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여여하신가?"

서옹 <물 따라 흐르는 꽃을 본다>

등록 2001.05.03 16:12수정 2001.05.0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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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문명의 원리를 제공한 사람은 근대철학의 창시자인 데카르트다. 그런데 그는 인간을 정신과 물질로 나눠 정신이 주인이고 물질은 노예 같은 것이라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일종의 이성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뒤 포이어바흐는 이성보다 감성에 생명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감성이 인간을 지배하고 움직인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욕망철학이 나왔다. 니체는 권리욕망을 말했고, 마르크스는 산업욕망을, 프로이트는 성욕망을 말했다. 그러므로 현대의 과학문명은 바탕에 욕망이 깔려 있는 문명이다."


서옹 큰스님이 바라본 현대 과학문명은 바로 '욕망의 문명' 이다. 끊임없는 욕망의 추구 때문에 인간 삶은 더더욱 훼손되고 끝 모르는 나락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기야 오늘날 선행을 베푸는 것마저도 일종의 정신적 허영이나 감정적 만족을 위해 선택되고 의도적으로 베풀어지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말이다. 때가 되면 고아원과 양로원에 나타나 보란 듯이 선물을 쌓아놓고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되지 않을까?

순수하게 욕망을 거세한 삶을 우리는 쉽게 떠올릴 수 없다. 욕망은 이렇게 우리 삶의 세세한 곳까지 파고들어 그 뿌리를 내려버렸다. 욕망을 떨치고 참된 나를 찾기 위해 참선을 하고 구도의 길을 걷는 서양문명사회의 그림자를 보면서 욕망의 마지막은 다시 그것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정신과 삶을 갈구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대 여여하신가?"
큰스님은 책의 첫머리에 이같은 질문을 던진다. '여여'란 '분별이 없는 경지, 나도 없고 남도 없는 참사람의 세계를 여는 물음'이다. 이 질문에 뒤 이어 '선은 어디로 들어가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따라 붙는다. 스님의 대답은 이렇다.

'저 개울물 소리가 들리느냐? 그럼 그리고 들어가자'
인간과 우주는 결코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바로 작은 우주이며 우주가 바로 인간의 무한한 정신이다. 온갖 자연은 바로 선의 경지를 그 자체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그것이 개울물 소리이든, 새의 울음소리이든 알아채고 경험하는 구체적인 모든 것을 통해 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큰스님은 모든 일에 구애 없이 자유자재로 한덩이가 되어 잘 작용할 수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선을 실현하는 경지라고 말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바로 깨달음의 장소가 된다는 의미다.

억지로 선의 의미를 가르치고 담아두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스님의 모습과 생활을 담은 사진,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많은 고민거리를 남기는 짤막한 글들을 읽다보면 선의 세계가 어디인지, 무엇이 선인지 느낄 수 있을만 하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만들어낸 문명이 오히려 인간의 시간을 더욱 복잡하고 바쁘게만 만들었다. 현대 사회의 시간 강박증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선사하는 여유와 진실, 깨달음으로의 초대가 한 없이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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