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레몽 장 <세잔, 졸라를 만나다>

등록 2001.05.29 16:05수정 2001.05.2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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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가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요즘, 또 다른 <친구>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 읽어주는 여자」로 국내 독자에게도 낯익은 레몽 장이 친구 사이인 세잔과 졸라의 관계를 쫓고 있는 것.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세잔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를 고발하라'로 유명한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 둘이 친구 사이였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


사실 동시대 인물로, 그것도 프랑스 태생인 두 사람이 친구 사이라는 것이 뭐가 대수란 말인가? 이 두 사람(친구)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세잔과 졸라 사이에 있었던 일

미리 밝혀두지만 이 두 사람 사이에는 극적인 일이 있었다. 어린 시절 졸라가 사과 한바구니를 들고 세잔을 찾아가면서 시작된 두 사람의 우정은, 역시 졸라가 「작품」이라는 소설을 내면서 결별을 하게 된다. 결별 이후 죽을 때까지 이 두 사람은 만나지도 않았거니와 적대적 관계로 돌변했다.

우정에서 시작해 결별로 이어지는 두 예술가의 삶을 쫓는 레몽 장이 조금 짓궂다는 생각이 들지만, 레몽 장 역시 같은 엑상프로방스 출신이기에 한번쯤 짚어보고픈 욕망이 있었으리라.

레몽 장은 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들이 주고받았던 편지와 「작품」의 등장인물을 꼼꼼히 짚어가면서 살핀다. 초점은 두 사람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지만, 각자의 개성을 생생하게 그려놓은 간략한 전기이면서 동시에 각기 걸어간 창작자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곧잘 급우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졸라를 세잔이 편들어 주면서 둘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이들은 이른 아침 창문에 돌멩이를 던져 잠을 깨우고, 학교를 땡땡이치고 엑상프로방스의 들판으로 달려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쌓아간다.

세잔은 화가로서 그림을 통해, 졸라는 작가로서 글을 통해 엑상프로방스의 '자연'을 표현했다. 졸라가 책을 쓰고, 세잔이 이 책에 멋진 삽화를 그려서 두 사람의 이름이 함께 빛나기를 바랬지만, 졸라가 쓴 「작품」으로 인해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졸라의 그 「작품」이 어떠하기에 결별하게 되었을까? 졸라는 「작품」에서 화가로 등장하는 랑티에라는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이는 세잔과 꼭 닮았다. 그리고 상도즈라는 인물은 졸라와 너무나도 닮았다. 랑티에는 실패한 그림 옆에서 자살하는 무능하고 실패한 화가로 묘사된 반면, 상도즈는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집요하고도 규칙적인 솜씨로 필생의 위업을 완성하는 작가로 묘사된다.

친구 사이에서 결별에 이르기까지

이로 인해 「작품」은 허구와 현실의 애매한 관계에 대한 논쟁을 불러왔으며, 결국 두 사람이 결별하고만 '잔인한 픽션'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세잔과 졸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졸라가 천성적인 노력가와 노동자로서의 작가 모습을 보인 반면, 세잔은 낭만적이고 부르주아적인 근성을 지녔으며 전시회에서 거부당하자, 그 모멸감을 참지 못하고 시골로 내려가 은둔하는 등 욕망과 그 결과 사이에서 갈등했다.

졸라는 세잔의 이런 점을 비난하곤 했다. 특히 "형태와 색깔보다 개념과 사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등 세잔의 작품을 두고 졸라의 비판은 결별 후에도 지속된다.

프랑스에 드레퓌스 사건이 발생하자 둘은 확연히 갈라지게 된다. 그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남긴 졸라, 반면에 세잔은 반드레퓌스파 지지자로 보수주의자의 편에 서게 된다.

졸라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하인에게 "꺼져, 날 내버려둬"라고 말했다는 세잔은 말년에 칩거한 채 생트빅투아르 산과 목욕하는 여자들, 그리고 과일 정물에 몰두했다. 이를 두고 세잔이 졸라와 함께 했던 유년시절을 내심 그리워했으리라는 짐작을 갖게 한다.

화가와 작가라는 서로 다른 길이지만 예술가로서 두 사람의 삶은 각별해 보인다. 게다가 뛰어난 이야기꾼인 레몽 장의 작품을 접하는 기쁨이 녹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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