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여름이야기'

등록 2001.08.21 10:10수정 2001.08.2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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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의 여름도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다. '하한정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여야간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7월과 8월. 그러나, 그 속에서도 '휴가철'을 맞은 여의도 정가는 다른 때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각 의원실의 보좌진들과 의원들도 저마다의 계획에 맞춰 휴가를 보내며, 가을 국정감사를 앞둔 재충전의 기회로 삼았다. 그 중 가장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역시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 김종필 명예총재 등이다.

이들의 휴가엔 늘 '청남대 구상' '부산 구상'과 같은 말들이 따라 붙으며 일거수 일투족 관심의 대상이 됐다. 한나라당의 시국강연회와 민주당의 국정홍보대회가 열리는 가운데 정치인들이 지난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 다양한 모습들을 살펴봤다.


정가의 본격적인 여름방학은 지난 7월 중순 국회가 개점 휴업상태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이 시점부터 지난 8월 15일까지가 휴가철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감사 시기가 앞당겨지고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국정조사가 열릴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의원실의 불꺼지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이만섭 국회의장은 16대국회 지난 1년을 되돌아보는 <날치기는 없다>를 14일 발간,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휴가를 가지 않고 그간 미뤄왔던 인사들과의 만남으로 분주한 여름을 보냈다는 게 비서진들의 설명.

특히, 대선을 1년 남짓 앞둔 예비주자들의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짧았다. 민주당 김중권 대표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롯, 복잡한 정국으로 인해 별다른 개인 일정을 갖지 못하다가 이달초 잠시 휴가를 다녀왔다. 지난 12일엔 경기도 이천 도자기 세계박람회장을 방문, 도자기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강원도와 충청도를 찾아 밑바닥 민심 훑기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노무현 상임고문의 여름은 강연의 연속. 언론사 세무조사 국면이 확대됨에 따라 부르는 자리도 늘어나 강행군을 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반면 한화갑 위원은 예정됐던 방북이 연기됨으로써, 입지를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조금 미룰 수밖에 없었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올 여름 가장 많은 변화를 준비했다.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블레어 영국 수상과 같이 머리를 기르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국회 의원동산에서 후원자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이색 후원회도 열었다. 8월엔 아산으로 내려가 사랑의 집짓기운동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정동영 최고위원은 자신이 주력하고 있는 IT산업 육성을 위해 여름의 상당기간을 해외에서 보냈다. 중국과 인도의 현장 곳곳을 누비며, 새로운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는 후문.


반면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는 휴가기간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손학규 의원은 보좌진 등과 함께 지리산 등반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다졌다.

'충청권' 최고 인기지역

여야 대선 주자들이 여름 내내 가장 공을 들인 곳은 역시 '충청권'이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선영과 부친 생가가 있는 이 곳에서 휴가를 보낸 데 이어 민주당 이인제최고위원, 노무현 상임고문, 김근태 최고위원 등이 줄줄이 찾았다. 김종필 명예총재도 부여군에 있던 부모묘를 예산군으로 이장해 '대망론'의 단초를 제공했다.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는 7월초 중국을 찾았다. 중국 인민외교학회의 초청을 받아 '화해와 전진'포럼 소속 의원 10여명과 동행했다는 점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장준하기념사업회 부회장도 맡고 있는 이부총재는 정의화, 서상섭, 안영근, 김영춘 의원과 함께 <아!장준하 구국장정 6천리를 따라서>행사에 참여,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반면, 부적절한 외유로 구설수에 오르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한나라당 의원 3, 4명은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으로 한일간 갈등이 깊어가던 7월말경, 일본에 골프 외유를 다녀온 것으로 밝혀져 질타를 받기도 했다. '쉬기 위한 휴가'긴 하지만 정황으로 볼 때 정도가 심했다는 평.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은 5년 연속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장소는 강원도 영월. 민주당 김태홍 의원도 광주 인근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했다.

국회독도사랑모임 소속인 윤한도 안택수 주진우 이재창 이병석 오세훈 박원홍 정병국 의원은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아 독도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김부겸 원희룡 이성헌 의원 등 한나라당 미래연대 소속 의원들도 지난 18일부터 사흘간 강원도 홍천으로 농활을 떠났다.

무주택자에게 사랑의 집을 지어주는 지미카터 특별건축사업도 정치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곳이다. 국회 해비타트 모임의 김덕룡 김영진 김경천 정범구 황우여 박세환 정병국 김학원 의원 등이 뜨거운 햇볕 아래서 값진 땀방울을 흘렸다.

택시와 자전거로 민심탐방

국정감사를 앞두고 발로 뛰어 다니며 저물어가는 여름을 분주하게 보내는 정치인들도 있다.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은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전국의 문화재 보수 관리 현장을 답사하기 위해 충남과 전라도 일대를 돌았다. 녹우당 윤선도 유적, 정다산 초당과 칠량 청자박물관을 비롯 고창 고인돌군, 정읍 등을 둘러봤다.

지난해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종묘가 흰개미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밝혀낸 정의원은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전국 주요 문화재 보수관리 백서'를 준비중에 있다.

지난해 국감을 통해 그동안 쉬쉬했던 '북파공작원' 문제를 공론화시킨 민주당 김성호 의원도 직접 자료를 정리하며 주말에도 의원회관에 나와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올해는 북파공작원에 대한 보상문제와 하나원 운영, 그리고 통상에 있어 전문성 제고 등을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다이어트' 등 본격적인 몸만들기에 들어간 이들도 있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지난 4일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경기도의 한 전문 단식원에 들어가 화제를 모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비장한 각오를 보인 결과 '가시적이진 않지만 분명히 좋아졌다'는 게 의원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와 달리 자민련 김종호 총재권한대행은 더운 날씨가 시작되던 지난 6월, 과로로 입원한 뒤 건강을 이유로 대행직 사의를 표명, 자민련 지도부를 일순간 긴장시키기도 했다. 다행히 JP가 사의를 반려하고 김대행이 당무에 복귀함으로써 상황은 종료됐지만, 관계자들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모습이다.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은 지역구인 경북 포항에서 특이한 경험을 통해 민심을 체득했다. 지난 1일과 2일 이틀동안 새벽 5시부터 하루 12시간씩 택시운전을 하며, 국민의 목소리를 들었은 것. '살기 힘들다' '경제가 어렵다' '직업 훈련을 받아도 재취업이 안 된다' 등 민생과 관계된 이야기가 주였다는 게 의원실 측의 설명이다. 그만큼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컸다는 것.

이의원은 지난 해 선거운동을 하며 "정치인들이 선거 직전에만 생색내기 민심 탐방을 한다"는 지역구 운전기사들의 지적을 받아들여 구두로 약속을 했고, 이번에 그것을 지킨 셈이다. 이를 위해 올해 1종 면허증을 취득하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원래는 긴 시간동안 체험을 하려고 했지만, 택시 회사 사정상 이틀로 한정될 수밖에 없어 앞으로 계속 추진할 예정이라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같은 당 김성조 의원도 이달초 2주일간 직접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인 경북 구미의 250여개 마을을 순방한 뒤 지난 12일 좋은 반응속에 민심탐방을 끝냈다.

올 여름 번갈아가며 피해를 입힌 가뭄과 수해 현장에서도 정치인들은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많은 피해를 입었던 수도권 인근의 의원들은 고통을 겪고 있는 주민들 곁에서 대책을 마련하는데 바쁜 모습을 보였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 상실 위기에 처해 무거운 여름을 맞았던 민주당 장성민 의원도 비가 퍼부었던 7월 15일 구의원, 시의원과 함께 동네를 돌며, 밤을 새워 물을 퍼내고 수해대책을 마련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당초 60만원이었던 보상액을 당정 협의를 통해 1주택당 150만원으로 올리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원외인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짧은 휴가 기간만 제외하고 10만km 대장정을 강행 지난 16일 현재 절반 정도를 넘어서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9월 말에 대장정 일정을 마무리 한 뒤 국민들의 목소리와 성과를 정리해 청와대와 국회에 전할 예정이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한가해졌던 국회가 지난 광복절을 전후해 다시 북적거리고 있다. 하한정국을 맞아 그간 소홀히 했던 지역구를 누비면서 민심을 체험하고, 몸으로 국정감사를 준비한 이들이 정기국회를 맞아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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