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코드, 입사원서 대체하다?

등록 2001.04.20 12:12수정 2001.04.2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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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화, 팩스 또는 홈페이지를 통해 검사를 신청합니다.
2. 계약금 입금이 확인되면 구강용 소형 브러쉬를 특송편으로 보내드립니다.
3. 브러쉬는 1인당 2개며 두 개 모두 사용해야 합니다.
4. 브러쉬로 입안을 치솔짓 하듯 약 1분 동안 문지른 다음 동봉한 플라스틱통에 그대로 넣습니다.
5. 브러쉬 사용이 곤란한 분은 해당자의 모근이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5~6개 뽑아 동봉하셔도 됩니다.

이게 대체 무슨 검사일까? 간단한 의학검사라고 생각하겠지만, 정답은 유전자 검사다. 한 검색엔진는 유전자(DNA)검사로 1개의 카테고리와 12개의 사이트, 1044개의 웹페이지를 찾아냈다.

인류건강과 행복에 기여?

유전체(게놈) 지도 완성 이후 유전자 연구는 생명공학과 인류치료에 획기적인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금광 캐러 가는 길에 돈냄새를 맡은 청바지 사업자와 곡괭이 업자들이 득실득실 했던 것처럼.

유전자(DNA)에는 '미래의 일기'라고 말할 정도로 개인에 대한 각종 정보가 담겨있다. 개인이 미래에 발병할 지도 모르는 질병, 예컨대 보통 '치매'로 알려진 알츠하이머병, 유방암, 간암, 위암 같은 유전적 질환, 뿐만 아니라 개인의 키가 클지 작을지, 비만이 될지 아닐지 등에 대해서도 추정할 수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알코올중독, 범죄성향, 천재성향 등과 같은 사회적 환경에 의한 사회적 행동까지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밝혀낼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연구자들은 인간유전자 연구가 인류건강과 행복증진에 기여할 것이라고 노래했지만, 정부 및 수사당국은 인간유전자를 범인색출 자료로, 부부관계에서는 친자확인 근거로, 보험회사는 보험료 산출 근거로, 심지어 결혼정보 회사는 맞선 자료로 보았다. 마치 영화 <가타카>에서 빈센트가 "유전자 코드가 바로 입사 원서 그 자체더군" 했던 것처럼.

믿기지 않는다면 하나하나 예를 들어 보자.


보건복지부, 유전자정보를 활용한 미아찾기 사업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 8일 하나의 보도자료를 냈다. 제목은 "유전자정보(DNA)를 활용한 미아(가족)찾기 사업 추진"이었다. 내용인즉슨, "보건복지부는 금년 1월부터 대검찰청, 한국복지재단, (주)바이오그랜드와 협약을 체결하여 유전자정보(DNA)를 활용한 미아(가족)찾기사업을 추진키로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를 찾고자 하는 사람과 자녀를 찾고자 하는 사람의 머리카락, 혈액 등을 채취하여 유전자를 분석한 후 유전정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 이를 토대로 친자, 친모 확인을 통해 가족상봉에 나선다는 것이다. 문제는 DNA 추출과 증폭, 프로파일 분석을 대검찰청이 담당한다는 것이다.

대검찰청은 이미 1994년 '유전자 정보은행 설립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해 놓고 유전자은행 설립을 준비해 왔다.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기결수와 강도, 강간, 살인, 상해폭력, 납치유인, 절도, 성폭력범, 마약 등 11가지 죄목 범죄자들의 채혈을 채취하여 유전자 감식을 데이터베이스 하는 것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1991년부터 2000년 7월까지 이미 2만여 건의 유전자 감식을 실시, 이를 공문서 양식으로 보관하고 있다. <김병수 고려대 과학학과 박사과정, '개인 유정정보의 활용과 인권'에서 자료인용>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한재각씨는 "검찰청이 미아찾기 사업에 참여해야 할 명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납득하기 힘들다"면서 "미아찾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유전자정보은행 설립 반대 여론을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언제나 인권침해는 범죄자, 미아 등 소수자로부터 시작됐다. 비록 유전정보은행이 개인식별용으로만 활용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정보 DB화는 향후 충분히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바이오 벤처를 아십니까?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연예인 DNA 목걸이, 네잎 클로버 열쇠고리 등은 모두 유전자 복제, 변형한 상품들이다. 개인의 유전자가 담긴 목걸이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처럼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바이오벤처들은 DNA 지문법을 이용한 친자확인, 가족 유전자 사진 제작, 출생기념 DNA 카드 제작, DNA 추출 보관 및 개인 식별 검사 등을 유전자 사업(?)은 이미 성황중이다.
아래는 한 유전자 감식업체의 광고다.

검사료(우리나라에서 가장 저렴한 요금)
검사료는 수차에 걸친 유전자 증식 작업과 친자확인을 위한 부모 및 자녀 유전자의 복합적, 과학적인 비교검사 작업에 소요되는 비용입니다.
자 1인 + 추정되는 아버지 1인 ...... 600,000원
1인 추가시 ...... 120,000원
* 부가세 10% 별도

개인식별 유전자 검사는 30만원이고, DNA를 추출하여 다른 DNA와 비교하는 검사(친자확인이나 혈육찾기 등의 검사)는 45만원, 샘플속에 DNA가 존재하는지의 검사(특정한 기능-질명이나 소인-을 수행하는 유전자에 대한 검사)는 25만원이다. 애완동물의 유전자 검사는 15만원, 2마리 27만원, 한 마리 추가시 8만원이다. 애완조의 성별도 검사해준다. 비용은 3만원. 모든 요금에는 10%의 부과세가 별도 부과된다.

유전자 정보가 담긴 개인카드, 가족카드, 동물카드도 만들어준다. 비용은 카드 하나에 2만5천원. 온가족의 유전자 정보가 담긴 카드는 4만5천원이다. 유전자 카드의 용도? 주민등록번호, 개인지문보다 확실한 개인확인 카드다.

다음은 한겨례신문 2000년 11월 21일자 기사내용이다.

제목 : DNA 확인으로 '찰떡' 배우자 선택하세요
결혼정보업체 **는 카이스트 출신 연구진들이 만든 DNA분석 벤처회사인 *****와 손잡고 회원들의 머리카락 또는 타액을 분석해 최적의 결혼상대자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DNA 매칭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DNA 검사를 하면, 회원이 가진 체력 및 체질, 성격, 지능, 비만, 치매 등 질병 유전자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성격 DNA 정보가 유사한 회원끼리 사귀기는 좋으나 결혼할 때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이하생략)

그런데 이렇게 수집된 개인정보는 어떻게 될까? 참고로 각 업체의 광고내용에는 '한번 검사된 유전자는 업체의 데이터베이스에 영구적으로 보관된다'고 이미 쓰여져 있다. 이건 거의 모든 기업에서 마찬가지다. 마치 인터넷 회원정보와 같이.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수집된 개인유전정보들이 자사의 데이터베이스에 차곡차곡 저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보호조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입사원서를 대체하는 날 올지도

사례 1.
미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테리 서전트는 얼마전 알레르기가 심하다고 느껴져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유전자 감식을 하더니 '알파 I' 유전자에 결함이 있다고 알려웠다. 이 결함은 내버려 둘 경우 폐가 오그라들어 결국 질식사하는 무서운 질병이었지만 다행히 미리 발견돼 약물 치료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후 며칠 지나지 않아 회사로부터 해고통보와 함께 보험회사의 보험료 인상을 통보받았다. 아들의 보험가입은 아예 받아주지도 않았다. 미국의 고용평등위원회는 서전트의 경우를 최초의 유전자 차별 사례로 보고 법원에 제소할 방침이다.<영국 가디언 보도, 한겨레신문 2000년 10월 8일자에서 재인용>

사례 2.
7살인 대니는 매우 건강한 상태이지만 유전자 테스트 결과 심장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대니는 심장 마비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한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건강 보험을 거부당했다. 보험회사는 그의 유전자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의학적 질환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우리나라도 병이 있을 때는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이러한 보험차별은 유전자 차별의 첫 신호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인류의 획기적인 기원을 이룩하리라 믿었던 유전자가 실제로는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보여준다.

더욱 놀랄만한 것은 '결근을 줄이고, 건강 보험료를 줄이고, 교육투자에 대한 보상이 확실한 노동자를 선별하기 위해 유전정보가 (건강한 체질의 노동자를 선별하도록) 사용될 것'이라는 CRG의 언급이다.

CRG가 발표한 성명서 가운데는 "1989년 국회의 기술영향평가 사무국이 의뢰한 설문 결과 <포춘>지가 선정한 5백대 기업 가운데 5개 이상의 기업이 직원들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이 개선되고 유전자 테스트가 저렴해지면 아마도 이를 활용하기 시작하는 고용주들도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법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면 고용주들은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나쁜 위험'이 될 사람들을 배척하는 수단으로 이런 테스트를 활용할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영화 <가타카>의 미래는 이제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인류의 건강과 행복 증진이라는 미명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암울한 현실은 인간유전자가 예상과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주변환경보다는 주어진 성질에 의해 모든 것을 평가하는 유전자 차별이 도사리고 있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한재각씨는 "유전자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인간유전정보 보호법'이 시급히 제정되어야 한다"면서 특히 "안전 제도 하나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기관과 사기업에 의한 유전자정보은행 구축사업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인간유전정보보호 시민행동 사이트(www.bioact.net)을 개설하고 온라인 서명운동 및 유전정보보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 제공

덧붙이는 글 대학생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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