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정리: 배을선 기자
송은희 기자 외 '기자만들기' 10기 수강생
"과거를 빼앗기면 현재를 빼앗기고 현재를 빼앗기면 미래도 빼앗깁니다”
어느 역사학자가 남긴 말일까?
아니다. 6월 1일 저녁 7시, 배화여대의 한 강의실에서 있었던 '오마이뉴스 열린인터뷰'에서 디지가 한 말이다.
디지는 최근 원색적인 욕설로 조선일보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등을 비판하는 게릴라 콘서트를 열어 세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랩퍼다.
사람들이 디지에게 보내는 것은 곱지 않은 의혹의 시선. "쟤 요즘 안티조선이 유행이니까 저러는 거 아니야?" "스무 살밖에 안된 양아치같은 녀석이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랩을 해? 기획사가 써준 거 아냐?" 등등.
디지와의 열린인터뷰는 이런 여러가지 의혹과 함께 시작되었다. "저는 김원종, 21살입니다. 실용음악과 휴학중입니다"라며 자신을 밝힌 디지는 'Insane DeeGie(광란의 디지)'라고 새겨진 야구모자를 거꾸로 쓰고 힙합풍의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평범한 젊은이였다. 그가 조선일보사 앞에서 세 번째 손가락을 치켜들고 랩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 5월 26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공연을 했을 때, 공연에 참여했던 랩퍼 ‘BCR 하이퍼'는 랩퍼는 가수보다 랩퍼로 불려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디지는 어떤가?
"요즘 가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입만 벙긋하며 춤만 추는 붕어다. 그런 사람들을 가수라고 할 때 정태춘 같은 선배들의 이미지가 깎인다. 가수는 랩퍼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이지만, 실제로 랩을 하며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랩퍼라고 불리길 원한다. 정확히 하자면 나는 가수 랩퍼 디지다."
- 힙합은 정신이라고 한다. 힙합뮤지션으로서 디지의 정신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나?
"힙합은 말 그대로 문화다. 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Graffiti)', 직접 가사를 쓰고 랩을 하는 MC들의 '엠싱(MCing)', 브레이크 댄서들의 춤인 '비보이', 그리고 '디제잉(Djing)'의 4대요소로 불리는 것이 힙합이다. 힙합이 저항정신을 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당시 힙합이 파생될 때 흑인과 백인 사이의 갈등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시위가 아니라 그래피티를 하고 춤을 추고 랩을 하면서 자신들의 불만을 이야기했다. 그들의 메시지가 공격적이라 해도 그것은 시위나 폭력이 아니다.
힙합은 한편으로 '파티'라고 할 수도 있다. 흑인들이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를 때 즐겁고 힘차게 부르듯이, 재즈 연주를 빅밴드가 신나게 연주하듯이, 인종차별에 관한 음울한 메시지 등을 춤과 노래로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이 힙합이다. 따라서 힙합은 문화적인 저항, 사회적인 저항이며 자기철학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힙합을 하는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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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상시에는 디지가 아니라 김원종이라는 평범한 젊은이에요 ⓒ 배을선 |
-오마이뉴스의 기사의견란에 보면 ‘디지 참 못생겼다’ 라고 쓴 글이 있다. 읽어봤나?
"(웃음) 읽어봤다. 기분 안 나쁘다. 나는 음악으로 말하는 사람이지 얼굴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공연할 때 메이크업도 하지 않는다. 만약 내 얼굴을 보고 밥먹다가 쏠릴 정도라면(토한다는 의미) 성형수술을 한 번 생각해 보겠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팬서비스는 필요하지 않는가?
"유 퍼스트(You First)라는 광고를 봤을 때 난 반대였다. 암 퍼스트(I'm First).. 노래로 공감하는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나의 팬서비스는 떨어진다. 나중에는 마이클 잭슨처럼 박피수술을 해야겠다.(웃음)"
- 음악은 언제 처음 접했나?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음악을 만들었다. 집에 ‘굴러다니는’ 건반으로 노래를 만들고 데모테이프도 만들어보았다. 고등학교 1학년때 캐나다로 유학가서는 스튜디오의 재떨이를 비우고 바닥청소도 하면서 음악을 많이 접했다."
- 랩은 언제 처음 접했나?
"1993년에 우연히 AFKN을 보는데 '싸이프레스 힐'이라는 그룹이 나오는 걸 보았다. 13살의 영어수준에서 들리는 단어는 'fuck' 과 'shit' 밖에 없었다. 하지만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그 이후로 음반 구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찾는 음반이 없어 고생했다.
- 디지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이 있다면?
"음악은 다 영향을 준다. 최근 약 2~3년 동안 인터넷 하면서 컴퓨터 앞에서 재즈를 들었다. 다른 음악을 하는 상태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더 루츠(The Roots), 영국의 펑크, 액시드 재즈(Acid Jazz) 음악을 하는 사람들한테 영향을 받았다."
- 'No Sex No Love'라는 노래가 있다. 혹시 밥 말리의 'No Woman No Cry'에서 제목을 따온 것은 아닌가? 또 랩퍼 에미넴(Eminem)의 랩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밥 말리를 존경한다. 그의 음악은 울면서 듣는다. 언젠가는 밥 말리처럼 음악을 하고 싶다. 그리고 에미넴. 에미넴과 나의 음악이 비슷한 점은 둘다 평서체의 랩을 한다는 거다. '뭐하냐?.. 너 좃선일보 보냐? 인연끊자..' 등의 식으로 말하듯이 랩을 한다는 것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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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신문에 '졸라맨'이 그냥 연재된다니.. "아버지 졸라맨 졸라 웃겨요!"라고 이야기할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하다! ⓒ 배을선 |
- 상상했던 것보다 터프하지 않다. 음악할 때는 욕도 많이 나오는데 지금은 욕도 쓰지 않고..
"음악할 때만 욕을 쓴다. 평소에는 김원종, 공연할 때만 디지이다."
- 부모님들은 이번 앨범이나 노래의 욕설에 대해 알고 있는가?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얼추 아실 거다. 나한테 '그런 노래 부르다 잡혀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걱정도 하셨다. 사실 어릴 때 만든 데모테이프에는 지금 음반보다 더 심한 가사로 만든 음악이 들어있었다. 어느 날 부모님 차를 탔는데 차안에 그 데모테잎이 반이나 감겨있었다. 그 만큼을 들으셨다는 건데 나한테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서로 다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하는 거다. 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뿌연 장막 같은 게 있다고 할 수 있다."
- 욕설이 담긴 디지의 음반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가?
"음반표지에 ‘연소자 이용불가’라고 써있다. 이 음반은 청소년 대상이 아닌 대학생들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아직 청소년들은 내 노래의 가사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좃선일보 x까라’ 라고 말하면 20살 넘은 친구들이 받아들이는 것과 청소년들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를 것이다. 그래서 공중파 방송도 포기한 것이다."
- 언제부터 안티조선 등 음반의 노래를 기획했나?
"작년 11월에 우리모두 사이트(www.urimodu.com)에 들어가서 글을 읽었다. 조선일보에 대해 제일 분노했던 것은 조선일보의 ‘친일’과거다. 그렇게 여러가지 사실들을 알아가게 되면서 노래를 기획했다."
-조선일보가 친일했다는 것은 강준만 교수의 글을 읽고 알았다는데?
"친일행각은 교과서에도 나온다. 도덕교과서 역사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강준만 교수의 글을 읽고 알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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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가 아니라 좃선일보니 명예훼손이 아니라구요! ⓒ 배을선 |
- 어떤 사람은 디지의 노래가 디지 자신의 창작이라기보다는 기획사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앨범에는 조선일보를 비판한 ‘J.N.P’외에 전직 대통령을 비판한 노래 등 여러 메시지가 담긴 노래가 있다. 앨범에 수록된 것은 2년 전에 작업이 끝난 것도 있다. 그 때부터 모든 것을 기획하고, 계산해서 만들었다면 2년 전에 작업을 못했을 것이다. 앨범안의 노래들로 클럽에서 계속 노래를 했다. 그래서 떳떳할 수 있다. 3년 전부터 불렀던 노래들이 지금 한 장의 앨범으로 나왔을 뿐이다."
- 디지는 힙합을 하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이번 컨셉이 다른 랩퍼들과의 차별성을 위해서 기획된 것인가? 아니면 본심인가?
"본심이다. 뉴스는 뉴스. 신문은 신문. 디지는 디지. 각각의 표현방법이 다르다. 뉴스는 정확한 사실들을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디지는 디지만의 표현방법을 가지고 있다. 뉴스처럼 정확할 필요도 없고 욕설을 쓸 수도 있다."
- 앨범 안의 노래가 불만으로 가득하다?
"난 지금 나에 대해 안티다. 지금 내가 바라본 시각이 이러니 노래도 그럴 수밖에. 아마 25살짜리가 바라본 시각은 다를 것이다. 25살이 되면 다른 노래를 부를 것이다."
- 노래가 모두 '안티'한 이유는 잠재적인 피해의식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글세.. 어머니가 초등학교 4학년때 선생님께 촌지를 안 줘서 내가 뺨을 맞았다. 그게 피해의식이 될까? 운동장에서 줄설 때 내가 서있는 줄이 맞는데도 꼭 다른 애들이 "들어가"라고 한다. 난 내가 확실하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안티면 안티고 매니아면 매니아일 뿐이다. 피해의식은 없다."
- 평소에 뭐하고 지내나?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면 많이 알아야 할텐데..
"랩하는 사람들이 다른 가수들보다 신문과 소설을 많이 본다. 가사가 방대하니까. 그 안에서 함축해서 이야기를 해도 축약을 해야하니까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서핑을 많이 한다. 자료도 모으고.. 게임은 전혀 못한다. 겜맹이다. 그냥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인터넷은 읽을거리 천지라 워낙 방대해서 막 돌아다니면서 읽는다. 가끔씩 메칸더 브이의 실현가능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도 해보고.."
- '스무살 양아치'는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김성순 사장님이 의견을 냈는데.. 난 조금 그랬다. 난 사상가도 아니고 양아치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고 그저 랩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양아치가 나쁜 단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영화에서 악역을 맡는 약올리고 도망가는 양아치? 어울린다. 괜찮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입만 벙긋하면서 립싱크와 춤으로 가수라고 말하고 다니는 애들이 진짜 양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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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비판을 하려면 정확히 똥침을 찔러라! ⓒ 배을선 |
- 누군가 디지에게 노래를 못 부른다고 한다면?
"정확히 똥침을 찌르는 말이라면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대안없는 비판은 안 하는 것이 낫다."
- 조선일보나 다른 집단이 명예훼손을 한다면?
"솔직히 명예훼손까지 생각하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무섭다고 생각 안 한다. 나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 노래가 가져올 파장을 계산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들을 노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확히 하자면 조선일보가 아니라 좃선일보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아니다.(웃음)"
- 81년 닭띠의 디지가 또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왜곡교과서 이야기. 30, 40년 후에는 우리가 어른이 된다. 근데 그때는 종군위안부 할머니 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우리만 남았을 때 일본애들이 와서 니네는.. 할 때 아무말도 할 수 없다면 심각한 문제다. 과거를 빼앗기면 현재를 빼앗기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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