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96년 2월 2일부터 2월 12일까지의 중국 여행기이다. 필자와 10여명의 일행(교수, 시인, 화가, 사진작가, 학생 등등)은 인천에서 배를 타고 위해(威海)에 내려 장보고의 얼이 서려있는 적산(赤山) 법화원(法化院)을 거쳐 공자의 생가와 공묘가 있는 곡부를 거쳐 태산(泰山)이 있는 태안(泰安), 연대(烟台)를 거쳐 기차로 북경에 도착해 둘러본 후 프로펠러 쌍발기를 타고 연변에 들렸다가 다시 북경으로 나와 김포공항으로 들어온 10박 11일의 일정을 적은 글이다. 편집자 주)
태산을 오르면서 나는 또 한 부류의 노동자를 보았다. 아마 노동 강도로 보면 가마꾼이나 비슷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 대나무 장대 양 끝에 물건을 매달아 어깨에 걸치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산 위로 각종 물자를 나르는 사람들이었다.
태산 꼭대기에 뭔 물자가 필요할까 싶었는데 정상에 도착해보니 거기엔 호텔도 있었고 가라오케 간판도 보였다. 또 도교 서원도 보였고 안테나가 수십 개나 있는 레이다 기지처럼 보이는 건물도 있었다. 어쨌거나 헬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태산 정상으로 물건을 옮길 방법이 없으니 그런 짐꾼도 필요하겠다 싶었다.
아쉽게도 그분들에게는 그렇게 한 번 물건을 옮겨줄 때마다 얼마씩 받느냐고 물어보질 못했다. 가마타는 비용은 손님이 없어 쉬고 계신 분에게 물어볼 수 있었는데 힘들게 양 어깨에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을 세워서 짐 운반하는데 얼마냐고 물어보기가 민망해서였다.
내가 그 동안 올라보았던 한국에서의 몇몇 산들은 동네 근처의 앞산부터 시작해서 설악산까지 저마다 최소한 약수터 하나씩은 끼고 있었다. 오르다 지치면 나무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약수터나 하다못해 개울이라도 만나면 시원하게 세수라도 한 번 하면서 땀도 식히고 목도 축이고 했다.
그래서 태산도 산이기에 당연히 그럴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도 얘기했듯이 태산에는 물이 없다. 약수터는 더더군다나 없다. 그래서 정상까지 약 2시간 가량을 오르는 동안 목이 말라도 어쩔 수 없이 꾹 참아야만 했다. 미리 물을 준비하지 않은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그러다 구세주를 만났다. 좋게 말하면 간이매점이라고 해야 할까? 매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정말 초라한 매점. 간판도 없고 그저 자연 그대로의 좀 평평한 바위 위에 올려놓은 콜라와 사이다 몇 병 그리고 소세지 몇 개가 파는 물건의 전부인 매점. 누구 입에 들어갔던 거라도 꺼내먹고 싶을 정도로 목이 말랐던 나는 성큼성큼 문도 없는 좌판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 우리를 보고 성급히 달려온 주인 아저씨를 보니 정말 먹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 머리는 완전히 귀신 산발한 것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제멋대로 엉겨붙은 데다가 옷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얼굴과 손은 며칠 동안 씻지 않았는지 그야말로 엽기호러쑈 그 자체였다. 그런 손으로 캔콜라를 하나 집어서 건네주는데 그 주인의 그 콜라라고나 할까. 캔은 한 1/3쯤 찌그러져 있었고 입을 대고 마셔야 할 캔 주위는 주인의 작품이라고 해야 할 손때가 추상화처럼 묻어 있었다.
그래도 울며 겨자먹기라고 당장 목마른데 어떡하랴. 필자는 평소 가게에서 사던 콜라값의 두 배를 주고 캔콜라를 넘겨받았다. 그리곤 입댈 부분을 정성스럽게 아주 정성스럽게 손수건으로 빡빡 문질러 닦은 후 입을 대지 않고 고개를 뒤로 젖혀 콜라를 쏟아부었다. 좀 살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도 처음에는 무척이나 찝찝해 하는 것 같았지만 콜라가 입에 들어가자 다들 전과는 다른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바위 옆으로 움막 비슷한 것도 보이고 불을 피운 흔적도 있는 것으로 보아 며칠씩 그 자리에 묵으며 장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가지고 올라온 물건들이 다 팔리면 짐을 싸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물건도 장만하고 세수도 한 번씩 하고 오나보다 생각했다.
갈증을 해결하고 나니 이번엔 담배 생각이 났다. 태산에서는 절대금연이기 때문에 담배 피우다가 공안에게 발각되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가이드가 단단히 주의를 주어 너나 할 것 없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엽기영화 주인공 같은 아저씨가 간만에 물건을 팔아서 기분이 좋은지 담배를 떡하니 꺼내 무는 게 아닌가? 우리는 재빨리 가이드에게 여기서 담배 피워도 되느냐고 물어봐달라고 졸랐다. 둘이서 뭐라뭐라 하더니 가이드가 웃으면서 피워도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아저씨가 우리에게 담배를 피워도 된다, 안된다 허락할 입장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채면서도 마치 허가라도 받은 것처럼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가능하면 큰 길에서 떨어져 그 아저씨의 움막 근처로 삐죽삐죽 발걸음을 옮겨 누가 볼세라 누가 빨리 피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후닥닥 한모금 빨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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