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민간인학살에 대한 기록이 속속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나이어린 중·고등학생까지 보도연맹에 가입시켜 학살했음을 짐작케 하는 자료가 발견됐다. 또 이 중에는 여학생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경남도민일보> 취재팀이 1949년과 50년 사이 경남·부산지역에서 발행된 신문 보도기록과 당시 중·고등학교의 학적부를 확인한 결과 밝혀졌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6개월전인 49년 12월 28일자 <남조선민보>에 따르면 당시 보도연맹 마산지부는 마산상고와 마산중·마산여중 교감 이상과 연석회의를 갖고, 이들 3개 학교 학생 중 보안법 위반으로 중퇴한 300여명 전부를 보도연맹에 가맹시키기로 합의했다.
<남조선민보>는 이날 보도에서 "일시적인 모략선동에 현혹되어 공당계열에 가담하여 본의아닌 과오를 범한 나머지 중도퇴학처분을 당한 학생들이 시내 마상·마중·마여중만 해도 300여명에 달하고 있다"면서 "이들의 사상선도와 과오를 청산하고 복교함으로서 재생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경찰지서의 신원조사를 한 후 보도연맹에 가맹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마산여중 학적부에는 48년과 49년 각각 159명과 122명이 제적 또는 자퇴한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중 적지 않은 학생이 시국사건으로 경찰에 구속됨으로써 제적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17세였던 박○전(마산부 표정 142) 양의 경우 "교내에 불온세포조직하려다 경찰에 구금되어 49년 5월 1일부로 제적"이라고 적혀 있었으며, 이밖에도 이○순(19)·강○자(19)·박○순(19)·허○아(18)·김○애(17) 양 등이 ‘불온단체 가입’ 또는 ‘교내질서문란’ 등으로 이유로 제적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당시 마산상고 재학중 보도연맹원 학살로 오빠(19)를 잃은 팽상림(65·현재 부산 거주) 씨는 "미술부원이었던 오빠는 당시 아무 것도 모르고 학생동맹에서 부탁한 포스터를 그려줬다는 혐의로 퇴학당한 후 보도연맹에 가입돼 무참히 학살됐다"면서 "어린 학생들까지 사상범의 누명을 씌워 재판도 없이 학살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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