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화해, 어디로 가는 전진인가?

지난 17일, <화해와전진포럼> 공식 출범 - 진정한 알곡을 가리자(?)

등록 2001.05.20 23:25수정 2001.05.2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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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정치세력'으로의 발전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화해전진포럼'이 마침내 그 첫 출발을 알렸다. 지난 시절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각계 대표들과 정치인들이 중심이 된 이 포럼은 향후 정국운영에서도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게 정가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여야의 개혁중진을 비롯 종교계와 문화계, 여성계를 총망라한 발기인들의 명단은 시민단체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정치개혁을 요구할 방침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했던 화해전진포럼을 살펴본다.

최근 들어 민주당 내에선 '개혁피로론' '개혁옹호론' 등 '개혁'을 화두로 하는 논의가 연일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합리적 보수를 내세운 한나라당도 논란 속에서 '국가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런 점에서 70, 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의 모임 명칭이 '화해와전진포럼'이라는 점은 다소 호소력이 약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단체 실무 관계자는 "교계 분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종교적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화해와 전진'이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명칭이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화해란 동서로 나뉜 지역 간의 화합, 여야간의 상생의 정치를 비롯 남북한간의 평화교류 등의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전진'이라는 명칭도 올바른 민주주의 정치와 열린 정치공간으로의 한걸음 발전을 뜻한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이 포럼이 당사자들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제3정치세력'이나 '제4신당'으로까지 그 전망이 확대 해석되는 것도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과 향후 미칠 영향력을 볼 때 결코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또 다른 참석자의 말이다.


실제로 출범 당일, "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뜻있는 분들이 모임을 만드는 것은 환영하지만 정치 세력화한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명확히 선을 그은 반면 민주당측은 일절 공식논평을 하지 않은 것도 이같은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측에선 20명보다 더 많은 인원이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한나라당측 참석자와 어느 정도 비율을 맞추기 위해 자제했다는 게 여권관계자의 설명.


한편 출범한 17일에만 서울시의원, 전 국회의원 등 70여명의 인사들이 새로 회원으로 가입했고 주섭일 내일신문주필과 이승원 충남대교수가 운영위원으로 참석하는 등 모임은 당분간 더욱 그 세를 넓힐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준비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개신교와 원불교 측이 내부논의를 끝마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종교계 인사들의 추가 참여도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역할과 할 일이 따로 있다는 점에서 시민단체 인사들은 뜻만 함께 하고 참여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첫마음으로 아름다운 정치를

'화해전진포럼'에 대한 고민의 근원은 지난 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모임 발기인들은 창립취지문에서 "지난 87년 이후 민족사적 좌표를 형성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버린 사실을 뼈아픈 마음으로 기억한다"며 "이런 실패와 좌절이 또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국민과 역사 앞에 겸허하게 나설 것"을 천명했다.

이어 그들은 "이 자리의 정치인들은 여야의 정파적 이해를 뛰어 넘어 공동선을 추구함으로써 정치가 올바르게 자리매김되도록 자기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각계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진지한 고민 속에서 시대적 소명에 부응할 정치문화의 형성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도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는 고민을 같이 하고 있다.

포럼 창립모임에서 경과보고를 맡은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는 "국회는 있지만 정치는 없다. 모두들 각자의 목소리만 내고 있다"며 "이 포럼은 지역·계층·세대 갈등을 완충하는 중간지대로서 신뢰를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임시의장으로 추대된 함세웅 신부도 "현 상황을 보면 70·80년대 활동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순수한 시절 가졌던 첫마음으로 아름다운 정치를 만들자"라고 호소했다.

이런 '정치개혁'에 관한 논의는 창립모임에 이어 한시간 남짓 계속된 '의회민주주의 정립을 위하여'라는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주제발표를 맡은 양건 한양대 법대 교수는 "87년 시민항쟁 이후 '여소야대'라고 부르는 '분할정부'의 현상이 굳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다당제 고착 때문이며 다당제로의 변화를 가져온 주된 원인은 민주화세력의 분열에 따른 지역 할거 정치와 대선과 총선 시기 불일치 등을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분할정부의 경우에도 대통령이 이를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합당이나 의원빼오기, 정당연합 등을 통해 단일정부로 조작했으며 이는 민주화세력으로 지칭되는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이런 분할정부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선 의원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 그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도 <의회민주주의 활성화방안>이란 발제문을 통해 "개혁해야 할 정치과제 중의 하나는 국회가 정치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국회를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통령제 하에서는 무엇보다도 3권분립이 중요한데 우리 국회는 항상 대통령에 의해 장악되어 왔기 때문에 국회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당분간은 대통령이 여당 총재의 직을 겸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의원은 국회의 정책 능력 강화를 위해 ▲국회 산하 정책연구소 ▲감사원 국회 이관 ▲ 인사청문회 확대와 소위원회 활동 강화 등을 제안한 뒤 "역사에 공짜는 없다. 우리의 희생과 고통이 있어야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에 있는 우리는 양심과 소신에 따라 크로스보팅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고 촉구했다.

<한국 의회민주주의 활성화 방안 모색>을 발표한 민주당 정대철 최고위원도 "지금까진 의회 내 제도 정비와 정치인들의 의식개혁에 초점을 맞췄지만, 한국 의회민주주의의 고질은 정작 정당에 있다"며 "의회민주주의 활성화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정당 개혁의 메스를 들이대는 새로운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위원은 이를 위한 해결방안으로 중앙당 축소, 의원 총회의 정례화와 실질적 의사결정 기구화를 비롯 정치개혁문제, 자유투표 등을 제안했다.

알곡 가리기

현재로선, 창립모임과 토론회를 둘러싸고 머지않아 유야무야 없어질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과 새로운 정치세력 탄생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시간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김덕룡 의원은 '포럼'의 정치세력화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 포럼은 새로운 제약이다. 이 자리에서 논의된 내용을 통해 정치권은 우선적으로 반성하고 자기 정화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 정당이 국민합의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새로운 정치세력의 탄생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 모임에 참석한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모임의 성격에 대해 색다른 전망을 내렸다. "언론타기 좋아해 덩달아 이름 올린 정치인들 있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입니다. 시민단체의 지적이 다소 공식적인 통로라면 매번 포럼이 열릴 때마다 함께 과거를 같이했던 사람들이 면전에서 비판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쭉정이와 알곡을 가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정대철 최고위원만 하더라도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해 말들이 많지 않습니까. 오히려 알곡만 남으면 그 때부터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범을 고려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정작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관계자는 "정치인들을 제외한 참여 인사들이 모두 정치와는 거리가 먼 분들이다. 정치세력화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면서 "그러나, 여야의원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이번만큼은 의미 있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결실을 맺어야 할 것이다"고 선을 긋는 모습이다.

토론회가 끝난 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 한 신부님과 구면인 듯한 사람이 인사를 나누었다. "신부님, 어디 가세요?" "음.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 철회문제로 누구 좀 만나 이야기해보려구. 자네들은 도대체 뭐하나. 정치인들이나 교수 그 누구도 여기에 대해선 입을 꼭 다물고 있으니, 쯧쯔..." "……."

참으로 할 말 많은 이 모임 참여인사들이 향후 포럼을 통해 어떤 목소리를 일구어 낼지, 그리고 정치권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제공할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매달 첫째와 셋째주 목요일 포럼을 가질 예정인 '화해전진포럼'의 다음 행사는 오는 6월 7일 오후 2시에 '한국경제의 실상과 대책'라는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이어 6월 셋째 주엔 '6·15 1주년을 맞이한 남북관계의 고찰'을 다루는 포럼이 준비중에 있다.

덧붙이는 글 | '화해와 전진' 포럼 발기인 명단 (95명)
▲ 현역의원 (37명)
<민주당> 강성구 김근태 김덕규 김민석 김원기 김태홍 김택기 김희선 박인상 배기운 심재권 이강래 이미경 이종걸 이창복 이호웅 정대철 정장선 조성준 최용규 (20명)
<한나라당> 김덕룡 김부겸 김영춘 김용학 김원웅 김홍신 민봉기 박원홍 서상섭 손태인 안경률 안상수 안영근 이부영 이성헌 정의화 조정무 (17명)
▲ 전직의원 (7명) 
김상현 김종배 박계동 박석무 박정훈 유인태 이철 
▲ 종교계 (17명)
<천주교> 김병상 김승훈 김택암 박기호 송기인 안승길 전종훈 함세웅 황상근 (9명)
<개신교> 김영운 김진홍 최일도 (3명)
<불교> 명진 법륜 법안 재원 청화 (5명)
▲ 학계 (13명)
김민환(고려대교수) 김선형(인천대교수) 김영명(한림대교수) 김일수(고려대교수) 문정인(연세대교수) 서동만(상지대교수) 양건(한양대교수)  이정희(외대교수) 이철기(동국대교수) 이필상(고려대교수) 임현진(서울대교수) 장원호(아주대교수) 황우석(서울대교수)  
▲ 법조계 (2명) 조준희(변호사) 차병직(변호사)
▲ 문화계 (9명) 
구중서(수원대교수) 김용태(민예총 부회장) 김윤수(민예총이사장) 문성근(배우) 신경림(시인) 안성기(배우) 유홍준(영남대교수) 이현세(만화가) 현기영(소설가)
▲ 여성계 (4명)
민경희(충북대교수) 유시춘(자유기고가) 이영자(가톨릭대교수) 이영남(여성벤처협회회장) 
▲ 언론계 (5명)
김진현(언론인) 김태진(전동아투위위원장) 신홍범(언론인) 이경일(언론인) 임재경(언론인)
▲ 사회운동 (1명)
조성우(민화협집행위원장) 
<이상 발기인 및 운영위원. 17일 주섭일 내일신문 주필과 이승원 충남대 교수 운영위원으로 참가, 운영위원 총 97명>

덧붙이는 글 '화해와 전진' 포럼 발기인 명단 (95명)
▲ 현역의원 (37명)
<민주당> 강성구 김근태 김덕규 김민석 김원기 김태홍 김택기 김희선 박인상 배기운 심재권 이강래 이미경 이종걸 이창복 이호웅 정대철 정장선 조성준 최용규 (20명)
<한나라당> 김덕룡 김부겸 김영춘 김용학 김원웅 김홍신 민봉기 박원홍 서상섭 손태인 안경률 안상수 안영근 이부영 이성헌 정의화 조정무 (17명)
▲ 전직의원 (7명) 
김상현 김종배 박계동 박석무 박정훈 유인태 이철 
▲ 종교계 (17명)
<천주교> 김병상 김승훈 김택암 박기호 송기인 안승길 전종훈 함세웅 황상근 (9명)
<개신교> 김영운 김진홍 최일도 (3명)
<불교> 명진 법륜 법안 재원 청화 (5명)
▲ 학계 (13명)
김민환(고려대교수) 김선형(인천대교수) 김영명(한림대교수) 김일수(고려대교수) 문정인(연세대교수) 서동만(상지대교수) 양건(한양대교수)  이정희(외대교수) 이철기(동국대교수) 이필상(고려대교수) 임현진(서울대교수) 장원호(아주대교수) 황우석(서울대교수)  
▲ 법조계 (2명) 조준희(변호사) 차병직(변호사)
▲ 문화계 (9명) 
구중서(수원대교수) 김용태(민예총 부회장) 김윤수(민예총이사장) 문성근(배우) 신경림(시인) 안성기(배우) 유홍준(영남대교수) 이현세(만화가) 현기영(소설가)
▲ 여성계 (4명)
민경희(충북대교수) 유시춘(자유기고가) 이영자(가톨릭대교수) 이영남(여성벤처협회회장) 
▲ 언론계 (5명)
김진현(언론인) 김태진(전동아투위위원장) 신홍범(언론인) 이경일(언론인) 임재경(언론인)
▲ 사회운동 (1명)
조성우(민화협집행위원장) 
<이상 발기인 및 운영위원. 17일 주섭일 내일신문 주필과 이승원 충남대 교수 운영위원으로 참가, 운영위원 총 9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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