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성·문화 전도하고 싶었다"

한국서 첫 개인전 갖는 작가 고상우

등록 2001.08.03 20:06수정 2001.08.0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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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부터 12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미술공간에서는 재미 작가인 고상우 씨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현재 뉴욕에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음화'로 표현된 사진들과 비디오 작업을 보여준다.

그는 사진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필름을 음화로 바꾸는 기술에 매력을 느꼈고 전도된 필름의 음화 이미지를 그대로 뽑아냈다. 그 결과, 어두운 색은 환하게 표현되고 환한 색은 어둡게 표현된다. 백인의 피부는 음화이미지를 통해 까맣게 나타나고, 동양인이나 흑인의 피부는 파랗게 표현되며, 붉은 빛의 장미 또한 푸른색으로 전도된다. 그는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문화, 그리고 내 자신을 전도시키기 위해 음화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밝힌다.


자연색을 바꾸고 자연의 이미지마저 뒤집힌 그의 작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피사체에 대한 고정관념뿐 아니라 여성과 남성에 관한 정체성의 물음까지 끌어내고 있다. 고상우는 '미스 아메리카', '마리아', '이브' 등 서양여성들의 대표적인 아이콘을 빌어와 자신의 모습을 서양여성으로 전도시키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동양남성과 서양남성, 서양남성과 동양여성, 동양여성과 서양여성은 쉽게 친해질 수 있으나, 동양남성과 서양여성은 쉽게 융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성과 인종을 가진 사람들의 친밀함은 동양과 서양문화를 가깝게 엮을 수 있는 매개체가 되며, 불가능한 룰을 깰 수 있는 시도가 된다. 그런 이유로 고상우는 자신이 직접 서양여성이 되어 보여줄 수 있는, 또는 보여지는 모든 것들을 음화이미지 안에서 전도시킨다.

때문에 그가 만들어 놓은 여성이미지에는 여성성도, 남성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동양과 서양, 혹은 그 문화마저도 깨어져 부서진다. 서양여성의 실체가 동양남자인 고상우라는 인식이 뇌속에 선행되어 자리하는 이유 때문일까, 서양여성으로 전도된 그의 모습은 중성적인 향을 발산한다.

그의 메시지대로라면 사람에게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함께 존재하며 고정된 틀을 벗어나 보면 이미 많은 것들이 중성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가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즐겨 읽는 이유에도 그가 여성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여성성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만들어놓은 서양여성의 이미지를 향해 어떤 이들은 아름답다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추하다고 말한다. 관객들의 반응이 그렇든, 그렇지 않든 작가 고상우는 음화의 이미지가 본인이 의도했던 대로 나왔다며 만족해한다. 덧붙여 그는 그 이미지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데, 특히 결과로 보여지는 이미지보다는 '현실'에서 '환상'으로 변화하는 이미지의 과정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의 전시작품 중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배경음악으로 깔린 비디오 작품 '플라워맨'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 흥미롭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정체성의 변화와 융화과정이 고상우의 표정과 함께 코믹하게 처리되어 매우 색다르게 다가온다. 다음은 고상우 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 작품 <나타샤>와 작가 고상우
ⓒ 오마이뉴스 배을선



- 시카고의 '칼 핼머 갤러리'로부터 전속작가 제의를 받았다는데 어떻게 할 생각인가?

"미국으로 돌아가면 8월 말쯤 확실한 계획이 잡힐 것이다. 전속계약을 한다면 갤러리가 나의 몇몇 작품을 사들이는 조건이 붙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불투명하다. 전속작가는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이다. A급 화랑에 전속이 된다면 충분한 작업비와 생활비로 안정적인 작품활동을 할 수 있지만, 그 만큼 소속된 화랑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불편함도 있다."

- 전속 계약의 장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전속작가가 되면 우선 개인전을 열어주고, 전국적으로 홍보 활동을 해준다. 경제적으로 구애받지 않고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 계약기간은 보통 2년 정도다."

- 작품이 아름다운 여성을 모델이 하기는 했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의도된 것인가?

"현실에서 이미지로 전도되는 과정, 그 바뀌는 과정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의도대로 나왔다. 굳이 예쁠 필요는 없다."

- 작품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가?

"처음에는 문화적인 충격이 컸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요즘은 여성과 관련된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페미니즘 책이나 여성학 책을 많이 본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 동양과 서양의 책을 골고루 모두 읽는다."

- 서양의 금발머리 여성이 본인의 실제 이상형인가? 동양 남성과 서양 여성은 불가능하다는 룰을 본인이 깨볼 생각은 없는지?

"서양의 금발머리 여성이 실제 이상형은 아니다."

- 작품에서 동양 남성에서 서양 여성으로의 전도가 형성되는데 동양 남성의 가부장적이고 억압된 모습을 벗어보려는 의도가 있었는가?

"자신도 동양 남성이기 때문에 그런 의도도 있는 것 같다."

- 동양 사람의 피부는 음화작업을 하면 푸른색이 나온다고 하는데 인위적인 색을 가하지 않고 푸른색 그대로 놔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백인은 검은색으로 흑인은 하늘색으로 나오는데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

- 비디오 작품인 플라워 맨에서 꽃이 상징하는 것은?

"한 송이는 여성이고 다른 한 송이는 남성을 의미한다. 남녀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과 정체성으로 부딪히는 모든 것들을 꽃으로 표현했다."

- 한국의 미술계는 아직도 보수적이다. 특히 재외작가의 경우 정체성에 관련된 끊임없는 질문을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국, 혹은 한국, 꼭 한가지 정체성을 말해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 것을 싫어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결국 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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