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기념관 반대 1인 시위 참여
김지하 시인이 5월 4일(금) 서울시청사 정문 앞에서 '박정희기념관 반대 국민연대'가 주관하는 박정희기념관 건립반대 문인 1인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현기영 (사)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4월 30일), 소설가 이경자(5월 2일), 소설가 김영현(5월 3일)에 이어 계속된 문인 1인 시위의 마지막 날을 장식한 김지하 시인의 1인 시위는 「오적」 필화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苦行……1974」 필화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는 등 8년여 동안 옥고를 치른 7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사회 여론의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김 시인은 이날 서울시청사 앞 시위에 앞서 "정치적 야합의 산물인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따른 국고지원 계획은 즉각 철회되어야 마땅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박정희 정권에 맞선 저항을 인정받아 1981년 출옥 직후 '로터스 특별상' '크라이스키 인권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박정희기념관 반대시위에 나선 당신을 환영하며
김지하, 당신의 홈페이지(http://www.artnstudy.com/kimjiha)에 오른 박정희기념관 반대 1인 시위 참여 보도자료입니다. 그렇군요. 4일 오후면 이같은 글들이 오마이뉴스와 같은 인터넷신문에, 하루 지난 5일이면 조중동 같은 일간지 지면을 장식하겠죠.
유신독재시대의 대표적 저항시인이자 운동가인 당신이 박정희 기념관을 반대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 시대의 상징적 인물로 70∼80년대 대학가에서 김지하 신드롬을 낳았을 정도의 우상적 존재였던 당신.
당신이 4일 박정희기념관 반대시위를 벌이는 날에 나는 판을 깨는, 당신의 참회를 요청하는 글을 올립니다. 당신이 10년 전 조선일보에 실었던 글을 본보기로 삼아 당신이 그날 조선일보에 실었던 톤으로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노회한 시인!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조선일보 앞으로 가 참회하라! 그리고 그 조선일보에 실었던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내라. 당신은 그때 분명 잘못 들어섰다. 그것도 크게!
10년이 지나도록 이제나저제나 하고 당신의 참회를 기다렸다. 노회한 당신의 슬기로운 결단이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숱한 사람들의 간곡한 호소가 있었고, 여기저기서 참회요청이 빗발쳐 당연히 그쯤에서 당신이 저지른 악마 같았던 폭언을 참회할 줄로 믿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진정 참회하고 있는가?"
노회한 시인! 잘라 말하겠다 '참회하라'
당신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전인 1991년 5월 5일 조선일보(조선일보 1991-05-05 03면 (해설)판 칼럼.논단 3679자)에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 칼럼을 '김지하/시인'이란 이름으로 기고했습니다. 설마 뇌리에서 지우신 건 아니죠. 당신은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도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기억을 일깨워주기 위해 10년 전 당신이 조선일보에 올린 글의 전문을 여기에 올립니다. 당신은 그때 무슨 글을 올렸습니까.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김지하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환상을 갖고 누굴 선동하려 하나/죽음을 제멋대로 이용할 수 있나/슬기롭고 창조적 저항 선택해야
젊은 벗들!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당신들은 잘못 들어서고 있다. 그것도 크게!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다. 젊은 당신들의 슬기로운 결단이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숱한 사람들의 간곡한 호소가 있었고, 여기저기서 자제요청이 빗발쳐 당연히 그쯤에서 조촐한 자세로 돌아올 줄로 믿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정권보다 큰 생명
생명이 신성하다는 금과옥조를 새삼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출발점이요 도착점이라는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심지어 종교까지도 생명의 보위와 양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근본을 말살하자는 것인가? 신외무물이 무슨 뜻인가? 당신들 자신의 생명은 그렇게도 가벼운가? 한 개인의 생명은 정권보다도 더 크다. 이것이 모든 참된 운동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당신들은 「민중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것이 당신들의 방향이다. 당신들은 「민중에게 배우자!」라고 외친다.
그것이 당신들의 공부이다. 민중의 무엇을 위해서인가? 민중이 생명의 보위,그 해방을 위해서일 것이다. 당신들이 믿고있는 그 해방의 전망은 확고한가? 목적에 대한 신념은 과학적으로 확실한가? 만약 그것이 기존의 사회주의라면 그 전망은 이미 끝이 났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민족이 패망하는 극한 상황도 아닌터에 생명포기를 요구할 정도의 목적의 인프레션 따위는 있을수도 없으며 다만 뼈를 깎는 기다림과 겸허한 모색이 있을 뿐이다. 모색하는 자가 매일 매일 북치고 장구칠수 있는가? 도대체 그 긴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왜 덤비는가?
모색과정에도 위기에 대한 긴급한 행동은 있을수 있다. 하나 그때의 행동은 달라야 한다.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당신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당신들은 민중에게서 무엇을 배우자고 외쳤는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과 삶의 존중,삶의 지혜를 놔두고 도대체 무엇을 배운다고 하는가?
어느 민중이 당신들처럼 그리도 경박스럽게 목숨을 버리던가? 당신들은 흔히 「지도」라는 말을 쓴다. 또 「선동」이란 말도 즐겨쓴다. 스스로도 확신 못하는 환상적 전망을 가지고 감히 누구를 지도하고 누구를 선동하려 하는가? 더욱이 죽음을 찬양하고 요구하는가? 제정신인가, 아닌가? 「과학」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것이 과학인가? 그보다도 더 자주 「정치」라는 말을 쓴다.
그것이 정치인가? 분명히 못박아 말하지만 정치란 도덕적 확신에 기초한 엄밀한 이성과 수학의 세계다.
○자살 전염 부채질
당신들에겐 분명 그것이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학생운동 본연의 순결한 정의감,그리고 대안적 정열이 요구하는 바대로,그리고 혼란한 전환기에 대응하는 확률적인 모색의 태도로 전시민적인 요청에 대답하는 합당한 행동을 선택하라.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짓을 하고 있는가?
전환기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 지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수하기 안성맞춤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 지금 당신들은 조심성이 있고 없고의 차원을 훨씬 넘어섰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전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사파의 스테레오타입마저 이미 이탈했다.
철부지라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당신들은 지금 극히 위태롭다. 생명은 자기 목숨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무서운 것인데 하물며 남의 죽음을 제멋대로 부풀려 좌지우지 정치적 목표아래 이용할수 있단 말인가? 그럴수 있다고 대답하는 모양인데,그렇다. 바로 그 대답에 당신들의 병의 뿌리가 있고 문제의 초점이 있다.
지금 당신들 주변에는 검은 유령히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을 분명히 말한다. 「네크로필리아」 시체선호증이다. 싹쓸이 충동,자살특공대,테러리즘과 파시즘의 시작이다.
이미 당신들의 화염병은 방어용 몰로토프 칵테일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파괴력에서가 아니라 상황과의 관계상실과 거기에 실린 당신들의 거의 장난기에 가까운 생명말살충동에서다. 당신들의 그 숱한 죽음을 찬미하는 국적불명의 괴기한 노래들,당신들이 즐기는 군화와 군복,집회와 시위때마다 노출되는 군사적 편제선호속에 그 유령이 이미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맥도날드햄버거를 즐기며 반미를 외치고 전사를 자처하면서 반파쇼를 역설했다. 당신들의 구호와 몸짓은 이미 순발적 정열을 이탈하여 의식화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이미 오래전에 일본 전학연의 몰락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모순을 어찌할 셈인가? 그런데 한술 더 떠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 생명말살에 환각적 명성을 들씌워 주고 있다. 컴컴하고 기괴한 심리적 원형이 난무한다.
○종교냐 「유물」이냐
삶의 행진이 아니라 죽음의 행진이 시작되고 있다. 그것이 해방의 몸짓인가? 무엇을 해방할 작정인가? 귀신인가?
절정은 당신들의 그 혼을 분리하는 굿에 있다. 시체가 당신들 것인가? 왜 탈취하려 하는가? 그 시체의 주인공이 조선시대의 사대부집안의 그 가족도 없는 종인가? 왜 가족을 무시하는가? 그러나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당신들의 그 기괴한 이원론이다. 당신들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인정하고 있다. 당신들의 결정적 파탄의 증거다. 묻겠다. 당신들의 신조는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육신을 경멸하고 영혼의 찬란한 해방을 광신하는 고대종교인가? 육신의 물질성만을 주장하는 속류 유물주의인가? 도대체 어느쪽인가?
도대체 그놈의 굿판에 사제노릇을 하고 있는 중과 신부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악령인가? 성령인가? 저는 살길을 찾으면서 죽음을 부추기고 있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은 선비인가? 악당인가? 당신들은 지금 굿에서의 이른바 「불림」을 행하는 모양인데,「불림」에는 조건이 있는 법이다.
영매는 자기목적이 없어야 하고 「불림」의 대상은 「귀신」이 아니라 「신명」이어야 한다. 검은 귀신이 아니라 밝은 신명이라고 주장하겠지. 그러나 젊은 벗들! 귀신은 영육분리의 형상이지만 신명은 영육합일,몸과 함께만 현상한다네! 그래서 신명은 곧 생명이라네. 당신들의 귀신숭배는 더욱이 급진적 폭력을 동반함으로써 바로 네차예프사건과 인민사원의 집단학살,그리고 연합적군 모리(삼)그룹의 산장에서의 피의 인민재판을 예고하고 있다. 죽음숭배,귀신숭배의 결과는 풍수의 표현으로 당판,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비수터,울부짖는 터,갈기갈기 찢어지는 참혹한 종말이다. 어찌할 작정인가?
○운동은 이제 끝장
젊은 벗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소름끼치는 의사굿을 당장 걷어 치워라. 영육이 합일된 당신들 자신의 신명, 곧 생명을 공경하며 그 생명의 자연스러운 요구에 따라 끈질기고 슬기로운 창조적인 저항행동을 선택하라.
나는 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좋다. 할대로 해보라. 당신들 운동은 이제 끝이다! 그래도 지성인이라면, 최소한 내말을 접수라도 한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자신의 신조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할 것이다.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대답이 다행히 창조적 통일로 끝났을 때, 그때 우리는 현정권에 대한 효력있는 저항을 참색할수 있을 것이다. 부디 자중자애 하라. 부디 절망하지 말라. 절망은 폭력과 죽음, 그리고 종말의 서곡이다. <시인>
'조금 지나쳤다 싶었다'고요? 아닙니다 한참 지나친 겁니다
꼭 10년전 김지하, 당신이 올렸던 글입니다. 이 글과 관련해 당신은 지난 99년 9월 월간 『말』지와의 인터뷰에서 "내 글만 실었으면 좋은데 사설을 지멋대로 쓴 거야. 내 재료를 가지고 가공한 거라고. 아차, 이건 조금 지나쳤다 싶었는데 난리가 났어. 그건 내 인정을 해.
『조선일보』가 나쁘다 좋다를 떠나서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거, 거기에 실었다는 거"이라며 당신의 잘못을 한 차례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어 당신은 인터뷰에서 2가지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한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글이 너무 날카로워서 흥분해 있던 젊은이들 마음을 상하게 한 것 사과할게. 두 번째는 내가 그 때 아팠기 때문에 선배로서 조금 더 따뜻하게 조언을 못한 거, 즉 적절한 루트나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서 갈긴 거, 이건 지금도 내가 그렇게 잘했다고는 생각 안해. 이 점 사과할게요."
하지만 당신의 말은 사과가 아니라 차라리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팠기 때문에." 그게 사실일 수도 있겠지요. 당시 91년 7월 24일자 동아일보 사회면(22면)엔 '김지하씨 신경과민증/한달간 치료받고 퇴원'이란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전문을 보시죠.
김지하씨 신경과민증/한달간 치료받고 퇴원
동아일보 1991-07-24 22면 (사회)판 뉴스 137자
【원주】 시인 김지하씨(50)가 신경과민증상으로 강원도 원주시 원주기독병원에서 한달간 입원치료를 받아오다 24일 퇴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그동안 이 병원 정신병동인 52동에 입원, 세상일을 잊게 하는 신경이완훈련 등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적어도 김지하 당신이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상태였던 당신에게서 민주화운동을 처참히 짓밟는 과격한 수구적 발언이 담긴 당신의 글을 신문에 실었던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도 제 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땐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신의 글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당신의 주장이 수구적 필자들에 의해 인용되고, 당신의 주장을 근거로 내세우며 조선일보, 중앙일보 같은 수구적 조폭신문들이 민주화운동진영에 무자비한 사상적 공세를 감행한 모든 죄악들이 무죄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정신은 멀쩡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글들이 당신의 머리에서 탄생해 원고지에 옮겨지고 수구적 조폭신문에 버젓히 실렸을까요. 정말 의문입니다. 당신이 그 내막을 실토하지 않는 한 영영 알 길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 혹시 당신은 조폭신문에게 당신의 흠집이라도 잡혔던가요?
치밀하고 계획적인 글쓰기가 아니고서야
분명 실수가 아닙니다. 단순히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저지른 1회적 실수라고 보기엔 당신의 글들은 치밀했고, 체계적이었습니다. 조선일보의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이후의 연속적인 다음의 글들에 대해 당신은 무어라고 변명할 것인가요.
침묵할때는 지났다/김지하(시론)
조선일보 1991-06-18 05면 (외신)판 칼럼.논단 1705자
"권력집중은 부정부패와 공안통치의 온상이며 집중권력은 민주화의 암이다. 집권당이든 야당이든 권력집중을 지향하는 자들은 민주시민에게 있어 모두 암세포다. 암은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또 하나의 암세포이며 권력집중 지향집단인 재야 혁명권의 주장처럼 집단의 물리력에 의한 폭력적인 외과수술로는 결코 치유될수 없다." <전문보기>
김지하 특별기고(풀뿌리민주주의와 생명:하)
중앙일보 1991-06-08 09면 ()판 기획.연재 8565자
"지금 끝없이 매도당하고 있고 중상당하고 있는 나와 여러 시민민초들의 허름한 삼베주머니속에 든 성냥은 바로 민주개혁의 정열이며 의송에 쓰여진 글귀는 곧 다름아닌 이 「각지불이」 네글자다. 이것이 우리 민초들의 유일한 정신적 밑천이다." <전문보기>
김지하 특별기고(풀뿌리민주주의와 생명:중)
중앙일보 1991-06-06 09면 () 판 기획.연재 6560자
"임시민주정부수립 운운하는 재야 운동권은 어떤가? 그들 역시 최고도의 권력집중을 요구하는 보다 강력한 민족국가·국민국가주의자들이며 집산주의자들이다. 더욱이 최근 그들의 정치행태는 주체성이라곤 아예 없으며 북한의 정치 코만도스로 전락해버렸다. 이미 그들의 사회주의 변혁전망은 깨끗이 파산해버렸다. 추억의 환상적 혁명가 집단이며 역사로부터 증발한 유령집단이다. 그럼에도 생명가치나 풀뿌리 따위에는 오만하게 코웃음치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전문보기>
"참다운 민주는 인간존중”/김지하특별기고(풀뿌리민주주의와 생명:상)
중앙일보 1991-06-05 05면 (해설) 판 기획.연재 3373자
"과연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 「순수한 심령의 애처로운 호소」도 일관하고 있다는 학생들의 그 욕설과 주먹과 몽둥이와 밀가루와 계란과 발길질과 부릅뜬 핏발선 눈이 교육자출신의 늙은 총리의 머리위를 용감하게 구타,난타하는 그 숭고한 「신풍」에 비해보면 참으로 더럽고 꾀죄죄하다. 하룻밤 행사에 「5억4천만원」의 경비를 들여 「4만여명」이 「일사불란」하게 한자리에 「집결」해 수백개의 「대형기치」아래 「똑같은」 몸짓,「똑같은」 구호,「똑같은」 라이터 「불꽃」으로 「전원일치」,「수령」인 의장을 「옹립」하고 전율과 열광으로 「경배」하는 「공룡」같은 학생조직의 그 삐까 번쩍한 「히틀러 유겐트」식의 시위에 비해보면 정말 허름하다.
대안이 없음에도, 분명히 「틀린」 방향감각을 가지고서도,이른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혹한 파멸과 시커먼 폭력과 어두운 혼란에 몸을 던져 「운명을 난파하는」 젊은 비극적 낭만주의자들의 맹목적 정열에 비해보면 한심한 겁쟁이요,「정권과 죽은 학생을 동시에 매장하겠다」는 백발예언자의 무시무시한 「예단」에 비해보면 꼭 뒷골목을 배회하는 처량한 배신자꼴이 틀림없다."<전문보기>
「다수의 침묵」,그 의미를 알라/김지하시인 “생명선언”
조선일보 1991-05-17 05면 (해설)판 기획.연재 5255자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죽어간 모든 젊은이들에 대한 진정으로 경건한 애도인 것이다. 생명을 가볍게 여긴 그 잘못과 어리석음에 대한 깊은 꾸지람이면서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이 잘못된 사회에 대한 넓은 나무람이다.
자살한자는 저승에 갈 수 없다. 그는 삼도천을 건널수 없으며 극도의 괴로움속에 원귀가 되어 울부짖으며 현사회의 모든 정신과 그 소통관계를 어지럽힌다. 원귀는 그 자신을 위해서도 바삐 저승으로 가야하며 이 사회를 위해서도 빨리 저승으로 보내져야 한다. 원귀를 불러 혼돈과 증오심을 일으키고 원귀를 이용해 투쟁을 선동하려는 일체의 어두운 소란의 굿판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도 시민들 자신이 친구의 마음의 경건한 굿, 슬퍼하는 마음, 엄격한 부모와 스승과 밝은마음, 따뜻한 마음, 너그러운 마음, 또하나의 깊은 해원의 침묵, 천도의 침묵, 신원의 침묵으로 그들 혼백을 삼도천 건너 보내줘야할 것이다."<전문보기>
'원귀를 이용해 투쟁을 선동하는 일체의 어두운 소란의 굿판'
이같은 글들을 아파서 한 실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때 아파서 그랬다면 지금은 당신은 멀쩡합니다. 멀쩡하게 제 정신으로 박정희기념관 반대시위도 벌입니다.
김지하, 당신에게 정중하게 권고합니다. 지금 당장 '박정희기념관 반대 1인 시위'가 끝나는 대로 조선일보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박정희가 근대화의 주역이란 이유로 그의 독재와 민주화운동탄압이 정당화되지 못하듯, 당신이 저항시인이고 생명운동가라는 이유로 그때 당신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을 통해 퍼붓었던 수구적 사상공세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지금 조선일보사로 달려가세요. 5분이면 됩니다. 그리고 그 조선일보사 앞에서 또 하나의 피켓을 목에 두르십시오. "조선일보에 올린 나의 글로 인해, 또한 이를 이용해 수구적 사상공세를 퍼부은 조선일보로 인해 91년 5월 민주운동진영이 죽음의 배후로 매도당하고, 산화한 열사들을 '생명을 가볍게 여긴' 어리석은 자들로 매도했습니다. 진실로 참회합니다"라고.
조선일보 앞에서 진정으로 참회하시라, 김영일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91년 5월 정국에 민족민주운동진영과 산화한 오열열사들의 영정에 당신과 조선일보가 퍼부었던 악마 같았던 폭언을 10년이 지난 지금 통렬하게 진정으로 참회할 것을 요구합니다. 당신이 조선일보에 실었던 글(「다수의 침묵」,그 의미를 알라/김지하시인 “생명선언” 조선일보 1991-05-17 05면)에서 제 정신(?)으로 한 당신의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개인의 생명은 정권보다 크고 막중하다. 그것은 신령하며 우주적인 것이다. 민주화를 공약한 정권이 최루탄곤봉물대포위에 백골단 따위 생명말살 집단까지 조직투입 하여 타살하고 시체를 강제 탈취 부검한 일을 어떻게 합리화할 셈인가?"
끝으로 당신의 약력에서 빠진 91년 조선일보 칼럼파동을 집어넣고자 합니다. 왜 그 사건을 약력에서 제외하십니까? 앞으로는 당당히 집어넣으시길 바랍니다.
<김지하 약력>
김지하 [金芝河] (1941∼ )
시인. 본명 김영일(金英一), 호는 노겸(勞謙)
1941년 전남 목포(木浦) 출생
196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
8년여 투옥 생활,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
1969년 「황톳길」 등 시 5편을 『시인 詩人』지에 발표
1970년 5월, 담시 『오적(五賊)』 필화 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받음, 7월 무기징역 감형
1975년 2월 출옥후 옥중기 「고행―1974」 발표, 재차 투옥됨
1975년 <로터스 Lotus> 특별상 수상, 노벨문학상 후보 추대됨
1981년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수상
1991년 5월 5일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칼럼 기고. 이 칼럼을 이용한 조선일보 등 수구언론의 공격으로 당시 오월투쟁 정국에서 민족민주운동진영은 수구세력으로부터 엄청난 사상공세에 시달렸다.
1999년 율려학회 창립
덧붙이는 글 | <월간『말』 (1999년 9월 인터뷰)중 조선일보 '죽음의 굿판' 기고 관련 내용>
■ 인간·사회·자연 하나되는 길 찾아나선 ‘생명파’ 시인
- 시인 김지하 인터뷰
― 선생님에게 변절자니 뭐니 했던 건 그만큼 선생님에 대한 기대치가 컸거나 이른바 김지하 신화가 주는 파급력이 컸기 때문이었겠죠.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글에 대한 반응도 그런 것으로부터 비롯된 반발이었지요.
“미리 말할게. 자네들이 잘못했고, 선배 얘기를 들었어야 했어. 몇 번 채널을 통해 얘기하려 했는데 아무도 지도부를 몰라. (장)기표가 장례 책임자였는데도. 어디다 얘기할 데가 없었어. 그 다음 『동아일보』와 교섭했는데 거기서 안 받았어. 그래서 『조선일보』로 간 거야. 그런데 내 글만 실었으면 좋은데 사설을 지멋대로 쓴 거야. 내 재료를 가지고 가공한 거라고. 아차, 이건 조금 지나쳤다 싶었는데 난리가 났어. 그건 내 인정을 해. 『조선일보』가 나쁘다 좋다를 떠나서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거, 거기에 실었다는 거. 그러나 이걸 또 알아줘요. 난 그 때 군부에도 채널이 있었어. 그 당시 의정부 남쪽에 3개 기갑여단이 포진하고 있었다고. 왜 그랬을까. 진압과정을 생각 해봐. 피바다라고, 걔들 이미 광주사태를 겪은 얘들이라고. 기관총밖에 나올 게 없어. 두 번째, 이것도 화해의 전제니까 꼭 들어줘야 해요. 당시 보름 사이 시위군중이 연인원 20~30만명이었어. 그것도 동질성을 가진 군중이. 내가 조직가라면 그 정도의 매스 파워면 미소를 지으면서, 카네이션을 흔들면서 시위할 수 있어. 왜 몸에다 불질러, 끔찍하게. 가미가제는 패배를 역전시키려고 하는 거야. 그 때가 패배하고 있을 때였나. 갈데 올데 없는 놈이나 불을 지르는 거지. 아니 혁명이나 투쟁이나 개혁이 뭘 위해 있는 거냐고. 살기 위해 있는 거고, 자신과 남을 다같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오는 거지. 왜 그렇게 극한적으로 나가냐고. 몸에 불지르는 것은 정치적인 비겁이야. 질긴 줄기찬 행동의 포기야. 또 누가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할 말은 하자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한테서 송장을 왜 탈취해. 저희가 뭔데. 왜 가족을 존중 안해. 홍위병도 그따위 짓은 안했어. 또 송장을 왜 보름씩 끌고 다녀. 보는 사람이 다 끔찍해했어. 또 내가 제일 싫었던 게 불림이야. 밝은 신명이 있고 어두운 귀신이 따로 있어. 춤도 다르고 노래도 다르고 의식도 다른 거야. 그 때 하는 것 죽 보면 그게 귀신 부르는 거였어.”
― 살풀이를 말하는 겁니까.
“살풀이가 아냐. 불림이라는 거야. 초혼이란 것은 절대 그짓을 해서는 안되는 거야. 신명을 불러서 천도를 해야지. 그래서 너희들 신조가 영육을 분리하는 고대종교 신도들이냐, 유물주의자냐, 그렇게 내가 물었던 거야. 그게 다 하나하나 완전히 군사편재가 되어서 시작한 거 아냐. 그런 투쟁의 말로가 뭔지 알아. 일본 연합적군의 마지막 코스가 산장에서 서로 쑤시는 거였어. 따뜻한 지지 속에서 당당하게 전진하는 게 변혁 운동이지, 특히 민족을 앞세운 운동이지, 그게 무슨 짓들 하는 거냐고 내 물었던 거야.” "내 생각은 변함없지만, 두 가지는 사과할게"
― 진보진영과 불화를 겪으신 지도 벌써 10년가까이 되는데요. 이제 화해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내가 오늘을 빌어서 두 가지 사과할게요. 첫 번째, 글이 너무 날카로워서 흥분해 있던 젊은이들 마음을 상하게 한 것 사과할게. 두 번째는 내가 그 때 아팠기 때문에 선배로서 조금 더 따뜻하게 조언을 못한 거, 즉 적절한 루트나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서 갈긴 거, 이건 지금도 내가 그렇게 잘했다고는 생각 안해. 이 점 사과할게요. 그런데 이건 잘 모를 거요. 그 글 쓰고 난 뒤 일주일 후에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문이 또 나갔어. 마지막으로 천도되도록 진혼가도 썼어. 나한텐 조금 이상한 게 있어요. 귀신의 울음소리를 다 들었다고. 삼도천을 못 건너는 거야. 내가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거, 아파했다는 거, 그것만은 기억해 달라고 하고 싶어. 내가 절대로 젊은이들에게 무자비한 사람이 아닙니다. 젊은이들한테 이 말은 부탁하고 싶어요. 이제부터는 나에게 완전히 동의는 못하더라도 서로 끈을 만들면서 같이 갈 수는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같이 가다보면 과거 문제는 다 풀릴 것이라고 봐요. 그 때 유행했던 말처럼 3억을 받았느니 뭐니,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그것은 좀 믿자. 그 말만은 하고 싶어요. 참 변명이 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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