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항의를 무시한 경찰들은
모두 청각 장애인이었을까?"

뇌성마비 장애인 기자가 당한 불법연행

등록 2001.08.31 09:34수정 2001.09.0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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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시위에 참가했던 뇌성마비 장애인 안형진 군을 연행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 8월 29일 12시 30분, 기자는 혜화동 로터리에서 진행되고 있던 장애인이동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의 '버스를 타자'집회 현장에 도착하였다. 현장에는 휠체어 장애인 30여 명을 비롯하여, 약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약식 집회를 하고 있었다.

곧이어 12시 50분 경 휠체어 장애인들은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8-1 버스를 타고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까지 이동하였다. 기자는 두 번째 버스에 타고 이동하였는데, 그곳에는 아니나 다를까 100여명의 의경들과 사복전경들이 집회대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애인 버스 점거 "움직이지 마" / 허성호 기자

관련기사- 장애인 점거 버스 4시간 동승기 - 김시연/이종호기자

노들장애인야학의 박경석 교장을 비롯한 마지막 집회대오를 태운 버스가 도착했지만 버스 안의 장애인들은 내리지 않았다. 버스 안의 승객들과 운전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모두 내리게 한 후, 박경석 교장은 버스 손잡이와 자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고, 버스창문을 통해 쇠사슬로 10여 대의 휠체어를 버스에 묶었다. 버스 한 대를 점거한 것이다.

버스 밖의 학생들과 시민들은 점거한 버스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찰들과 대치하였고, 그 과정에 학생 한 명이 앰블런스에 실려가고, 몇 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경찰버스에 연행되었다.


그러한 와중에 한편에서는 몇 명의 학생들이 이동권연대의 당일 버스점거의 의미를 알리기 위해 지하도 입구에 올라가 플래카드를 펼치고 서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자칫 잘못하면 학생들이 지하도 아래로 떨어져 부상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플래카드를 빼앗으려 하였고, 이를 저지하려는 학생들 사이에 심한 몸싸움이 일어났다.

기자도 경찰의 이런 어이없는 행동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가까이 있었는데, 갑자기 "저 사람 연행해!"라는 목소리가 들렸고 사복전경 대여섯이 몰려들어 기자의 사지를 들어 전경버스에 태웠다.


기자는 본인이 기자임을 밝혔고, 미란다고지를 받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며 불법연행임을 경고하였지만, 전경들은 기자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대꾸도 하지 않았고, 강제로 자리에 앉게 했다.

자리에 앉아서도 계속 불법연행임을 호소하며 풀어줄 것을 요구하였고, 연행한 경찰, 혹은 지휘관의 소속 및 이름을 밝혀줄 것을 수 차례 요구하였으나, 기자의 이야기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만약 버스 안의 전경들이 기자의 말을 알아들었음에도 이에 응하지 않은 것이라면 분명 이것은 연행자에 대한 인권침해다. 또한 기자의 언어장애 때문에 기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기자의 요구를 알아보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나중에는 오히려 귀찮고 가소롭다는 식으로 째려보며 조용히 있으라고 협박하기까지 하였다.

경찰버스 안에는 이미 10여명의 사람들이 연행되어 있었지만, 모두 연행경험이 없었던 탓인지 미란다고지를 받지 않았으므로 명백한 불법연행이었음에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기 때문에 버스 안에는 기자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연행과정에서 길바닥에 쓰러뜨러져 절규하는 장애인(사진 왼쪽) / 경찰은 화장실에 가기위해 시위대열을 빠져나가겠다는 장애인도 막았다. 한 장애인이 이에 항의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경찰의 인권침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집회 시간이 길어지자 버스에 타고 있던 연행자 몇 명이 소변이 마려움을 호소하였고, 경찰 동행하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요청하였으나 역시 대답이 없었다. 된다면 절차를 밟아 다녀오도록 해주든지, 아니면 이러이러한 이유로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명확하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함에도 이들은 연행자들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였다. 어쩌면 그 차 안의 전경들은 모두 청각장애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게하였다.

또한 상황이 종료되었는지 출발하기 위해 인원을 체크하는데, 연행자의 수를 '점'으로 표현하는 것을 듣고 기자는 다시 한 번 어이가 없었다. 연행자들이 마치 전리품처럼 물건인 듯 이야기하는 그들에게는 기자를 비롯한 연행자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들 스스로에게도 '점'이라는 표현을 써,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인권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갖게 했다.

하기야 이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명령에 살고 죽는 것이 군대와 경찰이 아니던가. 욕을 하려면 그들이 이런 말도 안되는 짓거리들을 하게 만든 윗사람들에게 해야 하는 것인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버스는 출발하고 있었고, 밖에는 소나기가 퍼붓고 있었다. 일차로 버스가 도착한 곳은 종로경찰서. 그곳에서 다시 분산연행되어 남대문과 중부경찰서로 이송되었다. 기자는 같이 연행된 9명과 함께 남대문경찰서에 내려졌다.

기자가 조사를 받은 곳은 수사 2계, 연행자들이 도착하자 한 형사가 종이 한 장씩을 건네주며 신상명세를 작성하라고 하였다. 기자와 연행자들은 분명한 불법연행이므로 조사를 받을 이유가 없으며 따라서 신상명세를 작성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며 변호사가 도착할 때까지 묵비권을 행사할 것임을 밝혔다.

형사들은 그렇게 묵비권 써봤자 시간만 걸리고 당신들에게 손해니 빨리 조사를 받는 것이 현명하다며 조사를 받을 것을 종용하였고, 일부 학생들은 순순히 조사를 받았다.

형사들은 자신의 아들이, 딸이 어느 대학을 다니고, 장애인도 있어서 연행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좋은 일 하는데 왜 떳떳하게 조사를 받지 못하냐며 얼르기도 하였고, 변호사가 올 때까지 묵비권을 행사한다는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행사'에 대해 어디서 '못되먹은 것'만 배웠다며 연행자들에게 폭언을 해대며 협박을 하기도 하였다.

경찰서에 도착한 시각은 3시, 6시까지 약 3시간 동안 바깥 상황을 알아보며 기다렸지만, 그냥 풀려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였고, 묵비권을 행사하던 기자를 비롯한 연행자들도 결국 조사를 받기로 결정하였다.

기자는 연행자들 중 가장 나중에 조사를 받게 되었다. 조서를 꾸민 경찰은 사법경찰 구아무개 형사, 그는 기자의 생년월일로 기자의 모든 신상명세를 파악해 가지고 있었다. 간단히 신상을 확인한 후, 그는 기자의 언어장애를 이유로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 미리 판단, 이전 사람들이 진술한 내용대로 질문과 답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첫 질문에 있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를 고지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라는 미란다원칙에 대한 질문에 기자는 분명 아니라고 대답하였음에도 그 자리에서 형사가 우물우물 뭐라고 하더니 '네, 남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전에 고지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라고 쓰는 것이었다.

기자는 계속 아니오라고 고칠 것을 주장하였으나 형사는 그렇게 되면 연행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방금 자신이 미란다 고지를 하지 않았느냐는 억지를 부렸다. 결국 형사 스스로가 자신들의 불법연행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아닐 수 없었다.

더 이상 형사와 실랑이를 벌여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으로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가기로 했고, 그 다음 질문과 답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형사는 불법집회 참가 여부와 기자가 확인할 수 없었던 점거 버스 안의 상황까지도 알고 있는 것으로 적어 기자의 고의적인 불법 행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적으려 하였다. 이에 기자는 불법집회여부와 버스 안의 상황은 기자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법행위에 고의성이 없었음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결국 형사는 기자가 지적한 부분을 수정하였고, 기자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달았는지 이후부터는 기자가 말하는 사실대로 적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기자는 미란다원칙을 고지 받지 못했음을 다시 한 번 문제제기 하였다. 그 내용을 첨가하지 않으면 날인하지 않겠다는 기자의 주장 때문이었는지 형사는 그대로 적었다.

조사가 끝나고 10시가 넘어서야 연행자들에 대한 조치가 결정났다. 남대문경찰서에 연행된 17명 중 3명은 즉심, 기자를 포함한 나머지는 훈방 조치되었다. 엄밀하게 법을 적용한다면 연행 과정에서 불법이 자행되었으므로 이러한 조치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대문경찰서를 나와 아직 결정이 나지 않은 종로경찰서로 갔다. 종로경찰서 앞에는 조사를 받고 나온 사람들과 연행소식을 듣고 항의방문을 하러 온 약 50여 명의 사람들이 정문 앞에서 대치중이었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 목발을 짚은 장애인 한 명과 경비초소 근무 중인 경찰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장애인들을 비롯한 항의 방문자들과 그들의 차량 출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 주차하고 경찰서로 걸어오기 힘든 장애인들은 별수 없이 경찰서 앞에 주차를 했고, 경찰의 말은 경찰서 앞에는 주차할 수 없으니 다른 곳에 주차하라는 것이었다.

▲한 장애인이 휠체어와 버스 출구를 쇠사슬로 묶어놓았다. 경찰이 진입해 절단기로 쇠사슬을 끊고 연행하려 했지만, 출구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는 손잡이 때문에 앞문으로 연행해야 했다. 버스의 구조는 휠체어 장애인이 주위의 도움을 받아 용케 버스에 탔다해도 '내리는 문'으로는 나갈 수 없도록 되어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당일 집회가 무엇이었는가? 장애인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에 관한 권리를 주장하는 집회였다. 그럼에도 경찰은 무엇이 그리 숨길 게 많은지, 임의로 경찰서 내부로의 차량출입을 막으며 장애인들의 발이나 마찬가지인 자동차를 먼 곳에 주차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서 밖에서 이러저러한 실랑이가 몇 번 있었고, 11시 30분이 넘어서야 박경석 교장 등 마지막 연행자들이 풀려났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박경석 교장의 정리발언을 통해 이동권쟁취투쟁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하고 이후에 더욱 힘찬 투쟁을 결의하였다.

이날 파악된 총 연행자 수는 93명이었고, 이중 10명이 즉심 처리되었고 나머지는 훈방조치되었다고 한다. 이중 미란다고지를 받고 합법적으로 연행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날 집회가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해도 불법집회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경찰도 연행과정에서, 조사 과정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은 좌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는 대한민국 경찰,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가 얼마나 법을 지키지 않는지 단적으로 볼 수 있었던 하루였다. 자신들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법을 누구더러 지키라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덧붙이는 글 | 김주현 기자는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의 월간소식지 '자유공간'의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마이뉴스를 통해 장애인문제와 관련한 현장소식들을 보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주현 기자는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의 월간소식지 '자유공간'의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마이뉴스를 통해 장애인문제와 관련한 현장소식들을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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