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현대중국, 백 년의 역사

후지이 쇼조 <현대중국, 영화로 가다>

등록 2001.05.28 15:46수정 2001.05.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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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현대사의 세월을 겪어온 중국인의 삶과 역사를 23편의 영화를 통해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일본과의 두 차례의 전쟁, 국공내전에서 문화대혁명을 거쳐 개혁·개방정책까지. 일찍이 영화가 발달하였고 영화가 주요한 국책사업이기도 했던 중국에 있어서, 영화는 그들의 역사와 정서를 이해하는 좋은 틀이 되어준다.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에서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통조림을 나이만큼 사모아 하루 전날 전부 먹어치우던 금성무의 모습을 기억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갈아탈 비행기를 기다리며 스쳐가는 도시 홍콩, 홍콩으로부터 이륙하고 홍콩으로 회귀하는 연인들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이 영화는 왕자웨이 감독의 94년작이다.

마약밀매를 하는 금발머리의 여자와 사복형사 223호, 그리고 유학비용을 벌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훼이와 순경633호의 사랑. 두 이야기에서 공통되는 것은 제복과 예고된 기일이다.

제복의 착탈은 영국에서 중국으로의 지배자의 변화로, 통조림과 항공권의 유효기간은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에의 암시로 해석된다. 글쓴이는 <중경삼림> 속에서 국제도시 홍콩 사람들의 활기와 그 속에 숨은 반환에의 불안감을 읽고 있다.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의 불안

사실 영화 <중경삼림>에 대한 이런 해석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이상의 함의를,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곤 한다. 그만큼 영화는 한 사회를 읽어내는 데 상당히 효과적인 하나의 창이 되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 「현대 중국, 영화로 가다」(후지이 쇼조 지음·지호 펴냄)는 영화를 통해 지난 백년간의 중국인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영화에 대한 책인 동시에 중국인들의 삶과 정서, 그리고 역사에 대한 책이다. 그 비중은 양쪽에 균형 있게 두어져 조화를 이룬다. 영화를 통한 중국에로의 접근이자 중국에 대한 영화들의 이야기이다.


첫머리에서 <중경삼림>의 예를 들었지만 이 내용은 책의 맨 끝에 자리잡고 있는 가장 최근의 현대사에 대한 기록이고, 이 책은 1920년대 중국문화의 중심이었던 상하이로부터 시작해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문화대혁명, 그리고 대만의 2·8사태에서 최근 홍콩의 중국 귀환까지, 그 역사를 훓어내려 간다.

중간중간 낯선 영화들도 있지만, 이미 많은 중국영화들이 우리에게 소개된 바 있기에 상당수가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름이 익숙할 영화들이다.

중국 영화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위치에 올려 놓은 작품인 <패왕별희(覇王別姬)>는 중화민국 시절부터 문화대혁명기까지 두 경극배우의 애증어린 삶을 그린 영화이다.

그런데 첸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는 원작 소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원작에서는 민중에게 "마오쩌둥 문체=사회주의 찬미"라는 공식을 강요한 중국 공산당의 광기를 비판하며 문혁기의 파국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는 데 비해 영화는 공산당 비판을 동성애 관계의 비극으로 슬쩍 바꿔치기하여 원작의 비판의식을 많이 퇴색시켰다는 것이다.

문혁기의 두 경극배우의 비극

글쓴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중국 민중의 정서를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원작과의 비교를 통한 영화읽기가 흥미롭다.

<비정성시(非情城市)>는 광복 후에 일어난 대만 전후사의 분수령, 2·28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한 대가족 일가의 부침을 그리고 있는 명작이다.

17세기 이후 식민지를 전전해 온 대만이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주국 귀속에 걸었던 기대를 국민당 정부는 무참히 배반하였다. 마치 점령군처럼 행동하던 군대와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아가던 가운데 담배 밀매를 발단으로 벌어진 대규모 유혈사건인 2·28 사건.

글쓴이는 허우샤오셴 감독의 <비정성시>를 통해 이러한 역사적 사건과 거기에 얽혀진 다양한 측면들을 조명해내고 있다.

그 밖에 1940년대 지식인들의 삶을 묘사한 옌하오(임호)감독의 <홍진>, 제5세대 감독의 대표격인 장이모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홍등>, 대륙에서 대만으로 이주해온 외성인 1세와 그 딸들의 생활을 그린 리안감독의 <음식남녀> 등의 영화들이 소개된다.

옮긴이의 말대로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겪은 중국은 영화 속에서 늠름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슬프다. 영화와 역사가 매우 잘 어우러진 이 책은 중국 영화를 즐겨보는 이들에게 더욱 익숙하게 다가서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즐거운 독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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