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관계, 김근태-이부영 그날 밤 화해

수련회 최고 성과물 중 하나는 두 사람의 화해

등록 2001.07.16 14:38수정 2001.07.1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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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출신으로 여야 개혁세력을 각각 대표하는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과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 그러나 정가에서 이들을 잘 아는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상 두 사람이 다시 합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만큼 서로에게 껄끄러운 상대라는 것.

그런데, 이달초 열린 <화해와 전진> 포럼 수련회를 기점으로 이들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포럼의 한 관계자는 "1박 2일간 일정 중 가장 큰 소득을 꼽으라면 두 사람의 화해일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였던 두 사람이 중국에 함께 갔다는 점도 정가의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민주화 운동의 양대 산맥이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대통령이라면, 김근태 최고위원과 이부영 부총재는 재야에서 입지를 굳게 다진 인물들이다.

전국 규모 공개조직으론 최초라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83년 결성한 김 최고위원과, 84년 '민중민주협의회'를 조직했던 이 부총재는 이후 나란히 재야세력을 대표하는 인사로 떠올랐다.

85년, 모든 재야세력을 망라했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의장 문익환 목사)이 결성됐으며, 87년 대선으로 인한 분열을 거쳐, 88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탄생했다. 당시 이 부총재는 전민련의 초대 상임의장을, 김 최고위원은 정책기획실장과 집행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이재오 의원(당시 조국통일위원장), 장기표 원장(당시 사무처장) 등도 전민련에서 활동했다.

정가 관계자에 따르면 두 사람의 갈등이 겉으로 표출된 시점이 바로 이 때다. 90년대 들어 정당추진을 위해 탈퇴했던 이부영 장기표 씨 등과 김근태 씨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는 게 지켜본 이들의 전언. 그리고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렀다. 두 사람은 어느덧 제도 정치권에서 여야를 각각 대표하는 개혁주자로 확고히 입지를 다졌지만, 여전히 씻지 못한 앙금이 남아있다는 말은 최근까지 공공연히 나돌았다.

'네 탓'이 아닌 '내 탓'


그런,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변화가 노출되기 시작한 자리는 <화해와 전진> 포럼이었다.
특히 지난 수련회에서 김 최고위원과 이 부총재의 발언은 공통적으로 재야세력의 '화해'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자리에서 이부영 부총재는 "양김의 시대가 끝나가는 이 즈음에 두 분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내 탓이오'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며 "그런 자탄이 있을 때만이 이 대분열의 시대를 마감하고 우리 민주화운동 세력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견해를 밝혔다.


이어 그는 "'내 탓이오'라는 자세로 대분열을 극복하고 대통합으로 나아가고, 우리 국가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대통합 속에서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90년대 초반 이후의 분열에 대해 상대방을 탓하는 자세에서 한 발 물러나 자신부터 '큰 화합'을 추구하자고 밝힌 것.

김근태 최고위원도 이에 화답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화해와 전진 포럼이 우선 해야될 것은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자리가 돼야 할 것 같다"며 "지난 시대의 분열 뿐 아니라 우리의 가슴속이 여전히 분열돼 있고 '내 탓'이 아닌 '네 탓'이라는 마음이 깊게 뿌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또한 김 최고위원은 "오늘 자리는 구체적인 방향과 방식도 중요하지만, 우리 가슴속에 숨어있는 마음을 서로 고백하고 알리는 만남의 자리가 돼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진 그의 제안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화해와 전진 포럼에서 과도한 속도로 현실적인, 즉각적인 일치를 시도하면 굉장한 어려움과 난관이 발생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이 있는 것이고, 또 오늘 그것을 전제로 해서 화해와 전진 포럼이 모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부족함이 먼저 함께 확인되고, 그리고 나서 전진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토론회에 이어 벌어진 뒷풀이자리에서도 두사람은 심상치않은(?) 화기애애를 보여줬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
결국, 두 사람이 '내 탓이오'라는 공통된 반성 속에 통합을 논했다는 것은 암묵적으로 화해가 성사됐음을 뜻한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앞으로 2년이 중요

두 사람의 '화해'를 보여주는 징후는 이후의 일정으로도 이어진다.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포럼 소속 의원 12명이 중국인민학회의 초청을 받아 중국을 방문한 것.

이 부총재를 단장으로 한 방문단엔 민주당 김근태 정대철 최고위원 정장선 의원이 참여했으며 한나라당에선 이부영 부총재, 김덕룡 김원웅 서상섭 정의화 안영근 조정무 김영춘 이성헌 안상수 의원 등이 참가했다. 민주당 의원이 귀국한 뒤에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16일까지 남아 장준하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제5차 장준하 구국장정 6000리 행사에 참여해 민주화 운동 선배의 넋을 기렸다.

정가에선 중국 방문 도중 포럼의 '구체적인 활동 방향'에 대해 논의가 됐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민주당 측 '바른정치실천모임' 소속 의원들도 7일부터 12일까지 일제하 광복군 유적지를 돌아봐 여야 초재선 의원들이 비슷한 시기 대거 중국에 머물렀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회장인 신기남 의원을 비롯 정동영 최고위원 추미애 이미경 천정배 정동채 이강래 송영길 이종걸 임종석 의원 등이 참석했다.

강원룡 목사는 역시 <화해와 전진> 수련회 자리에서 "내년도에 대통령 선거, 지방 선거한다는 데 잘될 것 같지가 않아요. 지금 세계는 우경화로 향해가고 있습니다. 일본이 저렇게 되고 있죠. 미국이 저렇게 되어가고 있죠. 점점 보수세력이 머리를 들기 시작합니다"라며 "그러면 우리처럼 긴 장정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보면서 만들어 놓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뭐가 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그는 "지금의 국회에서 여야가 하는대로 놔두면, 누군지 모르지만 어떤 형태인지 모르지만 또다시 새로운 극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것이 제겐 굉장한 걱정입니다"면서 "불과 앞으로 2년 안에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앞으로 후배들은 손댈래야 델 수 없는 그런 파탄으로 들어갈 가능성도 있어요"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어쩌면 개혁 성향의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의 자리를 가지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라는 게 정가 관계자의 말이다. 그리고 그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김 최고위원과 이 부총재의 오래된 앙금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정국에 있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음을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여야가 대변인을 내세워 공방을 펼치고 있는 '보-혁'구도는 이미 내부에서 소리없이 조금씩 준비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가의 한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공동정부나 정책연합같은 구상을 왜 87년도엔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자구심이 들 때가 있다"며 "김 최고와 이 부총재의 화해는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세력들을 재집결시키는데 크나큰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포럼의 한 관계자도 "여야 모두 당지도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상황의 변수는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노무현 고문이나 이재정 의원 등 참여하진 않아도 뜻을 같이 하는 정치인들도 많고, 시민단체와 연계가능성도 열려있다"며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모습.

87년의 실패를 다시 한 번 상기하며 '내 탓이요'를 되새긴 김근태 최고위원과 이부영 부총재가 향후 어떤 행보를 걸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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