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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월 동안 얼마나 가슴아팠을까? 지난 56년간 북에있는 동생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13년만 있으면 내가 100살이야…”라며 동생 보고싶은 마음을 눈물 한 방울로 씻어버리며 안타까운 여운을 남기는 손병오(87·사진) 옹.
기자가 손옹을 만났을 때 이미 그는 5년 전 이종사촌이 들고온 동생의 사진을 부여잡고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길고 긴 고난과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온 지 90여년이 다가오지만 손옹에겐 이보다 더 큰 아픔이 가슴 속에 못박혀 있다.
“왜놈들이 침략해 조선인을 못살게 굴던 내 나이 26살 때였지, 8남매 중 5째인 동생 병숙이가 강제로 징병소집 당하게 됐어. 그때 반일감정이란…. 그래서 나는 동생과 함께‘조선사람이 일본사람 앞에 무릎을 굽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북만주로 둘이서만 도망치게 된 거지.”
5째 동생의 안위를 위해 오순도순 단란했던 가족마저 등지게 된 손옹. 손옹과 동생인 5째 병숙 씨는 전북 북일면 만성리에서 북만주 길림성으로 피난. 이후 손옹의 모든 가족들도 일본인의 잔혹함을 이기지 못해 전답을 모두 처분하고 북만주로 피난하게 됐단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역시 낮에는 중국인들의 무차별한 침략과 밤에는 일본군의 침략행위가 빈번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손옹과 두 형제들은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갈 것을 작정, 수풀덤불을 엉금엉금 기어 만주인과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 한국으로 되돌아오는데 성공했으나 병숙 씨만 북에 남게 됐다고.
“이 때부터 여동생을 제외한 나머지 4형제와 부모님의 얼굴을 뵙지 못하게 됐지. 그게 56년째야. 그래도 5년전 중국에 살고 있는 이종사촌이 나머지 형제와 부모님의 소식, 동생사진을 전해 왔어. 어찌나 고맙고 가슴벅찼던지. 아마 이산의 아픔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 거야.”
‘13년만 있으면 100살이 된다’던 손옹의 안타까운 마음을 동생이 알아차리기나 한듯 그렇게 학수고대했던 동생사진과 소식들….
손옹은 지금 밤낮으로 동생의 사진을 부여잡고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이제는 동생의 생사를 확인하고 사진까지 갖고 있으니 생전 동생의 얼굴을 만져보고 꼭 껴안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할게다.
이에 손옹은 지난 99년 남북 당국간 이산가족 교류에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 명단에 오르지 못해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전화를 하고있다고.
“서로가 생사를 확인했어도 서로 말한마디 들을 수 없는 현실이 참으로 서글플 뿐이야. 동생이야기만 나오면 말문이 막혀. 10년전 내 아내도 비오는 날이나 계절이 바뀌면 북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만 적시다 하늘로 갔지…. 이젠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생을 버티고 있어.”손옹은 요즘 동생 생각에 잠못이루며 하룻밤을 지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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