 기반을 두고 가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노력하라는 말 밖에 달리 해 줄 말이 없네요. 그 쪽에 가면 학교 교육에 대해 학부모들이 만족스러워한다는데 왜 제 어깨는 자꾸 처지는지. 조금은 의기소침해집니다.

호주라는 넓고 큰 나라에 대한 동경과 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직도 버벅거리는 녀석들은, 꿈이 있으니 어른보다야 낫겠지요.
"나 호주갈 때 너희집 놀러가도 되는 거야?"
"예, 오세요 "

녀석은 자기가 손님을 치르는 양 시원하게 대답해 줍니다. 저야 그냥 빙그레 웃고 말지요. 그저 이런 객쩍은 소리 몇 마디 나누고 아이들을 보내야 하는지. 녀석이 가고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사는 소식은 몇 번 들을 수 있겠지요. 그래서 요즘은 녀석들을 보거나 아침마다 이민 프로그램을 들으면 우울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네요.

얼마 전 학부모의 날에는 유학가는 아이의 어머니가 오셨더군요. 먼저 보내야 하는 아들을 염려하며 기운 좀 내게 힘내라고 말 좀 해 달래요.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이민가는 그 집을 부러워하며, 외국교육에 상반된다는 우리 공교육의 위치를 저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아이들과 환경미화를 준비하면서 지나가듯 조용히 물었습니다.
"현수랑 규혁이가 이민 가는 것이 우리 교육의 어떤 문제 때문인지 알아?"
"돈이 없어서잖아요."
"아냐, 김대중 정부가 잘못해서 그래."
별별 답이 다 나옵니다. 씨익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대꾸해 주었습니다.

"아냐, 임마. 선생님이 못 가르쳐서 그래. 실력이 없어서라구."
아이들은 저를 보며 떱떠름한 표정을 짓습니다. 제 입에서는 기대하지 못했던 대답이겠지요. 저는 웃으며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친구가 제자들의 이민으로 상심해 하는 저를 알고 글을 하나 띄워주었습니다. 자기도 들은 얘기라면서. 사과를 나눠먹는 방법에는 '정답'과 '좋은 답'이 있답니다. 정답은 똑같이 하나 반씩 나눠 먹는 것이고, 좋은 답은 하나씩 먹고 다른 친구에게 하나 주는 것이래요. 그러면서 학창 시절 우리는 정답을 찾으려 애쓰고, 떠나고 나서는 좋은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시기라나요.

우리 교육의 목표는 어쩌면 정답과 좋은 답이 같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입니다. 그 친구의 글을 읽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단순히 우리 공교육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자존심 상해 하고, 공교육의 질 운운하면 이유도 모르게 꼬리내리던 내 모습 뒤로, 진정 내가 고민하고 학부모들에게 미안해야 할 교육의 방향을 그 친구는 꼬집어 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앉아서 교육제도와 교육환경을 탓하며 날아오는 비난과 불신의 화살을 불만스럽게 쳐내기보다는, 이제는 묵묵히 화살 하나 제 심장에 깊숙이 박고, 동지들과 가던 길 걷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애매하게 박히는 지저분한 화살, 모난 화살들 신경 쓸 필요 없이, 아이들이 바람직한 교육을 받는 그런 때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 때가 되면 저도 제자들의 이민을 마음껏 응원해 주고 이런 죄의식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요. 자신들은 5%의 성공 가능성에 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제자들은 떠납니다. 제 친구는 그랬다는군요. 성공하면 꼭 모국을 생각해야 한다고요. 그 말 하는데 서글프고 눈물이 나더래요. 그나저나 우리 반 녀석들은 그 5% 안에 들 수 있을지 또 걱정이 되네요. 여기서 성공이 어떤 의미인지는 다소 의문스럽지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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