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풍(言風)에 휩싸인 정치권 속 '제4부'

<정치인과 저서> 언론인출신 정치가들

등록 2001.08.06 17:20수정 2001.08.0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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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을 맞아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 여의도 정가. 그러나, 이 달 초부터 언론사 사주에 대한 소환조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됨에 따라 8월 정국도 날씨만큼이나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언론개혁'과 '언론탄압'이라는 첨예한 시각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정간법 개정을 비롯한 실질적인 제도장치의 마련은 요원하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런 점에서 16대 국회 내외에 포진한 언론인 출신 정치가들의 활동은 관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그 누구보다도 언론사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의 현황을 살펴봤다.

"정론과 곡필의 현대사, 역사의 주역은 언론인"

지난 3월 <역사와 언론인>(커뮤니케이션북스)을 펴낸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정진석 교수(자민련 정진석 의원과 동명이인이다)의 말이다. 근대사의 무대에서 주역 또는 조역으로 등장했던 인물 가운데는 '언론인' 출신의 인물이 의외로 많다는 것.

언론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선 언론인이 정치에 몸을 담는 일도 외도일 수밖에 없으며, 직업적 언론종사자들이 정치에 간여하는 것 역시 언론의 공정성을 해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스런 일이지만 개화기 한말의 언론 환경이 특별했다는 점에서 정교수는 그 이유를 찾는다.

언론인의 독립성과 전문성, 순수성 따위를 최우선시 하기 보다는 개화와 자주 독립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중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언론인 출신의 정치인들이 많은 것도 불가피한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언론인들의 일인다역

정 교수가 이 책에서 다룬 언론인들은 다양한 모습과 역할 수행으로 한국 현대사에 등장한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이 언론인이면서 정치인, 학자, 문인 등의 일인다역을 맡았다.


1부 <역사 속의 언론인>에선 이승만 전대통령, 남궁억, 이종일, 장지연, 신채호 등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 전대통령은 '협성회회보'와 '매일신문'의 제작을 주도했으며 남궁억은 '황성신문'의 초대 사장이었고, 이종걸은 '제국신문'을 창간했다.

장지연 신채호 최남선 정인보 등도 언론인이자 역사가이며 문인으로서 정치가들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게 정교수의 지적.


2부에선 특별한 인연을 지닌 두 인물들을 대비하며 <두 인물의 만남>이란 제목으로 언론사와 현대사를 서술한다. 기미 33인의 한사람이었던 오세창과 친일파 이인직은 '만세보'를 함께 창간했으며 김성수와 송진우는 일제시대 '동아일보'를 이끈 쌍두마차였다. 이외에도 안희제와 여운형, 백낙준과 정인보의 활동에 대한 내용도 소개돼있다.

이어 그는 3부 <잡지와 잡지인>에서 한말부터 1970년대까지 계몽적 역할과 민주화 투쟁을 선도하며 한국의 잡지계를 대표했던 최남선, 김동환, 장준하에 대한 연구를 다룬다.

결론적으로 정 교수는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이승만이나 김성수, 송진우와 같이 정치 활동을 한 사람과 친일 행적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최남선, 김동환의 경우가 그렇다"며 "그들이 처했던 역사적인 상황에서 언론인으로 어떤 활동을 벌였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기자출신 31인

그럼 현 16대 국회에 진출하거나, 아직도 정치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언론인 출신의 정치인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해 7월 정치평론가 성락서 씨가 쓴 <기자출신 정치가들>(도서출판 문예원)을 한 번 보자. '그 영욕의 삶과 비전 집중조명'이라는 부제로 발간된 이 책에서 그가 소개하고 있는 언론인출신 정치가들은 무려 31명에 이른다.

김윤환 민국당 대표와 임덕규 조세형 박범진 박실 전의원을 제외한 26명은 현역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 강성구 김경재 김성호 김원기 김태홍 박병석 박병윤 이만섭 이협 정동영 의원(이상 10명, 가나다순), 한나라당 강삼재 강인섭 고흥길 김종하 김형오 남경필 맹형규 박종희 서청원 신경식 안택수 이규택 이부영 최병렬 하순봉 의원(15명)이 그들이다.

입법부 수장인 이만섭 국회의장은 어느 덧 8선의원이고, 5선인 강삼재 부총재와 김윤환 대표, 김종하 부의장, 서청원 의원, 민주당 김원기 최고위원도 정치권의 대표적 인사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신경식 의원과 최병렬 하순봉 부총재도 4선의 고지에 오른 인물들.

이외에도 3선인 이부영 부총재와 재선인 정동영 최고위원도 차기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 심심찮게 거론되는 등 중요한 '뉴스메이커'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6대 총선서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의원도 이책에서 다루고 있는 정치인만 해도 민주당 김성호 김태홍 박병석 박병윤 의원, 한나라당 고흥길 박종희 의원, 자민련 정진석 의원 등 7명에 달한다.

빅3출신이 대다수

이를 언론사별로 보면 세칭 빅3출신이 ▲조선일보 김윤환 대표(조선일보 주일·주미특파원) 최병렬(편집국장) 서청원(사회부) 박범진 전의원(조선일보 정치부기자) ▲동아일보 이만섭 의장(정치부 기자) 강인섭(정치부기자) 김원기(정치부기자) 이부영(사회부) 김형오 의원 박실 전의원 ▲중앙일보 고흥길(편집국장) 박병석(사회·정치부 기자) 이협(정치부 기자) 이규택 의원 등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외에 김성호 의원은 한겨레21 시절 '김현철 국정개입사건'을 특종보도한 바 있다. 박병윤 의원은 한국일보 기자와 서울경제신문의 전무 겸 주필을 맡았으며 신경식 의원은 대한일보 정치부장 출신이다. 안택수 의원은 한국일보 정치부·사회부 기자로 활동했으며, 80년대 초반 19대 한국기자협회 회장을 짧은 기간 맡기도 했다.

강성구 정동영 의원은 MBC 뉴스데스크 앵커를, 맹형규 의원은 SBS 8시 뉴스를 진행해 높은 대중성과 인지도를 획득했다. 하순봉 부총재도 MBC 정치부 기자와 해설위원 출신.

강삼재 부총재는 경남신문 정경부기자였으며 남경필 의원은 경인일보 정치부 기자였다. 김종하 부의장은 한국일보·서울신문 기자를 거쳐 신아일보 편집부국장겸 정치부장을 지냈다. 김태홍 의원은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를 거쳐 한국기자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월간 '말'지를 창간했다가 '보도지침'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뒤에 한겨레신문 창간 3인 기초위원을 맡기도 했다. 자민련 정진석 의원도 한국일보 정치담당 논설위원 출신.

이외에도 김경재 의원은 미주독립신문을 창간해 주필 겸 발행인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이 자신의 전공을 살려 각 당의 대변인단에 소속, 활동했다는 점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강삼재 김경재 김성호 맹형규 박병석 서청원 안택수 이규택 정동영 하순봉 의원 박범진 박실 전의원 등이 모두 선봉에 섰었다. 이 책에는 빠져 있지만 현 민주당 대변인인 전용학 의원도 MBC와 세계일보 기자를 거쳐 SBS 8시 뉴스를 진행했으며 자민련 변웅전 대변인도 유명한 방송인 출신이다. 한나라당 장광근 수석부대변인도 서울신문 논설의원을 지낸 바 있다.

또한 최근 지구당 위원장을 사퇴한 조세형 전의원과 남경필 정진석 의원은 2대에 걸쳐 국회에 진출한 케이스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기자출신 정치가들>의 격려사를 쓴 강영훈 전총리는 "모쪼록 이들이 필봉을 휘둘러 사회정의를 다지고 정치개혁과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듯이 21세기 통일한국, 번영하는 민족국가 재건에 첨병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부탁했다.

그러나,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대립 양상을 보이는 여야의 갈등 양상은 이런 주문을 무색케 한다. 같은 언론사 출신이면서도 현재 속한 정당과 입장에 따라 이들이 보이는 자세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성 씨도 "언론계를 '제4부'라고 일컫어 왔다. 그러나 언론계는 '권부'가 아니다. 오로지 국민의 편에 서서 국리민복 추구를 '제일의'(第一義)로 삼는다. 언론계의 주체, 바로 일선기자야 말로 '언론계의 꽃'이다"며 "오늘날 이들 중 상당수가 새롭게 변신, 정치가가 됐다. 이들이 펼치는 비전이야말로 '21세기 한국'의 청사진이 될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 두가지 예민한 문제를 포괄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은 언론인 출신 정치가들이 과연 그럴만한 역량을 지니고 있는지 시험할 수 있는 중요한 가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제3정치세력을 준비하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정치개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양측 정쟁의 선봉에 서 있을 뿐이라는 것.

"언론개혁이라는 화두를 친여와 친야, 보-혁의 갈등 구도로 몰고 가는 정치권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며 "정치인이자 선배이기도 한 이들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한 일간지 기자의 한숨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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