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강 도보탐사 다녀와서

또 한 마을이 잠기고 또 하나의 댐이 생긴다

등록 2001.08.08 13:29수정 2001.08.0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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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얼마 전 12개 댐 건설예정지를 발표하였다. 몇년 지나지 않아 물부족 국가가 된다는 비관적인 상황 때문에 곳곳에 많이 댐이 들어서있다.

후보지 중엔 김용택 시인의 고향마을 근처이며 천연기념물 수달이 산다는 장구목도 포함되어 있다. 이 곳마저 댐이 들어선다면... 작년에는 지리산 댐 건설에 반대한다며 실상사 스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낙동강을 도보순례 하셨다.

지리산 댐 반대에 왜 낙동강이었느냐고? 스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낙동강이든 지리산이든 상관 없어. 내 마음길 공부하러 가는 거야. 내 마음길이 지리산 마음길이고 낙동강 마음길이야. 지리산이나 낙동강이나 똑같애.”

1~2년 후면 탐진강댐이 완공되고 장흥 유치면일대가 물에 잠긴다. 장흥환경운동연합에서는 댐이 완공되기 전에 탐진강과 유치면의 본래의 모습을 마음에 간직하고자 2001년 8월 1일부터 4일까지 도보탐사를 진행했다.

참가자는 열다섯명 정도. 환경운동연합 식구들과 회원 자녀들, 광주의 생태문화답사모임 사람들, 다른 지역 환경운동연합 사람들 등이었다.

첫날,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에 있는 강 발원지를 찾아 발원지 복원제를 드리는 것으로 일정은 시작되었다. 발원지는 몇 해 전에 주민이 채소밭을 일구느라 개간을 하면서 훼손이 되었고 현재 서쪽 용천마을 위에 골프장을 조성하고 있는 중이어서 자칫하면 발원지가 오염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장흥환경운동연합에서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영암군 금정면에서 보림사까지는 거의 원시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양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길은 차 한 대가 드나들만한 작은 길이었다. 오지였다. 나아갈수록 포장공사가 진행되어 길은 조금씩 넓어졌지만 산이 울창하고 물은 아직 개천에 지나지 않았다.


저녁 무렵 보림사를 들러 문화재전문위원의 설명을 들으니 평소에 별 관심없이 보아온 문화재들이 조금 달라보이는 듯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모양이다.

하루를 자고 보림사를 지나 유치면 늑용리를 향해 걸었다. 개천은 더 넓어져 강에 가까워진다. 이제 논밭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감나무를 많이 심어놓은 곳이 눈에 띄었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란다.


동강 댐 건설이 공고되었을 때 외지인들이 유실수를 많이 심었다가 댐이 무산되는 바람에 피해를 봤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늑용리에서 읍에 이르기까지에는 사액서원인 강성서원과 용호정, 부춘정, 사인정 등 정자가 많이 있고 늑용리에는 백로, 왜가리 등 철새도 살고 있다. 서원을 돌아보고 근처에 잠시 쉬어 물장구치며 자연을 즐겼다. 강물은 아주 맑고 하늘은 푸르르네.. 이 곳이 일이년 안으로 물에 잠기는구나.

자기 두 다리만으로 목적지를 향해 가는 발걸음은 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즐거웠고 걸으며 만난 풍경들은 사진처럼 마음에 찍혔다. 그러나 그 대가로 다리는 빨갛게 익고 힘이 없어 후들거려야했다.

댐 건설현장에 다다랐다. 댐 건설현장까지는 아직 강이라고 부르지 않고 탐진천이라고 부른단다. 댐을 지나면서 강진의 옴천천과 합쳐져 탐진강이 되어 장흥읍으로 흘러가 강진만에 다다른다. 이 말을 들은 초등학생 탐사대원이 "탐진강 걸은다면서 지금까지 탐진천만 걸었네"라 한다. 설마 탐진강과 탐진천이 다른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겠지?

탐진댐은 지금까지의 댐들과 달리 환경친화댐으로 만들기로 했다니 위안이 되지만 꼭 건설해야 하는 것일까. 수질을 보장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강진만이 탐사의 종착점이지만 개인사정으로 나는 광주로 돌아와야했다. 앞으로 갯벌탐사와 민물고기탐사가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만 간직할 수밖에...

탐진강은 강 상류에 오염원이 없어서 다른 강에 비해서 깨끗했다. 댐 건설 후에도 지금처럼 깨끗할 수 있을지는 우리의 몫이다. 더위를 피하려 물놀이 하는 게 고작이었던 강을 따라 걸으니 강이 친근하다. 그리고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던 광고문구처럼 강이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강이 나에게 물을 주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다.' 열심히 강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 순간엔 강과 내가 별개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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