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강원도 속초에서 가진 <한국소설가협회>의 《일본교과서 역사왜곡 규탄》행사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나는 그 문제에 관하여 좀더 구체적이고 철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오래 전부터 그것은 나의 깊은 관심 사항이었으나 '규탄'의 뜻을 행동으로 표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런 만큼 그 행사는 내게 참으로 중요한 사항이어서 나는 그 행사와 내 생각을 알리는 글을 적어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계기로 '왜곡'과 관련하는 여러 가지 사항들을 좀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비난하고 규탄하는 우리의 행동이나 태도에 면구스러움이 전혀 없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우리 자신의 갖가지 오류와 왜곡과 굴절―뒤틀린 현상들을 생각하자니 정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맨먼저 <조선일보>를 생각했다. 조선일보는 엄청난 왜곡의 대명사다. 조선일보만큼 호도와 왜곡과 위장의 효과들을 극명하게 현실화시키고 있는 언론 매체는 지금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다. 일제에 참혹할 정도로 아부와 봉사를 다했던 신문이 민족지로 둔갑하고, 군사독재권력에 철저히 아첨하고 편승하여 사세를 키운 신문이 정론지를 가장하는 그 왜곡의 묘수는 참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민주화 투쟁 시절에는 입도 한번 벙긋하지 않고 독재권력에 아부만 했던 신문이 오늘날에는 민주화의 과실을 가장 많이 누리면서 자신을 압박하는 개혁 세력을 상대로 오히려 '언론 자유'를 강변하는 기현상을 연출한다. 그런 조선일보가 여전히 '최대 신문'으로 군림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써 우리 시대 최대의 상징적이고도 실체적인 비극이다.
다음으로 나는 박정희를 생각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비난하고 규탄하면서 우리는 지금 '황군의 아들' 박정희의 기념관을 건립하는 일을 108억원의 국고까지 지원하여 진행하고 있다. 가치 전도와 가치 혼란의 가장 극명하고도 참담한 상징이자 실체가 아닐 수 없다.
끝내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한다면, 거기에다가 일본제국의 중국침략기지인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박정희가 '진충보국멸사봉공(충성을 다하여 나라(일본)에 보답하고 나를 죽여서 국가를 받들겠다'라고 쓴 혈서와 그의 그런 남다른 충성심을 크게 보도한 <만주일보>도 '보기 좋게' 전시를 해야 한다.
아예 기념관 안에 별도의 방을 마련해서 박정희라는 한국 이름 대신, 박정희가 '조센진' 냄새가 나는 일본식 이름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를 버리고 자신을 일본인으로 '세탁'하고자 스스로 다시 바꾼 진짜 일본 이름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를 크게 쓴 간판을 붙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무총리 시절 일본을 방문하여 국회에서 일본말로 연설을 한 김종필 씨를 비롯한 친일 보수 세력의 향수와 정서에도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박정희 기념관에 박정희의 '황군의 아들' 시절 모습이 절대로 감추어져서는 안된다. 그것이 감추어진다면 박정희 기념관은 엄청난 '왜곡의 실체'가 되고 말 것이다. 또 그렇게 되면 일본인들이 그 '박정희 왜곡'을 가장 크게 비웃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황군의 적자'였던 박정희의 청년 시절 모습은 일본인들에게 뒤틀린 자긍심을 갖게 하고, 박정희 청년 시절을 감추거나 분식하는 것은 그들에게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반격의 소재를 제공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참담한 딜레마를 김대중 정부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우리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만 시선을 집중해서는 안된다. 우리 자신의 처지도 돌아봐야 한다. 그것도 다각적으로, 또 심층적으로. 그러고 나서 우리의 자세를 엄정히 한 다음 일본의 그런 태도를 비판해야 한다. 일본이 우리를 우습게 아는 구석을 그대로 안고서는 우리가 아무리 일본을 비판하고 비난해 봐야 아무런 실효가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말끔한 자존심과 명확한 역사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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