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는 무엇을 하던 건축물일까?

KBS-1TV 역사스페셜에서 보는 선덕여왕의 비밀코드

등록 2001.04.07 10:30수정 2001.04.0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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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지금도 우뚝 솟아 있는 첨성대(瞻星臺)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고 중국 등에서 천문대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고, 또 첨성대보다 오래된 것들이지만 지금 확실하게 옛 모습을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지금 있는 것이라면 모두 최근에 다시 지어 놓은 복원품(復元品)일 뿐이다.

그것도 나름대로 기록을 존중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기는 하지만, 꼭 그런 모양이었다는 확증은 없다. 하지만 현존하는 세계 최고 천문대로 알려진 국보 31호 경주의 첨성대는 1350년이 지나고도 옛날의 그 모습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자랑스런 우리의 과학 유산이다.


이 첨성대는 그동안 천문대이니 아니니 말도 많았다. 그런데 최근 첨성대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 몇 가지가 발표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첨성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첨성대는 높이 9.108미터, 밑지름이 4.93미터, 윗지름이 2.85미터이며, 밑에서 4.16미터 되는 곳에 정남쪽으로 한 변의 길이가 1미터인 정사각형의 창문을 낸 병 모양의 구조이다. 첨성대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오는 것은 13세기 후반에 일연이 쓴 [삼국유사]이다. "선덕여왕대에 돌을 다듬어서 첨성대를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은 선덕여왕때 쌓은 건물의 명칭을 '첨성대(瞻星臺)' 즉 '별을 관측하는 건물'이라고 불렀다. 이 명칭 때문에 고려말이나 조선초에도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선덕여왕 2년(633)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리고 조선말기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선덕여왕 16년(647)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구체적인 연도까지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 첨성대에 관한 비밀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천문대라는 것이 주된 학설이긴 했지만 여러 가지 의문점이 제시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동안 분분했던 학설들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천문대임을 부정하는 학설들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먼저 첨성대 중간에 있는 창문은 천문을 관측하는 사람들이 매일 드나드는 출입구로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바로 이 창문을 통해서 관측자들이 오르내렸을 것이라고 추정하였고, 천문대임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은 안에다 사다리를 만들어 놓고 오르내렸으며, 꼭대기는 별을 관측하는 기구인 혼천의(渾天儀)를 설치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였다.

사람이 이 창문을 통해 오르내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다리를 놓고 매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너무나 불편하다. 오히려 돌계단 등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이 더욱 편리했을 것이다. 별을 관측할 정도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왜 그런 불편함을 고치지 않았을까?

또 2.85미터의 맨 윗부분은 혼천의를 놓고 몇 사람이 관측과 기록을 하였다고 보기에는 너무 좁으며, 비나 눈이 올 때에 대비한 어떠한 장치도 없다. 더구나 별을 볼 때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보는 것이 좋을텐데 평지에다 천문대를 지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닐 것'이라는 의심의 주된 이유인 것이다.

이렇게 의심하면서 같이 나온 첨성대에 대한 학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첨성대는 천문 및 수학상의 원리를 반영하기 위하여 세운 상징적인 탑이라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첨성대는 많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첨성대는 27단으로 쌓았는데 이는 첨성대를 만들었다는 제27대 선덕여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 27단과 꼭대기의 정자석까지 합하면 28단인데, 이는 28수(宿)라는 기본 별자리를 의미한다. 여기에다 맨 밑의 기단을 합하면 29인데, 이것은 음력 한 달이 된다. 가운데의 창문까지가 12단이고 다시 창문에서 윗부분 까지도 역시 12단인데, 이것은 일년 열두 달과 24절기를 의미한다고 본다.

또 첨성대를 쌓은 돌의 숫자는 거의 365개에 가까운데, 이것은 1년이라고 생각한다. 기단석은 동서남북 4방위에 맞추고 있으며, 맨 위의 정자석은 그 중앙을 갈라 8방위에 맞추고 있다. 또 창문은 정남향으로 해가 비칠 때 춘분, 하지, 추분, 동지를 측정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첨성대를 하나의 상징물로 보려는 이들의 근거가 되고 있다.

또 다른 학설은 첨성대가 불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산으로 여기는 수미산(須彌山)을 그대로 본뜬 종교적인 건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강화도의 마니산 참성단(塹星檀), 평양의 첨성단과 같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고 추정하기도 하였다. 당시 신라에서는 입추 다음의 첫 진일(辰日)에 농업을 관장하는 영성이라는 별에 대해 제사를 지냈는데, 바로 첨성대가 그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분분한 첨성대에 대한 학설을 놓고 이번 주 역사 스페셜에서는 심층분석을 시도한다. 첨성대의 정체, 첨성대가 그동안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등 대표적 의문점들을 과학, 정치, 종교, 문화 등의 상징코드로 풀어 속 시원히 입체분석해 본다.

삼국사기에는 무려 100회가 넘는 지진 기록이 보인다. 첨성대 건립이후 779년 경주에서 발생했던 지진이 100여명의 사상자를 낸 한반도 최대의 지진도 있었다. 그런데도 첨성대는 13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원형을 유지한 채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천문대로 남아 있다. 그 원형유지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경주현장으로 나선 취재진들은 첨단장비로 무장했다. 3D 스캔방식을 이용해 첨성대에 정교한 레이저를 발사해 실물자료를 디지털화한다.

새롭게 밝혀지는 첨성대의 지하구조

첨성대의 지하구조를 살펴본다. 땅속 약 1.5미터의 깊이까지 땅을 다진 후 그 위에 호박돌을 약 1m 정도 넣고 기단석이 그 위에 앉혀졌음이 밝혀진다. 또한 윗돌이 아랫돌의 안쪽을 누르는 독특한 내물림 구조를 하고 있으며 몸체 안에는 상단의 창문으로 보이는 구멍 높이 까지 흙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그것들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하며 첨성대의 외형을 유지케 했을까? 3D 스캔방식을 동원한 현지취재를 통해 첨성대의 원형유지 비밀을 입체분석 해본다.

신라인들은 첨성대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첨성대는 높이가 9미터나 되기 때문에 사람이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외부계단 없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첨성대에 연결된 외부계단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첨성대는 둥글다. 속이 통해 있어 사람이 그 가운데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통로가 분명 첨성대 내부에 존재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도대체 당시의 천문관리들은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서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취재진은 첨성대 창문 턱 패인 홈을 통한 추론으로 첨성대의 계단구조를 생생하게 복원해본다.

첨성대의 또 다른 이름, 비두(比斗)로 추적하는 첨성대의 실체는?

첨성대 바로 뒷길은 아직도 비두거리란 지명으로 부르고 있다. 비교할 비(比)자와 북두칠성의 북(北), 이 두 자에서 따와 비두거리가 됐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이 있었다. 비두는 첨성대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는 것! 비두. 바로 그 이름을 통해 충분히 첨성대는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다른 별을 비교하여 천문을 관측했던 곳임을 추리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증거는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첨성대 건립 이후 일식 월식. 혜성 유성. 지진 등의 천문에 관한 기사가 4배나 늘었다고 적혀 있다. 그 관측 기록은 현재 컴퓨터 측정을 통해본 결과 놀랍게도 정확했다. 그것은 첨성대가 하늘을 관측했던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신 (神)에 이르는 사다리 , 첨성대 31단의 비밀

건국대 김기홍 교수는 <천년의 왕국 신라>(창작과비평사)라는 책에서 첨성대는 인간세상과 하늘세상을 연결하는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33天)에 묻어달라고 했다 하며, 실제로 경주남산 사천왕사 위에 묻힘으로써 죽어서까지 자신이 도리천(33天)의 신(神)임을 증명했다. 선덕은 자신이 33天의 정복군주임을 세상에 과시해 여왕으로서 겪던 정치적 고민을 극복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그녀의 슬픈 염원이 첨성대 단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선덕여왕은 인공 구조물인 첨성대의 31단에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이란 단과 첨성대 위에 얹혀 있는 신이 살고있던 하늘의 단을 모아서 33개의 세계 33천(天)을 완성했다. 그것이 바로 신에게 도달하려는 33단의 사다리, 인간세상과 하늘 세상을 연결시키는 우주우물로서의 통로, 첨성대인 것이다.

아직 우리는 첨성대의 비밀을 명쾌하게 풀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번 KBS-1TV의 역사스페셜을 통해 그 가능성에 한발 다가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분명 첨성대는 우리 조상들의 위대함을 역설해주고 있는 듯 하다. 오늘 밤(4월 7일) 8시를 기대한다.

<시조> 첨성대
(조동화)

옛날 모란꽃 같으신 여왕님이 슬기롭게 나라를 다스릴 적에 그 나라 사람들 또한 슬기롭게 동방에서 맨 처음 하늘로 통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삼백 예순 여섯 개의 돌을 다듬어 한 단 한 단 어기영차 쌓아 올려서 그렇게 먼 우주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 날 마지막 돌을, 돌을 얹던 날 여왕님은 몸소 오시어서 신하들과 함께 둥글게 둥글게 한바탕 지신을 밟으시고 가장 슬기로운 박사님들에게 소중한 첨성대를 맡기셨겠지요. 당신께서 다스리는 그 나라만큼이나 저 하늘도 알뜰히 보살피라고요.

그 날 밤부터 박사님들은 첨성대 위에 서서 나라 안 백성의 수처럼 많은 하늘의 별들에게 고운 이름 하나씩 불러주고 들국화 같은 별자리들을 그려 갔겠지요.

그 때 박사님들은 곰곰 생각했을 테지요. 있을 듯도 없을 듯도 한 우주의 끝을, 그 우주 속의 겨자씨만한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마음 속에 찰랑찰랑 담기는 또 하나의 우주를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여왕님이 이 세상을 떠나가시고 첨성대를 지키던 박사님들도 어디론지 한 분 한 분 가버린 뒤 마침내 첨성대는 동그마니 혼자 남았습니다.

아, 그 날부터 물 따라 물처럼 흐르는 천년 속에 첨성대는 얼마나 숱한 밤을 외로움에 울었는지요.

우주를 잊지 않고 우주를 향해 뻗어가는 사람들은 지금은 먼 별에까지 우주선을 보내는데, 빈 들녘 홀로 잊혀진 첨성대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픔에 이제는 가만히 가슴에다 아픈 금을 긋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가는 길

-자가운전시 : 톨게이트에서 10분 정도 소요. 시내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오릉을 지나 첫번째 사거리에서 언양, 대릉원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2~3분 정도 가면 대릉원(천마총) 주차장에 주차한다. 산 같은 릉이 있는 '비두거리'를 300m 정도 가면 왼편에 첨성대 서 있다.

-고속버스 : 터미널 정문 맞은편 도로에서 70번 버스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서라벌문화회관을 경유, 대릉원(천마총)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첨성대 뒤쪽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다시 대릉원쪽으로 가면 첨성대, 반월성 들어가는 들머리가 있다. 

※ 담당 : 신재국 PD(781-3558)

※ 참고한 사이트와 문헌들
시험에 나오지 않는 역사이야기 : home.hanmir.com/~sakk
부다피아 : www.buddhapia.co.kr/mem/hyundae/auto/newspaper/268/c-15.htm
신라사람들 : www.kjman.co.kr/sillabang/data-room/cul-remains/archit/chomsongdae.htm
사이버경주관광 : www.toursilla.co.kr/MAIN-K/tour-info/chum.htm 
한국역사연구회, [한국고대사산책], 역사비평사, 1994,344-351. 
중앙일보뉴미디어,중앙멀티미디어백과99 CD롬.2000.12 
이종호의 과학으로 다시보는 우리 유산 - "첨성대",이종호<이동에너지기술연구소장>
한국인의 과학정신, 박성래, 평민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자가운전시 : 톨게이트에서 10분 정도 소요. 시내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오릉을 지나 첫번째 사거리에서 언양, 대릉원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2~3분 정도 가면 대릉원(천마총) 주차장에 주차한다. 산 같은 릉이 있는 '비두거리'를 300m 정도 가면 왼편에 첨성대 서 있다.

-고속버스 : 터미널 정문 맞은편 도로에서 70번 버스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서라벌문화회관을 경유, 대릉원(천마총)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첨성대 뒤쪽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다시 대릉원쪽으로 가면 첨성대, 반월성 들어가는 들머리가 있다. 

※ 담당 : 신재국 PD(781-3558)

※ 참고한 사이트와 문헌들
시험에 나오지 않는 역사이야기 : home.hanmir.com/~sakk
부다피아 : www.buddhapia.co.kr/mem/hyundae/auto/newspaper/268/c-15.htm
신라사람들 : www.kjman.co.kr/sillabang/data-room/cul-remains/archit/chomsongdae.htm
사이버경주관광 : www.toursilla.co.kr/MAIN-K/tour-info/chum.htm 
한국역사연구회, [한국고대사산책], 역사비평사, 1994,344-351. 
중앙일보뉴미디어,중앙멀티미디어백과99 CD롬.2000.12 
이종호의 과학으로 다시보는 우리 유산 - "첨성대",이종호<이동에너지기술연구소장>
한국인의 과학정신, 박성래, 평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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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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