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이의 죽음과 미국의 정체성

등록 2001.06.12 02:59수정 2001.06.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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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맥베이가 11일 처형됐다. 이로써 그가 말하는 '총으로 학정을 일삼는 미국정부에 대한 1인 성전'은 그가 목표로 했던 그 정부에 의해 평정됐다. 그의 나이 올해 33살이다.

미국 현지언론들은 맥베이의 처형을 일제히 머릿기사로 다루고 이로써 지난 1995년에 있었던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 참사가 일단락됐다며 역사의 한 장을 넘기고 있다.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은 맥베이의 희생자들은 "복수가 아니라 정의를 돌려받았다"고 말했다. "한 젊은이가 6년 전에 선택한 그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인디애나주 테레 호트의 연방교도소에서 (미국 시간으로 11일) 아침 8시 10분부터 집행된 독극물 처형에서 맥베이는 죽음을 앞두고 최후진술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형 집행관에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쓴 1875년 영국작가 윌리엄 어네스트 핸리의 "인빅터스(Invictus, 1875)"라는 시를 남겼다. 그의 시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네.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네(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처형은 수천명의 보도진과 희생자의 친지 232명이 폐쇄회로 TV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집행됐다. 하얀색 티셔츠와 운동화를 착용한 그는 형이 집행되기 전 참관한 증인들과 카메라들을 향해 눈을 맞추고 난 후 형에 임했으며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세상을 마감했다. 모두 3차례의 독극물 주사가 그의 다리 정맥을 통해 주입되어 그의 의식과 폐와 심장을 차례로 멎게 했다.

맥베이는 죽기 얼마 전 그의 고향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에 보낸 편지에서 "희생을 당한 이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일말의 후회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은 정부에 대한 1인전쟁에서 불가피했던 정당한 전략(legit tactic)이라는 종래의 입장을 끝내 꺾지 않았다.

미국과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맥베이는 지난 1995년 4월 19일 오클라호마 연방청사를 폭탄트럭으로 공격해 149명의 어른과 19명의 어린이를 숨지게 하고 수백명을 부상시킨 혐의로 지난 1997년에 기소됐다. 그 동안 맥베이의 사형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랐으며 그의 형 집행을 놓고 수많은 논란을 거쳐왔다. 악마와 혁명가라는 평가가 교차하면서 미국 사회는 뒤흔들렸다.

맥베이의 죽음은 오늘날 미국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뉴욕주 팬들턴에서 태어난 맥베이는 여행사 직원인 어머니와 자동차공원인 아버지 사이의 중산층 가정에서 큰 문제없이 자라다가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유년기에 멍에가 생겨난다. 유년기의 막연한 불의에 대한 그의 반감은 그가 걸프전에 참전해 동맹국의 화력이 세상을 압도하는 현실을 보면서 분노로 변해갔다.

'미국은 왜 전쟁이 보통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외면하는 것일까'라는 회의와 미국 정부의 힘의 남용에 대한 그의 분노는 아이다호 루비릿지의 반연방 분리주의자인 랜디 위버 가에 대한 공권력 투입과 지난 93년 데이빗 코레쉬와 그 추종자들에 대한 '웨이코'(Waco) 습격 사건'등을 보면서 증폭되어 나갔고 급기야는 "보복이 나의 책임"이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약자를 괴롭히는 깡패에게 코피를 내주어야 다시 또 안맞으려고 그짓을 안하려 들 것 아닙니까?" 법정을 통해 거침없이 내뱉는 그의 말은 미국 양심의 뇌관을 건드렸고 그의 반란은 미국의 정체성 자체를 뒤흔들어놓는 일대사건으로 비화되었다. 이제 그는 가고 없다.

과연 미국은 그의 죽음을 통해 좀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또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반문해 보아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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