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동아리 게르니카, 장애인 휴게실 열어

“지난 5년, 길고 긴 투쟁의 결과... 교육권보장을 위한 첫걸음 디뎌

등록 2001.03.29 04:03수정 2001.03.2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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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장애인 특별전형실시 이후 96년 5월 대동제에서 전국 대학 최초로 장애인 대학생 교육권 보장을 내걸고 서명운동을 벌이며 지난 6년간 숨가쁜 활동을 벌여온 연세대 장애인 인권동아리 ‘게르니카’가 마침내 오랜 숙원이자 기획 사업이었던 장애인 휴게실과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역실을 마련했다.

바로 어제 오전 28일(수) 11시에 연세대 백양관(구 경영관) 1층에서 학교 관계자와 장애인 학생 그 부모님들이 모인 가운데 장애인 휴게실과 점역실의 개관식이 열게 되었던 것.

학교 당국이 이런 장애인 학생들의 요구를 확정지은 것은 작년 9월, 그 해 5월에 매듭지어진 등록금 투쟁 합의안에 따른 결정임과 동시에, 96년부터 장애인학생들이 학교측에게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것에 대한 짧은 화답이기도 했다.

등록금 투쟁 이후 학생 요구안에 이러한 장애 학생들의 바램이 들어가게 된 것은 바로 게르니카가 독자적으로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인 결과이기도 했다.

이러한 장애인 휴게실의 개설은 그 5년이란 시간만큼이나 개설이 확정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참 많았는데 우선 휴게실이란 공간이 비장애인 학생들이나 학교 측의 동의 및 지원뿐 아니라 서로 다른 장애 유형의 학우들과의 조율이 필요했고 설득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휴게실도 단순히 쉬기 위한 공간뿐 아니라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번역실과 학습실도 함께 병행하도록 설계 배치 되어야만 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이런 공간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어 시각 장애인이 1명이 1년 가까이 연구에 몰두하고 동아리 회원들이 직접 일본의 오사카 대학, 쿄토대학, 영국의 켐브리지 옥스퍼드 뿐만 아니라 호주 등지의 이국 대학을 방문, 그 곳의 장애인 학생과 학교 관계자들을 만나고 좀 더 나은 시스템을 보고 오기도 하였다.

또한 96년 5월부터 계속 되어진 장애인 학생들의 요구와 서명운동 등을 비롯한 여러 활동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여러 집단과의 이해관계에 밀려 번번히 실패했었다. 98년도에는 총학생회 산하에 장애인 복지부가 결성되어 게르니카와 함께 다각도로 장애인 휴게실을 만들려고 노력하였으나 때마침 학교가 벌인 프로젝트 연구소에 공간을 빼앗기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지난 99년 4월부터는 좁은 동아리방을 분할, 침대를 들여 놓고 전화를 놓는 등 자체 활동을 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휠체어 장애인들은 갖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으며 시청각 장애인들은 마땅히 독립적으로 공부할 곳이 없어 과도한 신경쇠약과 스트레스를 감내해 왔다.


이러한 학생들의 노력뿐 아니라 이러한 학생들의 아픔을 같이 한 일부 교수들도 동참, 관료적 학교 행정에서 장애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도 하였다. 특히 신경이 퇴화하는 루게릭 병을 앓던 이학종 교수(상경대 퇴임)가 교직에서 물러나면서 기증한 1억원을 기부한 것이 학교를 움직이는 촉매제가 되었다.

장애학우들뿐만 아니라 장애학우들의 부모님들에게도 휴게실은 유용하다. 실제로 장애 학생들보다 부모들이 휴게실을 더 반기는 분위기이다. 중증 장애인이 많은 연세대의 경우 대부분의 장애학우들이 부모님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부모님들은 자녀가 수업에 들어간 경우 등 많은 시간을 보낼 공간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번에 부모님들 간에 자녀를 위한 정보를 교환하는 장으로서의 기능까지도 확보한 것이다.


또한 학사 장애인 전담 교수와 휴게실 관리 운영을 위한 담당 조교도 배치됐다. 이제까지 단순 휴게실이나 학습실 기능으로써 장애인 휴게실이 개설된 곳은 대구대를 필두로 나사렛대, 대구대, 최근에는 건국대에 이르렀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연구 작업을 거쳐 담당 조교까지를 둔 경우는 연세대가 최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르니카 회원들은 5년간의 숙원사업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 학생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번에 장애인 휴게실과 점역실도 실제적으로 작년의 게르니카의 독자적인 등록금 투쟁과 많은 비장애 학생들의 숨은 도움으로 어렵사리 얻어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한 교수님의 기부금과 적극적인 학교 움직임 때문에 자칫 연세대학교가 장애인에게 천국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높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 행여 연세대가 불쌍한 장애 학생들에게 베풀어 준다는 시혜적이고 권위적인 관점에서 장애인 교육권 문제를 다룰 위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올해 장애인 특별전형 제도가 특차 모집에서 수시모집으로 바뀌면서 연세대에 응시한 상당수의 중증 장애인이 특정 계열에서 많이 낙방하여 수시 입학을 장애인을 사전에 거르는 것으로 악용한 것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받기도 하였다.

이에 게르니카는 입학 당국에 이번 휴게실 개설과 관계없이 장애인 학생들에 입학 문제에 관한한 곧 공개 질의서를 학교 언론을 통해 띄울 예정으로 알려 졌다.

따라서 이번 휴게실 개설을 계기로 게르니카를 비롯한 장애인들은 자신과 앞으로 들어올 후배들의 교육권을 어떤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학교를 상대로 확보할 것인가?라고 하는 보다 성숙한 고민과 투쟁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숭실대에 재학중인 한 장애 여성은 학교을 상대로 학습권 훼손에 대해 오천만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해, 같은 기독교 이념의 명문 사학으로서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이에 대한 숭실대의 반응 또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소송에는 게르니카도 많은 지원을 하고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해 연세대 장애인 학생들의 고민이 자신의 학교에만 머물지 않고 캠퍼스별로 연대하는 움직임을 보여 향유 장애인 대학생에 대한 교육권 투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무척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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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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