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국 이사장님, 왜 때리십니까"

덕성여대, 폭행 항의하던 학생 19명 고소

등록 2001.08.21 10:32수정 2001.10.2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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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측의 '업무방해, 폭행'고소에 의해 종로경찰서로 연행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항의시위대ⓒ 오마이뉴스 김미선
10년 이상 학내분규로 학사일정 차질을 빚고 있는 덕성여대가 이번엔 재단이사장인 박원국 씨의 학생폭행 사건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또 폭행에 항의해 박 이사장의 차를 막고 '사과'를 요구하던 학생들을 권순경 총장직무대행이 고소, 시위자 전원이 현장에서 전원 연행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건은 8월20일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서양화과 교수채용 면접심사장에서 발생했다.

"니네가 뭘 안다고 그래?"

오전 11시부터 개최된 면접심사장에 학생들이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경.

배혜정(영문 99) 씨에 따르면 배씨를 포함한 학생 3명은 △덕성여대가 교수채용에 앞서 '심사기준안'을 졸속 개악했다 △양만기 서양화과 교수의 교협활동을 문제삼아 재임용 탈락시킨 것은 부당하다며 "부당한 교수채용을 즉각 중단하라"는 침묵시위를 벌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이날 덕성여대가 면접심사를 가진 '서양화과 교수채용'은 덕성여대 2001년 2학기, 2002년 1학기 교수채용 공고의 일환으로 공고직전 개정된 '교수초빙 세부심사기준안'의 편파성, '채용 내정자 의혹'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안이다. (관련기사 '덕성여대 파행적 교수채용 공고 물의')

다음은 배혜정 씨가 전하는 현장상황.

"서양화과 교수채용 심사장에 유인물을 돌리던 중, 박원국 이사장을 발견하고는 '소리통'을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학생 10여명이 현장으로 도착한 뒤 13명이 같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오후 5시30분경 면접심사장의 앞문을 여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박원국 이사장이 나오고 있었다. 다가가서 사진을 찍으니 박이사장은 잠시 주춤한 뒤 우리에게 다가와 캠코더를 들고 있던 윤수진(국문 00) 씨를 밀쳐낸 뒤, 사진촬영 중이던 내 오른팔을 두세 차례 때리며 '니네가 뭘 안다고 그래?' '내가 이사장이다' 등의 발언을 했다."

보직교수 및 교직원들에 둘러싸여 평생교육원을 빠져나가고 있는 박원국 덕성학원 이사장(첫번째, 두번째). 박원국 이사장의 벤츠차량을 막아선 학생들(세번째). 권순경 총장직무대리가 학생들을 '업무방해' '폭행'으로 고소한 뒤 연행되고 있는 학생들(네번째). (이상 사진제공 : 덕성여대 총학생회)

배씨에 따르면, 이어 10여명의 학생들은 박이사장의 '폭행 사과'를 요구하며 박이사장의 귀가를 제지, 학생-보직교수·교직원 간에 마찰이 빚어졌다.

권순경 총장직무대리를 포함한 보직교수, 교직원들을 박원국 이사장을 에워싼 채 현장을 빠져나갔으며, 이 과정에서 배씨가 촬영중이던 카메라가 한 교직원에 의해 4층 밖으로 던져지고, 다수의 학생들이 교직원들에 의해 잠깐 동안 감금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의 사과요구는 박이사장이 자신의 차인 벤츠차에 탄 이후까지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권순경 총장직무대리가 학생들을 종로경찰서에 '업무방해·폭행'으로 고소, 항의시위를 벌이던 학생 19명 전원이 연행됐다. 학생들은 연행과정에서 격렬히 저항해 다수가 상처를 입었으며, 이중 2명은 한국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다.

고소인과 피고소인으로 만나다

▲ '잘못을 시인하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학교측의 요구안을 갖고 종로경찰서를 찾은 보직교수들. ⓒ 오마이뉴스 김미선

학생폭행 및 고소사건은 종로경찰서 앞 '고소인대 피고소인'의 대결로 이어졌다.

종로경찰서 앞에는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고소인'측인 박원국 이사장과 권순경 총장직무대리 등 학교쪽 관계자들과 '피고소인'측인 학생, 민주동문회, 교협교수들의 '소취하' 논쟁이 계속됐다. 학생 20여명은 연행학생 전원석방을 요구하며 정문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박원국 이사장은 오후 7시40분경 잠시 종로경찰서 앞에 나타났다. 박이사장은 고소인 진술에 자신의 운전기사를 대리참석시켜 '피해자 진술'을 작성했으며, 현장에서 김명숙 총동문회 부회장의 학생고소에 대한 항의에 "내가 고소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내가 직접 학교일에 간섭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당신들도 간섭말라"고 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11시50분경 현장에 나온 종로경찰서장이 교협교수들에게 '학생들을 범법자로 만들 셈이냐'며 교협을 이날 시위의 배후로 취급하자 경찰서 앞 시위대와 경찰간의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오후 8시30분경 잠시 현장에 나타난 권순경 총장직무대리도 민주동문회 회장 이지현 씨의 "어떻게 학교가 학생들을 고소할 수 있는가"라는 항의에 "학생들이 불법적으로 박이사장의 퇴근을 막았기 때문에 고소한 것"이라며 "학생들이 직접 잘못을 인정하고 고소취하를 부탁하면 검토해 보겠다"고만 답변했다.

이어 학교측 관계자들이 다시 현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학생들이 연행된 지 5시간 가량 지난 오후 11시50분 경.

손영택 학생처장, 김성철 시설처장, 정기화 기획실장, 박현신 학생부처장 등 5-6명의 보직교수들은 "박이사장님이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더라... 아까는 사건발생 직후였으니까 그랬고... 지금은 차분하게 얘기해보고 싶다"며 학생면담을 요청했으나 '학생들의 잘못시인'을 고소취하 조건으로 제시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서를 작성했던 박 이사장의 운전기사는 "카메라를 들이대고, 차를 막는다면 어떨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 얼굴에 대놓고 사진을 찍는 것에 대고 팔을 흔드는 것은 본능"이라며 "폭행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피해학생, 박원국 이사장을 맞고소하다

결국 연행된 학생들은 연행된 지 6시간이 지난 21시 0시50분 경부터 '불구속' 상태로 풀려났다. 학생들은 학교측의 고소취하 거부로 훈방이 아닌 불구속으로 귀가조치 됐다. 그나마 시위전력을 갖고 있는 학생 4명은 '추가조사'를 이유로 유치장에 송치됐다. 유치장에 송치된 4명 중 김은종 씨 등 2명은 오늘(21일) '졸업식'을 갖는 학생들이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풀려난 15명 중 캠코더 촬영 도중 박 이사장에게 폭행을 당했던 윤수진 씨는 박원국 이사장을 폭행혐의로 맞고소했다. 학생들은 "우리는 이제까지 그 어떤 탄압에도 학교측을 고소하는 일은 없었지만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고소이유를 밝혔다. 학생들에 따르면 경찰들은 학생들의 맞고소를 만류하는 입장이었으나, 0시경 학생들을 돕기 위해 도착한 이상희 변호사에 의해 고소장 작성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21일 01시50분경 종로경찰서에 모습을 나타낸 권순경 총장직무대리. 옆에 있는 사람은 손영택 학생처장이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윤수진 씨는 맞고소장에서 "당시 복도에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고... 캠코더로 단지 촬영만 하고 있었을 뿐인데도 수차례 폭행을 가한 박원국 이사장의 형사처벌을 원한다..."고 고소이유를 밝혔다.

학교측은 윤수진 씨의 맞고소 직후, 태도를 바꿔 '고소취하'로 입장을 전환, '양측의 고소를 취하자"고 요구했으나 학생들에 의해 거부됐다.

권순경 총장직무대리는 1시50분경 종로경찰서 앞에 도착, 수사과장과의 면담자리에서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그럴 수는 없는 거다, 하지만 추가조사자인 학생 중 2명이 오늘 졸업식을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측이 무조건 양보해서 고소를 취하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나 학생들의 맞고소 취하불가의 입장을 확인한 뒤 "학생들이 소취하를 하지 않으면 우리도 할 수 없다"며 되돌아갔다.

교수채용비리, 민주화교수 재임용탈락, 재단측의 부당한 학사간섭, 학생 폭행 및 고소고발 등으로 10년 이상 이어져온 덕성여대 학내분규는 이제 학생의 재단이사장 고소사건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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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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