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 없는 자유 꿈꾼 아나키스트

이덕일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등록 2001.06.11 14:13수정 2001.06.13 12:28
0
당신은 이회영이 누구인지 아는가? 지금 여기서 리뷰하려는 책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웅진닷컴)은 우리가 잘 모르는 한 인물, 이회영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대체 이회영이 어떤 인물이기에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김영사)나 「사도세자의 고백」(푸른역사)·「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2」(김영사) 같은 일련의 저작물을 통해 강단학문의 엄숙주의를 내몰고 대중 곁으로 달려가는 역사학의 가능성을 연 재야역사학자인 글쓴이 이덕일이 '들어가는 글'에서 이례적으로 이회영을 만나 흠모하게 된 마음을 절절하게 풀어놓게 했을까.


헤이그 밀사 사건의 숨은 주역

물론 글쓴이의 이같은 고백은 어쩌면 개인적인 존경심의 발로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심하게 말해 존경심이 지나치면 그 인물에 대한 책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인물이 역사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중심 인물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개인적 숭배가 지나친 나머지 그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지나치게 덧칠을 하거나 없는 일도 꾸며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일단 그런 의심에서 벗어나도 좋을 듯싶다. 글쓴이가 나름대로 내공이 있는 역사학자라는 점에서 일단 안심되긴 하지만 철저하게 사료를 근거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정현섭의 「이 조국 어디로 갈 것인가」를 통해 이회영을 알게 된 글쓴이는 조선 제일이란 뜻의 삼한갑족(三韓甲族) 출신으로 '딸의 옷까지 팔아먹고' 누워 있어야 했던 이회영에게서 우리 역사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 : 지배층의 엄격한 의무)를 지닌 인물임을 발견한다.

특히 이회영이 글쓴이를 강하게 사로잡게 한 것은 그가 아나키스트였다는 점에서다. '아나키즘'이 1902년 일본의 한 대학생이 '무정부주의'라고 번역하면서부터 오해에 오해를 불러일으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은 그 진의와 사뭇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해서 이 책은 식민지 시대 조국의 독립과 인류의 이상사회 건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바로 우당 이회영과 그의 동지들인 젊은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기록이다.

신흥무관학교 설립


그들의 이름은 남과 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양극단에 묻혀 잊혀졌었다. 사실 이회영은 이상설로 하여금 헤이그 특사로 파견하게 한 사건의 숨은 주역이다.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을 안 이회영은 해외 열강에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일제의 엄중한 감시를 뚫고 고종과 언로를 뚫어 승낙을 얻어내 당시 <한국평론>(Korea Review) 편집장 헐버트를 통해 고종의 신임장을 간도의 이상설에게 전달한다.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이회영은 신민회 간부회의 결정에 따라 해외 독립운동기지 건설과 군관학교 설치를 위해 만주로 이주한다.

당시 대다수 양반들이 일제의 합방공로작과 은사금에 기뻐하고 있을 때 이회영, 이석영, 이시영 등 그의 일가는 국내의 모든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났던 것이다.

만주에 정착한 이회영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잠입했다가 고종망명계획을 세워 추진했으나 갑작스런 고종의 죽음으로 좌절되기도 한다.

임시정부 조직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과 달리 전개되자 이회영은 이시영, 김규식, 이광, 신채호 등과 함께 상해를 떠나 북경에 머물게 되는데, 이 때 그는 신채호과 젊은 아나키스트들인 유자명, 이정규, 이을규 등과 만나면서 아나키즘을 접하게 된다.

볼세비키 러시아의 독재정치와 민족주의 세력의 외교독립 노선 등에 실망한 그는 새로운 대안으로 자유연합주의의 아나키즘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진정한 아나키스트를 꿈꾸며

이후 그는 당시 아나키즘적인 색채가 짙었던 의열단과 아나키즘 행동조직인 다물단을 막후 지원하면서 신채호, 김창숙 등과 더불어 북경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한다.

그러나 그는 만주로 다시 가서 동포들을 다시 조직해 무장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정하고 1932년 만주로 향했으나 밀정의 고발로 대련에서 체포돼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억압과 압제가 없고 우리 민족이 서로 돕고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를 꿈꾸었으나 이회영은 예순 일곱의 나이로 많은 동지들의 눈물을 뒤로한 채 이역만리에서 한 많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했던 것이다.

일평생 백세청풍(百世淸風)의 절의로 조국광복과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 우당 이회영은 진정한 자유를 갈구하다 스러져간 진정한 아나키스트였던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4. 4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5. 5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